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학] 음양의 조화

in #kr7 years ago (edited)

출근길 지하철에서 먼 인적이 드문곳에 자리잡고 담배를 한대 꺼낸다.

"아 출근하기 귀찮다."

연구직으로 어디에 있던 컴퓨터와 인터넷만 있다면 일을 할 수 있지만
고정관념인지 사회적 통념인지 모를 강압에 출근 해야만 하기에
출근이 싫기보단 귀찮았다. 지하철안에서 보낼 아까운 1시간이.

귀찮음과 싸우기 위해 깊은 한숨을 흰 연기에 담아 날려보내는 3분간의 사색 시간.
담배 연기가 아이들이나 비흡연자들에게 닿으랴
청소되지 않은 쓰레기와 널부러진 담배 꽁초들이 뒹구는 곳에 자리잡았다.
이젠 쓰레기 더미속이 끽연자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아침에 피는 첫 담배 한가치는 첫 담배를 배우는 사람 마냥 자아를 날려 버리는 느낌이다.
자아를 잃은 무아지경에서 시나브로 자아가 내몸으로 돌아올 때
생과일 주스 브랜드 주씨의 먹다 만 과일 주스가 보였다.
잘 모르겠지만 꽤나 오랫동안 이 성지에서 뒹굴었는지
뚜껑을 열면 자기 영역을 알리듯 썩은내가 풍길 것 같은 비주얼이었다.

저 음료가 토마토였다면,
적당히 무르익어 아주 맛있을 때 채집돼 신선한 상태로 고객을 맞이했을 것이다.
자기가 썩을 줄 몰랐던 양의 상태였겠지.
곱게 갈려 누군가의 영양분이 되었고,
남은 잔해는 지금처럼 썩어 문들어진 음의 상태가 된 것이야.

저 음의 기운이 강한 먹다 남겨 썩은 주스를 먹으면 난 죽을까? 아프기만 할까?
생명체가 양이기에 음을 섞으면 죽는걸까?
저걸 영양분이라고 생각하는 날파리들은?
아니 처음부터 썩은 것이 양이고 싱싱한 것이 음이었을까?
그 표현조차 사람이 만든 것이기에 규정하면 안되는 것일까?

담뱃불을 지지고 지하철 역으로 향하는 길

"아 디지털, 0과 1이 음과 양 같아 보이잖아."

아주 단순한 이분법인 숫자 0과 1이 다양하고 복잡하게 엮어 디지털 시스템으로 탄생한
현대의 모든 기기들이 생각 났다.

"컴퓨터 시스템이나 사회 시스템이나 다 똑같구만"

디지털화된 지하철 입구 결제 시스템에 스마트폰의 NFC 통신으로 설정한 교통카드를 가져대고
삑 소리와 함께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지하철을 타기전 전달 받은 국회의원의 홍보 명함을 보며 사색을 이어갔다.

김치 없이 고구마 한 박스를 먹은 답답한 감정을 일으키는 꼰대들의 충고질
먹고 살기 힘든 절대적 빈곤을 이겨낸 어른들이 남겨준 상대적 빈곤의 고통을 무시하는 어르신들
말을 안들으면 맞아야한다는 사고에서 탄생한 북한과 불통하려는 정치적 흐름
세월호를 정치 공학적으로만 해석한다거나 자한당 그 자체..

너무 많아 오히려 생각나지 않는 수 많은 것들 또한 현실이기에
음양의 조화에 빚추어 계륵적인 요소로 봐야할 것 같은데?

지하철이 한강 건널 때 볼 수 있는 한강 뷰는 놓치면 안되기에
잠시 생각을 고르다가 다시 사색을 시작했다.
환승하는 고터역 그 긴 에스컬레이터 쯤에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정답이 없네, 내가 걸을 길은 0과 1 사이 그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아"

3호선 교대방면 환승하기 직전 왼쪽 손목에 찬 검정 시계를 보니 8시 59분

"아 오늘도 지각이네"

일찍 출근하는 사람이 있으면 지각하는 사람도 필요하지 그게 조화로우니까.
그렇게 합리화하며 새로운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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