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다한 역사이야기 31편 - 장자상속의 조선?? -5-

in #kr6 years ago

잡다한 역사이야기 27편 - 장자상속의 조선?? -1-
잡다한 역사이야기 28편 - 장자상속의 조선?? -2-
잡다한 역사이야기 29편 - 장자상속의 조선?? -3-
잡다한 역사이야기 30편 - 장자상속의 조선?? -4-

윗글들에서 이어집니다 ^^


정조의 죽음과 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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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죽음이후 왕위를 물려받은 순조는 비교적 어린나이에 (11세)즉위하여서 수렴청정을 하게 됩니다. 그게 바로 드라마 이산에서는 악역으로 나왔던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김씨였습니다. 그리고 이 기간동안 정조치세동안 활약했던 인물들이 많이 탄압받았지요. 특히 남인이 큰 타격을 입습니다. 특히 당시 조선에 가톨릭이 전해져서 남인계열이 많이 믿고있었는데, 신유박해로 박살이 나버리지요.

그리고 정순왕후는 3년만에 수렴청정을 거두고 순조는 친정을 시작합니다. 그러나 순조는 재위기간 내내 병을 달고 살정도로 몸이 약한 편이었고, 성인이 되어서 직접 정사를 볼 무렵 터진 홍경래의 난으로 정치에 손을 놓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 전면으로 나선게 김조순을 대표로 하는 안동김씨의 세도정치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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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도정치와 효명세자

원래 세도가가 주도하는 정치는 영조와 정조시절에도 있었으나 그때는 왕이 직접 의욕적으로 정치를 주도하여 심하지는 않았으나 순조는 몸도 약했고, 정치에 적극적이지 않다보니 점차 안동김씨의 입김이 커졌습니다. 김조순의 생전에는 비교적 간접적으로 여러 사람들을 이용하여 세도정치를 해나갔습니다만 김조순의 사후에는 아들과 조카들이 전면에 나서서 모든 관직을 독점하고 우리가 아는 세도정치를 해나가기 시작합니다.

순조도 이래서는 안되겠다 하여, 아주 똑똑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자신의 아들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깁니다. 그리하여 모두의 기대를 받고 정사를 맡게된 효명세자는 여러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잘해나갔지만 2년만에 병에 걸려 일찍 죽게됩니다. 이때 나이가 21살이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지요.

순조의 죽음과 최연소로 즉위 한 헌종

효명세자의 죽음과 이어서 순조가 아끼던 두 딸도 곧 사망하였는데, 순조는 이 충격을 더 버티지 못하고, 다리에 난 종기가 악화되어 사망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왕위는 순조의 손자이자 효명세자의 아들이었던 8살난 헌종이 즉위하게됩니다.

최연소로 즉위한 헌종은 (단종은 11세에 즉위) 다시 수렴청정을 하게 되는데 이때 순조의 비인 순원왕후 김씨가 하게 됩니다.(안동김씨) 이 시절에는 천주교 신자를 대대적으로 박해하는 병오박해가 일어나기도 하였습니다. 참고로 이 시기는 우리가 흔히 아는 풍양 조씨가 안동김씨를 몰아내고 세도정치를 한다고 배우는데-풍양조씨는 헌종의 어머니 가문입니다-실제로는 안동김씨가 거의 장악한 상태에서 풍양조씨가 한자리 차지하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8살에 즉위하여 12여년간 수렴청정을 받고 20세의 성인이 되어 친정을 시작했을때 헌종은 안동김씨를 점차 견제하는 방향으로 정치를 했지만 불과 23세의 나이에 사망하면서 이 모든게 물거품이 되어버리지요.

강화도령 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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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은 몇안되는 어진이 남아있는 왕입니다. 특이하게도 곤룡포대신 군복을 입고 있습니다.

헌종이 너무 이른나이에 죽자 조선왕실이 뒤집힙니다. 왜냐하면 헌종의 후사가 없었기 때문인데요. 그리하여 왕실의 큰어른이었던 순조의 비 순원왕후는 왕족중에서 한명을 고르게 됩니다. 그게 바로 강화도에 있던 이원범이었지요.

이원범은 정조의 아버지였던 사도세자의 후손입니다. 사도세자는 서자가 여럿있었는데, 그중에 한사람 은언군이 있었습니다. 은언군은 정조 10년 홍국영과 역모를 꾀했다는 혐의로 교동도로 유배되었고, 이때 이원범의 아버지 이광도 같이 가게 되었죠.(이광은 은언군의 5번째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순조 10년 마침내 은언군은 사약을 받아 죽게 되었고, 이광은 유배지에 남아서 있다가 1830년 유배에서 풀려납니다. 그리하여 한성으로 돌아올수 있었고, 그 다음에 3남 이원범을 낳게되죠. 그러다보니 참 족보가 이상한데, 서자의 서자의 서자인...... 왕실과는 아주 먼 관계였습니다. (사도세자의 서자 은언군, 은언군의 서자 이광, 이광의 서자 이원범)

그러나 어찌되었든 왕족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당시만해도 남자왕족이 적어서 그랬던건지 몰라도 한성에서의 생활은 편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10살때 아버지가 죽고, 14살때는 제일 큰형이었던 이명이 역모사건에 연류되어 처형당하고, 연좌제로 둘째형 이경응과 같이 교동도로 유배되었다가 다시 강화도로 유배되게 됩니다. 그렇게 5년간 농사를 지으며 평범한 생활을 하게되었죠.

이러다보니 철종이 즉위하는것을 두고 안동김씨가 일부러 철종을 선택했다 말들이 많았지만 당시에는 너무너무 남자왕족이 귀해서 그나마 제일 가까운 사람을 고른게 철종이었습니다. 정통성따지고, 혈통따지는 유교적 관념에서도 당시 남아있던 왕족들 중에 제일 가까운게 이 철종 이원범이었으니, 당시 조선의 왕족이 얼마나 귀했는지 알수 있는 대목이었죠.

효종의 외아들 현종, 현종의 외아들 숙종, 숙종은 비교적 여럿 아들들을 두어있지만 다들 대가 끊겼고, 영조 역시 아들은 사도세자 뿐 사도세자가 비교적 여러 아들들을 두었기 때문에 왕족이 남아있었습니다.

당시 철종말고 거론되는게 훗날의 흥선대원군 이하응이었습니다만 이하응은 따져보면 철종보다도 더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무려 인조때까지 올라가야합니다-철종이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준비도 없었고, 갑작스럽게 왕이되었기 때문에 철종은 처음에는 직접겪었던 백성들의 고초를 풀어주기 위해 의욕적으로 개혁을 추진해보려고 했으나 워낙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굳건했기때문에 아무런 소득이 없었습니다. 결국 철종 안동김씨 세력의 허수아비왕이 되어버렸고, 실의에 빠진 철종은 음주와 여색으로 시간을 보내다 33세의 나이로 즉위 14년만에 사망하게 됩니다.

철종의 죽음과 안동김씨, 그리고 흥선대원군과 고종

철종은 여러 자식을 두었으나 대부분 일찍 죽었고, 결국 철종이 죽었을때 또 다시 후사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당시 정권을 잡고있었던 안동김씨가 새로운 왕위 계승자를 찾는 사이 당시 왕실 최고 어른이었던 신정왕후 조씨가 당시 남아있던 왕족중에서 비교적 나이가 어렸던 12세의 이하응의 아들 이명복을 고르게 되니 그가 바로 고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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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에는 사진이 있어서 사진으로도 접할수 있습니다.

조선의 실질적인 마지막 왕이자, 여러 평가가 어울리는 고종은 가계도를 따져보면 인조의 3남의 8대손이니 철종과는 무려 17촌 관계라는 어마어마하게 멀리 떨어진 왕위와는 상관없었던 왕족이었습니다만 여러 이해관계가 얽히고 얽혀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당연히 12세의 나이였기 때문에 수렴청정을 받았고, 또 흥선대원군의 꼭두각시처럼 조종당하기도 하였으나 나름 능력도 있어서 평범한 수준의 왕으로 끝날수도 있었으나 당시의 상황이 참......

결국 고종은 43년이라는 조선왕들중에서도 순위권에 들어갈만큼 오래 재위했었습니다만 결국 조선은 망하게 됩니다. 물론 순종도 있었으나, 조선이라는 나라는 결국 고종을 끝으로 대한제국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조선이라는 국호의 마지막 왕은 이 고종이었죠. 고종은 워낙 평가가 박하기도 하고, 고종시대의 일들은 워낙 복잡해서 더 많이 적지는 못할것 같습니다만은 만일 그가 조금이라도 능력있는 왕이었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이렇게 조선은 총 26명의 왕이 존재했고, 대부분의 왕은 장자가 아니었습니다. 장자는 손에 꼽힐정도로 적었고, 그러다 보니 참 다채로운 경력의 왕들이 많았습니다. 정통성과 대의명분을 따지는 유교도 결국은 현실앞에서는 어쩔수 없었던 것일까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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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었습니다
즐거운 하루되셔요~~^^

감사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세요

과거 왕권 권력싸움은 드라마에서 많이 봤는데 권력싸움이란게 예나 지금이나 참..

어쩔수 없죠 ㅠ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영조가 66세에 얻은 15살짜리 어린 왕비 정순왕후~ ㅋㅋㅋ
정조가 죽은 후 수렴청정으로
정조 꿨던 정치와는 반대되는 정치만 했던
아주 골 때리는 캐릭터였죠~ ㅋ ㅋ ㅋ

그렇죠 ㅋ 66세때 15세라니.... 어쩌면 한이 맺혀서 그랬을지도요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