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크치온스루스트(funktionslust) : 결과를 떠나 그 자체가 좋아서 하는 일

in #kr6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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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크치온스루스트(funktionslust)! 결과를 떠나 그 자체가 좋아서 하는 일을 뜻하는 독일어다. 나는 이 단어를 세스 고딘의 ‘이카루스 이야기’에서 알았는데, 보자마자 홀딱 반해버렸다. 그 자리에서 바로 노트에 파란 글씨로 옮겨 적고 빨간 펜으로 잘 보이게 표시해뒀다. 그리고 책을 다 읽을 때쯤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오늘. 노트를 뒤적거리다 발견한 이 단어에 나는 다시 반해버렸다. 아니, 확신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다. 운명이구나. 풍크치온스루스트! 이 단어가 나고, 내 삶은 이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게끔, 나는 그렇게 살 것이다. 다짐으로 포장했는데, 부끄럽다. 사실은 그렇지 않고선 못사는 성향이다. 나는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면 지속하지 못한다.


회사 다닐 때의 나는 돈에 목마른 귀신이었다. 매일같이 월급 외의 돈벌이 수단을 찾고 있었다. 서점에 가면 경제/경영 구획만 돌았다. 그러다 ‘구글 애드센스로 돈 벌기’를 보고 블로그로 꽤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자는 ‘국내 블로그 플랫폼 중 사람을 가장 많이 모을 수 있는 건 네이버 블로그지만 네이버 광고 시스템인 애드포스트로는 유의미한 이익을 얻기 힘들다. 오직 구글 애드센스만이 월급을 대신할만한 이익을 기대할 수 있다’라고 했다. 국내에서 구글 애드센스를 가장 편하게 달 수 있는 건 티스토리 블로그였다.


티스토리 블로그를 만들었다. 블로그를 만들기 위해 기존 사용자의 초대장이 필요하지만 모바일로 우회하여 초대장 없이 바로 만들 수 있었다. 이제 포스팅해야 하는데 무엇을 할까? 애드센스 승인을 위해 적어도 3개월은 꾸준히, 하나의 분야에서, 한 번에 3,000자 이상 분량으로 계속 포스팅하라고 했다. 자소서에 700자 채우기도 힘들었는데, 3,000자는 어떻게 채워야 할까? 평소에 관심을 두지 않던 일로 3,000자를 채우기는 무리라고 생각했다. 마침, 당시의 나는 3년간 1,000권의 책을 읽겠다고 열심히 책을 읽고 있었다. 그래서 책 리뷰를 하면 인상 깊었던 문장 복사 붙여넣기를 하여 분량도 쉽게 채우고 꾸준히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2016년 11월 29일, ‘책 리뷰 - 구글 애드센스로 돈 벌기’라는 제목으로 첫 번째 포스팅을 했다. 2016년 12월 1일, ‘책 리뷰 – 해적들의 창업 이야기’로 두 번째 포스팅을 하고, 2017년 1월까지 적어도 일주일에 2개의 포스팅을 했다. 그리고 2월부터 한 달에 포스팅 한 개 정도로 뜸해지더니 5월부터는 블로그에 거미줄이 쳐졌다. 재미없었다. 무엇보다 돈 벌려고 하는 일인데 돈이 안 벌리니 어떻게 지속할 수가 있을까? 시간이 아까웠다.


2018년 2월 말, 담당 차장님께 퇴사 의사를 밝혔다. 한 달 뒤 3월 말에 퇴사하겠다 했지만, 차장님의 만류로 4월 말까지 다니기로 했다. 얘기하고 나니 실감이 났다. 정말로 퇴사를 하는구나.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 의지가 차올랐다. 퇴근 후 술 먹고 폰 보며 흘려보내던 시간이 아까워졌다. 그 시간은 나를 위해 제대로 쓰여야 했다. 집에 오면 진이 빠져서 널브러지던 내가, 무슨 힘이 생겼는지 집에 가까워질수록 걸음이 가볍고 정신이 맑아졌다. 사업을 구상하고, 책을 읽으며 미래를 생각했다. 문득 이 과정을 글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참고할 수 있는 이정표가 되면 더 좋고. 그날부터 생각을 글로 쓰기 시작했다.

벌써 5개월이 됐다. 조회 수는 20이 나올까 말까에 댓글 하나 안 달리고 좋아요 두어 개 눌리는 글을 쓴지. 괜찮다. 풍크치온스루스트! 결과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다. 생각을 날카롭게 다듬고, 정리하여 글로 남기는 과정이 좋아서 하는 일이다. 과정이 좋으면 결과도 좋아지지 않겠는가? 결과는 과정을 따라오는 법이니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과정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