남극 캠프 일기_20171110 (펭귄과 함께한 남극 캠프일기)

in #kr6 years ago

20171110
황제펭귄 번식지 방문

오늘은 케이프워싱턴 황제펭귄서식지에 방문하는 날이다. 올해 남극 방문 후 첫번째 조사이다. 오랜만에 헬기에 타려니 살짝 긴장이 되었다. 3년전 처음 헬기에 탈때 서두른 나머지 헬기의 난간에 무릎을 찧었던 기억이 났다. 안전하게 천천히 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케이프워싱턴은 장보고기지에서 바다방향으로 약 35km 떨어진 황제펭귄 서식지로 몇 년전부터 우리팀에서 조사를 하고 있다. 황제펭귄의 개체수는 주로 새끼수를 세는데, 매년 2만마리 정도의 새끼가 확인되고 있다. 어미수까지 계산하면 약 8만마리 이상인 남극에서도 가장 큰 황제펭귄의 번식지 중 하나이다. 전세계의 황제펭귄 개체군의 약 8%, 이곳 빅토리아랜드에서는 약 21%의 황제펭귄이 이곳에서 번식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우리팀은 이곳에서 4년전부터 새끼수 모니터링을 하고 있는데, 첫 두해에는 황제펭귄의 새끼수를 직접 눈으로 세다가, 작년부터는 항공사진을 찍어서 사진상의 새끼수를 세는 방법을 이용하고 있다. 황제펭귄의 새끼들은 매우 넓은 면적에 퍼져있어 눈으로 세는 것에 한계가 있고, 정확도가 떨어지는데다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작년에 항공에서 찍은 사진으로 새끼수를 직접 세었는데, 검은색 어미와 회색 새끼가 비교적 정확히 구분되었다.

수많은 펭귄이 번식하다보니 새끼들의 사체도 매우 많은데, 대부분 굶어 죽은 것으로 보였다. 남극의 가장 추운 기간에 번식하는 황제펭귄들은 암컷이 새끼를 낳고 바다에 먹이를 먹으러 갔다가 새끼가 부화할 즈음 돌아오는데, 어미가 조금만 늦게 돌아오거나, 제때 교대하지 않으면 새끼가 굶어죽는 경우가 많이 생긴다. 11월 초에는 이러한 사체들이 매우 많다가, 도둑갈매기들이 찾아오는 11월 중순부터는 도둑갈매기들에 의해 사체들이 훼손되어 샘플로 사용하기가 좋지 않다. 워낙에 많은 사체가 있다보니 도둑갈매기들도 이 시기에 이곳으로 와서 언덕위에 둥지를 틀고 펭귄새끼 사체를 먹으면서 자신들의 새끼를 키우는 곳이다. 뉴질랜드 연구자들도 황제펭귄의 신선한 배설물을 채집하고 싶다고 하여 같이왔다. 우리는 배설물에서 먹이원 분석을 할 예정인데, 뉴질랜드 연구자들은 황제펭귄의 장내미생물 연구를 한다고 했다.

일년만에 돌아온 황제펭귄의 번식지에서 황제펭귄들을 보니 감회가 남달랐다. 우리가 헬기에서 내려 펭귄 군서지로 들어가자 멀리서 우리를 알아본 펭귄들이 사람들에게 몰려왔다. 황제펭귄은 오랜시간동안 남극에서 살아오면서 사람을 봤던 일이 거의 없을 터이다. 사람을 딱히 포식자로 인식하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신기한 동물을 보는 것처럼 우리에게 몰려들곤 했다. 펭귄 사체와 배설물 샘플을 마치고 사진을 찍고 있는데, 카메라의 배터리가 벌써 방전이다. 기온이 워낙 낮아 배터리가 오래 버티지 못하는 모양이다. 카메라를 한대만 가져왔는데, 여분 배터리와 카메라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시료채집을 마치고, 헬기가 있는 곳에 돌아오니 뉴질랜드 연구자들도 돌아와있었다. 커피와 샌드위치를 나눠먹고, 다시 펭귄 서식지를 둘러보았다. 케이프워싱턴의 절벽주변으로는 많은 흰풀마갈매기도 번식을 하고 있는데, 백여마리의 흰풀마갈매기들이 무리를 지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모습이 장관이었다. 기지에서 몇일간 장비준비만 하다가 황제펭귄들을 만나니 추워도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기지에 복귀하면 아직도 캠프준비할게 많아 쉬지 못하겠지만 오늘은 황제펭귄과 함께하니 기분이 좋았다. 올해는 이곳 언덕위에 일년동안 황제펭귄을 관찰하는 카메라도 설치할 예정이다. 내일은 뉴질랜드 연구자 포함 텐트설치 연습을 하기로 했다. 저녁까지는 캠프 준비를 어느정도 마쳐야 해서 나먼저 헬기를 불러 기지로 복귀했다. 다음 방문때까지 펭귄들이 번식지에 남아있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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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풀마갈매기(Snow petr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