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Central Bank) 논쟁 : 중앙은행은 정말로 무능해졌는가? (2)
안녕하세요, JOHN입니다.
중앙은행(Central Bank) 논쟁 : 중앙은행은 정말로 무능해졌는가? (1)에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과 필립스곡선에 관한 기본적인 개념을 언급했습니다. 이제 현재 주요국들의 상황이 어떠한지, 그리고 필립스곡선의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논쟁과 논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본 후 그 시사점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현재의 경제상황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맞은 장기간의 침체를 끝내고 세계경제는 회복하고 있다. 교역량이 다시 증가하고 있고, 각 국의 실업은 크게 하락했다. 특히 선진국의 경제는 회복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현실 경제를 이해하는 한 단면, 즉 필립스곡선을 떠올려보자. 필립스곡선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율 간 역의 관계를 보여주는 것이므로, 경기가 회복함에 따라 실업률이 하락하면 당연히 인플레이션율은 올라야 한다.
아래 그림은 미국의 인플레이션 상황과 실업 상황을 보여준다.
1) 고용 상황 : 미국의 실업은 금융위기가 정점에 달할 때 약 10%로 치솟았다가, 최근 4.1% 수준까지 하락했다. 이때 '인플레이션을 유발하지 않는 장기적인 실업률(NAIRU) 또는 자연실업률'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경제는 단기적으로 수요와 공급이 변동하면서 경기순환이 발생하지만, 장기적으로 수급이 일치하는 균형상태로 도달한다. 바로 이 장기적인 균형상태에서의 실업률을 자연실업률이라 하는데, 현재의 상태는 실제 실업률이 장기균형 실업률보다 낮은 상태다. 경제이론에 비춰볼 때 이런 상황은 어떤 결과로 이어져야만 하는가? 바로 '물가상승'이다. 자연실업률 혹은 NAIRU는 경제 내의 가용자원(노동, 자본, 기술 등)을 모두 활용한 '완전고용' 상황에서의 실업률이다. 그런데 실제 실업률이 그 추정치보다도 낮다는 것은 경기회복세가 강하고 사람들이 충분히 고용되어, 기업들이 빈 자리를 충원할 사람들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당연히 임금의 상승으로 귀결되고, 임금의 상승은 소비를 진작시키며 물가상승으로 이어져야만 한다.
2) 물가 상황: 앞서의 실업상황을 감안해보면 물가는 올라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아래 우측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소비자물가지수(CPI), 그리고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코어 인플레이션(Core Inflation)이 여전히 미 연준의 인플레이션 목표, 2%를 하회하고 있다.
식료품과 에너지를 수요측 요인보다 공급측 요인에 영향을 많이 받고, 또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으로 제어하기 힘들다. 이에 따라 물가의 기조적인 흐름을 보기 위해서 근원 인플레이션 지표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유럽의 상황도 그리 다르지 않다. 재정위기의 여파로 한때 12%를 상회하는 고실업을 겪었던 유로존은 경기회복에 힘입어 최근 8% 중반까지 실업률이 하락했다. 그러나 실업률의 기조적인 하락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물가상승률은 오히려 횡보 또는 하락하고 있다. 근원 인플레이션율을 보면 상황이 더 좋지 않다. 2017년 7월 1.2%였던 것이 12월에는 0.9%까지 하락했다. ECB는 2018년 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1.8%에서 2.3%로 크게 상향조정했으나, 물가상승률은 1.4%에 그칠 것이라 전망했다.
일본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일본은 양적완화를 통해 엔화가치를 크게 하락시키면서, 기업의 채산성을 높이고 동시에 고용을 개선시킬 수 있었다. 이에 따라 17년 말 일본은 완전고용에 가까운 2.8%의 실업률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경기가 크게 개선됐음에도 불구하고 물가상승률은 0.8%에 불과하다.
현재의 경제상황이 충분히 개선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물가상승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불가사의를 규명하고자 상당한 논의와 연구들이 쏟아져왔다. 우선 대부분의 중앙은행 관계자나 경제학자들은 임금상승이 미약하다는 점, 그리고 경제주체들이 인플레이션을 기대하지 않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고용상황이 개선되더라도 임금이 상승하지 않으므로, 소비자들은 더 많은 돈을 쓸 수 없고 이것은 물가상승을 막게 된다. 그렇다면 왜 임금은 상승세가 미약하고, 경제주체들의 기대 인플레이션이 기조적으로 낮은 것일까?
2. 필립스곡선 평탄화(혹은 실종)의 이유
- 미국의 경기호조에도 불구하고, 낮은 인플레이션을 기록하는 것은 아래 그림처럼 필립스곡선이 평탄해졌다는 것을 시사한다. 사실 필립스곡선은 지금만큼 과도하게 평탄한 적은 거의 없었으나, 1980년대 이후로 지속적으로 평탄해져왔다.
- 필립스곡선의 기울기가 평탄해지면, 실업률의 큰 폭의 변동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 중앙은행의 정책능력엔 큰 제약이 생길 수 있다. 중앙은행은 물가안정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지만, 동시에 완전고용을 중시하기도 한다. 그런데 저물가 및 저실업 조합의 경제상황이라면, 중앙은행이 달성해야 할 목표 간에 상충이 생기게 된다. 인플레이션율이 충분히 낮으면 중앙은행은 금리를 내려 물가를 높이고, 실업률이 정상수준보다 낮은 경우면 경기과열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 이런 혼란스런 상황은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을 통해 경제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게 하며, 이로 인해 경기를 부양해야 하는지 혹은 진정시켜야 하는지 쉽게 결정할 수 없게 만든다. 중앙은행이 무능해지는 순간이다. FRB 前 의장인 Janet Yellen은 위와 같은 저실업-저인플레이션이 유지되는 상황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처럼 낮은 인플레이션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저인플레이션은 일반적으로 연방기금금리를 낮추는 상황으로 이어지므로, 이 상황에서는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통화 정책을 완화하려는 중앙은행의 운신의 폭이 줄어들게 됩니다. 게다가 인플레이션이 미 연준이 명시한 2 % 목표를 지속적으로 하회한다는 것은 FOMC의 신뢰성을 훼손시켜 인플레이션 기대치를 표류하게 만듦으로써 실제 인플레이션과 경제 활동이 더욱 불안정해질 수 있습니다. - Janet L. Yellen, Inflation, Uncertainty, and Monetary Policy(2017)
문제는 저실업과 저물가라는 이상한 조합이 상당히 오랜 기간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보니 중앙은행들은 아래 그림처럼 오랫동안 인플레이션 예측에 실패했고, 이런 상황 하에서 BIS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Claudio Borio는 "누군가 조금 더 정직해진다면, '우리가 인플레이션 프로세스에 대해 정말 알고는 있는가'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라며 비판했다. Yellen 또한 어느 정도는 이를 시인하면서, "인플레이션 동학을 이해하는 중앙은행의 분석틀 중 일부가 근본적으로 잘못됐을 수 있다."고 했다.
중앙은행은 어쩌면 인플레이션 예측에 소질이 없는 건 아닐까이제 필립스곡선이 평탄화 혹은 실종됐다고 말하는 몇 가지 논거들을 살펴보자.
1) 물가기대 하향안정가설 : Ben Bernanke(2007)
- 필립스곡선이 평탄화된다는 것을 달리 말하면 경제 내의 Slack(유휴생산자원)과 인플레이션 간 연관성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아래 그림은 필립스곡선 기울기 계수의 동태적 변화를 나타낸 것으로, 지난 20여년 간 필립스곡선의 기울기가 지속적으로 감소해온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경제 내의 Slack과 임금 간의 연관성'보다도 'Slack과 물가 간의 연관성'이 더 많이 약화되어 왔다는 것이다. Bernanke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중앙은행의 신뢰성 제고를 주장한다. 1980년대초 이래로 인플레이션에 관한 거시경제학의 많은 발전이 있었고, 그에 따라 중앙은행들은 낮고 안정적인 인플레이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민간경제주체들은 중앙은행의 인플레이션 통제능력을 신뢰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는데, 그 증거가 바로 민간의 기대 인플레이션 수준이 중앙은행의 목표 인플레이션 수준과 오랫동안 유사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민간의 인플레이션 기대 수준이 낮아진다면, Wage-Price Spiral의 메커니즘이 약화되어 자기실현적으로 물가도 하향 안정화된다는 것이다.
Wage-Price Spiral : 인플레이션 기대가 임금과 물가를 모두 상승시키는 메커니즘으로, '인플레이션 기대 → 임금 상승 → 소비 증가 → 물가 상승 → 인플레이션 기대'로 작동한다.
물가기대 하향안정 가설은 중앙은행의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논거가 되어 왔다. 중앙은행이 민간과 잘 소통함으로써 민간의 기대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있다면, 실제로 민간의 행태변화를 유발함으로써 물가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민간의 미래 경기전망을 반영하는 기대인플레이션은 현재의 경기여건에도 영향을 받지만, 경제가 구조적인 변화를 겪을 때 극적으로 바뀐 후 고착화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고용여건이 완전고용 수준에 이르고 노동시장의 Slack이 거의 없어지자, 기대인플레이션이 Fed의 목표수준에 거의 도달했다. 반면 유럽은 경기가 호조를 보이고 있긴 하나 여전히 경제 내의 Slack이 남아 있어 기대인플레이션이 목표수준을 하회하고 있다. 이렇게 유럽의 기대인플레이션이 오르지 않자 Mario Draghi는 노동조합들에게 '임금협상 시 과거의 인플레이션을 참고하지 말라'는 이례적인 당부를 했다. 어찌 됐든 이 국가들은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물가전망이 크게 저하되긴 했으나, 다행히도 경기회복 국면에서 민간의 기대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본과 같이 극적으로 경제위기를 겪고 동시에 인구구조가 변화한 경우, 민간의 기대가 정상적인 경제와 다른 형태로 고착화될 수 있다. 이른바 물가가 오르지 않을 것이라 기대하는 '디플레이션 사고방식(Deflationary Mindset)'이 나타나는 것이다. 구로다 하루이코는 "민간의 기대물가가 중앙은행의 목표수준에 맞춰지지 않고, 과거의 기대인플레이션율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에 중앙은행의 Forward Guidance에 잘 반응하지 않는다. 15년간 형성된 디플레이션 사고방식을 없애는 것이 쉽지 않다."라고 주장했다. 아래 그림은 일본의 기대인플레이션 추이를 나타낸 것으로, 일본의 경제가 회복하면서 경제학자들은 물가가 오를 거라 기대하는 반면, 민간(가계와 기업)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 사실들을 감안하면, 최근의 필립스곡선 평탄화는 부분적으로 민간의 물가전망이 둔화된 데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향후 경기회복이 지속되고, 민간의 물가전망이 정상화되면 Wage-Price Spiral 메커니즘 재현을 기대해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 거시경제학에서 민간의 '기대'는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나, 경제의 한 구성요소일 뿐이다. 이 외에도 임금과 물가가 오르지 않는 또 다른 이유들이 존재한다.
길어도 멋진 글이네요. 1편도 가서 읽고 왔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어마어마한 필력에 늘 놀랍니다 ㅎㅎ 보팅하고 가요~~
과찬이십니다..^^ 감사드립니다 :)
오우. 막연히 생각만 하고 있던 건데, 명확하게 정리 된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 다음 편에서 더 많은 논거들을 제시할 생각이니 관심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이 기대를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가 Key인데, 그것이 잘 안되는 상황인 것이 문제인 것이네요. 좋은 글 고맙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되네요~
네, 정확히 그렇습니다! 기대인플레이션이 실제 인플레이션에는 분명히 영향을 미칩니다.
기대인플레이션이 십년 전, 이십 년 전보다는 하향 안정화되었지만 여전히 불안정하게 정착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경제상황에 의해 물가기대가 침체된 것도 있지만, 중앙은행이 잘 통제하지 못하는 것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중앙은행은 물가전망을 빈번히 틀려 왔고, 그런 과정에서 중앙은행조차 그 신념을 갱신해왔으니까요.
이러한 상황을 토대로 보면 인플레이션 기대정책에 대한 함의는 결코 간단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기대 인플레이션의 동학을 관찰하고, 기대 인플레이션이 실제 인플레이션과 실물경제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파악하며, 정책결정과 기대 인플레이션의 관계 등에 대해서도 알아야 하죠. 사실 중앙은행은 아직 이 부분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 시기가 무사히 지나고, 필립스곡선이 다시 살아나든 혹은 정말로 실종되든 중앙은행은 많은 것을 학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관심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전문적인 이야기 하시는 분들 보면 참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곤 하더군요.ㅎ
하하, 과찬이십니다. 저도 아직 공부할 게 많고, 호기심이 많아서 꾸준히 학습하고 있네요.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
글의 목표가 직선적이고 핵심을 통찰합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경제적 이슈를 공유해주셔서 감사함을 떠나 고개가 숙여집니다.
글이 묻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너무나 감사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ㅠ ㅠ 하나하나 쓰다보면 격려해주시고, 칭찬해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힘이 많이 납니다! 정말 더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올리신 글들 하나씩 읽어 보고 있어요!
관심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