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사치
한참을 망설이다 커피 두잔을 샀다.
육체적 심리적 피로는 뜨거운 커피 한모금을 간절히 원했고,
동시에 심한 갈증이 나는 탓에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얼음째 와작와작 들이켜고 싶었다.
갈증도 나고 피로 때문에 카페인 섭취를 하고 싶다면 그냥 아이스커피만 마시면 되지 않을까 싶겠지만 막 하루를 시작할때,
몸은 깨어있지만 어딘가 몽롱하고 피곤하고 이미 하루를 다 보내고 난 후 처럼 느껴질때,
무엇보다 가장 먼저 뜨겁디 뜨거운 커피 한모금을 꿀꺽 삼켰을때의 그 기분과 그 느낌은 공복의 모닝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잘 알것이다.
먼저 하나를 사서 마시고, 나중에 또 다른 하나를 사서 마시면 된다지만
일단 일을 하러 들어가면 커피를 사러 나오기가 힘들고 내 몸이 뜨거운것과 찬것을 단 일초의 오차도 없이 동시에 원할때 무엇을 먼저 넣어줘야 할지 내마음이라지만 참으로 고민이된다.
'두잔을 다 마셔?'
'당장 목이 너무 말라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싶은데 그럼 뜨거운 커피가 식을텐데..'
'일단 뜨거운 커피를 반정도 마시고, 냉장고에 넣어서 차가운걸 마시면 어떨까?'
'뜨거운걸 먼저 마시는거야. 그리고 온몸이 깨어나는게 느껴지면 재빨리 차가운걸 마시는거지.'
가게밖에서부터 한잔이냐 두잔이냐.
두잔을 산다면 마시는 순서는 어떻게 할것이냐.
한참을 고민하다 주문하는 순간까지 수초를 망설였지만 결국 두잔을 사고 말았다.
점원이 건네준 두잔의 커피가 담긴 캐리어를 들고 일터를 향해 걸으며 이건 <사치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핫아메리카노와 아이스아메리카노 두잔.
사이즈 업을 했음에도 가격은 6,600원의 저렴한 브랜드의 저렴한 메뉴이다.
누군가의 음료 한잔의 가격만큼밖에 안되는 것을 나를 위해 소비하며,
아무리 간절히 바랬다지만 분명히 좀 더 자제하고 신중해서 선택할수 있었을것이라는 생각에 죄책감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몇천원이 커피 두잔으로 엄청난 고민과 선택을 해야 한다는 내 자신이 조금 안쓰럽기도 했다.
이런 상황이 닥칠때마다 과거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20대 후반 직장동료들과 Y시에 있는 놀이공원에 가게 되었다.
신나게 돌아다니고 놀이기구를 타다가 목이 말라진 우리는 음료수를 사서 마시게 되었다.
모두가 각자 슬러시나 주스등의 음료를 하나씩 사서 마시게 되었고 어찌보면 그것이 당연한건데.
나는 속으로 어마어마하게 깜짝 놀랐었다.
'아니~!! 이런곳에서 각자 음료수를 하나씩 사서 마신단 말이야?!'
'저 사람들은 어떻게 자랐길래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쉽게 음료수를 살수 있는거지?'
그들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비난이라고 할것도 없이 그리 비싼 물건도 아니지 않은가) 나는 진심으로 너무나도 신기했던 것이다.
어릴적 그다지 부유하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영향도 있겠지만.
그당시 우리 부모님 세대는 살림에 여유가 있는 집이든 없는 집이든 절약이 생활화 되어 있고 불필요한 소비를 잘 하지 않았다.
유원지나 관광지 나들이 놀이공원같은곳에 가게 되면 미리 도시락과 음료수와 간식을 집에서 준비해서 들고 가는 것이 당연했고.
밖에서 어린 자녀들의 조름으로 어쩔수없이 군것질거리를 사주게 된다면 하나를 사서 여럿이서 나눠 먹게 했다.
관광지나 유흥지에서 파는 먹거리들은 우리가 일상 생활지에서 사먹는것에 비해 같은 물품인데도 가격은 두배나 세배 정도가 더 비싸기 때문이다.
그리고 늘상 그런것을 보고 겪으며 자란 나는 물론 그것이 아주 당연한것이였다.
어른들이 종종 하시던 말씀이 있는데 <돈도 써본 사람이 쓸줄 안다고>
늘 아끼고 궁색하게 살던 사람이 갑자기 큰 부자가 된다고 돈을 척척 잘 쓸수 있는것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시장에서 2-3천원짜리 옷(그당시 기준)을 사입던 우리 부모님 세대들이 돈을 열심히 벌어 넉넉한 살림을 하게 되었다고 갑자기 백화점에서 1-200만원짜리 옷을 쉽게 사지는 못한다.
습관의 무서움이라 할수 있겠다.
나는 결코 엄청나게 절약정신이 투철하거나 소비에 있어 자제력이 뛰어난것은 아니다.
다만, 여러가지 소비의 형태 가운데 어릴적부터 하지 않았던 한가지가 고정관념으로 굳혀져 있었던 것이 깨어지는 순간 10여년이 지난 후에도 뚜렷이 기억에 남을 정도로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었던것이다. (그것이 아주 사소한 금액의 소비일지라도)
이글을 읽는 분들 중 대다수는 <아니, 대체 음료수 하나가 얼마나 한다고 이정도로 호들갑이야?> 라고 하실수도 있겠지만 나는 정말 너무나도 진지하게 새로운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아, 스스로 돈을 버는 성인이라면 소매점에서 살수 있는 가격보다 두,세배는 비싼 물건이라도 누군가의 허락도 눈치도 볼 필요없이 살수 있는거로구나."
커피 두잔은 분명 사치였다.
커피 한잔으로 스스로 타협을 볼수 있었고 절제할수도 있었는데 굳이 두잔을 사서 마신다는것은 분명 돈의 액수의 크기와 관계없이 호화로운 소비이다.
커피 두잔을 구매하는 것이 사치로 느껴지는 오늘 그러한 사치를 부릴수 있다는것을 기쁘게 생각한다.
별것 아닌것에 또 과거의 기억 하나를 떠올려보며 행복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