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민주주의 - 그 거대한 적폐를 넘어 (2) : 근거들
학교 민주주의 - 그 거대한 적폐를 넘어 (2) : 근거들
대한민국 최고의 거짓말은 대한민국 헌법 제1조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이 나라 헌법이 제대로 기능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지금 이 땅에서 대한민국 헌법의 정신이 제대로 살아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도 일단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문구는 좋다. 한 번 살펴보자.
대한민국 헌법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구다. 이 나라가 왕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공화국, 그것도 민주주의 방식으로 움직이는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하고 있고, 그 주권은 국민에게 있음을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 우리가 이것을 최고의 거짓말로 여겨도 헌법상으로는 이게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원리이며 정체성이다. 사람들은 이것을 거짓말로 만들려는 모든 시도에 분연히 맞서서 일어났고 그 결과 이것을 어느 정도 진실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것에 기반을 두어 시행되는 학생자치는 과연 '학교의 주권은 학생에게 있고, 학교의 모든 권력은 학생에게서 나온다.'를 실현하는 데 성공했는가. 이 점에 대해 심히 의심이 든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아니오'라고 답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거짓말'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교육기본법 제2조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민주국가의 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이바지 함을 목적으로 한다.
초, 중등 교육법 제17조
학생의 자치활동은 권장 및 보호되며, 그 조직과 운영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학칙으로 정한다.
그리고 경기도 학생 인권조례의 '제6절 자치 및 참여의 권리'가 있다. 이대로만 실현된다면 대한민국 학생자치는 그야말로 '학생이 주인' 되는 모범적인 사례였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그렇지 못했다. 이 원리들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에 역행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나고는 했다. 나는 이에 대해서 굉장히 쓰라린 심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위에서 나왔듯이 학생 자치활동에 관련한 사항은 학칙으로 정한다고 적혀있다. 그러므로 실질은 허상이었어도, 적어도 문구상으로는 어느 정도 보장하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성일고등학교 학칙에서는 학생 자치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여기에서도 '학생자치를 보장한다.'라는 말은 그럴듯하게 하고 있을까? 이렇게 의구심을 표시하는 이유는 현장에서의 민주주의 부재가 만연했기 때문이었다. 추후 이 글을 써 내려 가면서 언급하겠지만 선거에는 부정과 인기영합주의가 판을 쳤고, 공약 이행률은 저조했으며, 학생자치를 하라고 했던 기관들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 이제 그럼 당시 성일고등학교의 학칙 제39조 1항을 살펴보자.
성일고등학교 학교 규칙 제39조
①본교는 민주시민의 자질을 함양하고 학생의 취미 및 특기 신장을 위한 건전한 학풍을 조성하기 위하여 성일고등학교 학생자치회(이하 '학생회'라 한다)를 둔다.
어딜 봐도 '학생 자치활동을 보호한다'라고 명기되어 있지는 않다. 상위법에도 그리 적혀 있으니, 하위법에서도 명확하게 명시해 이 학교에서도 '학생자치가 확실하게 보장된다.'라고 선언했어야 한다. 워낙 중요한 원칙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나마 '민주시민의 자질을 함양하고'라는 부분에서 학생 자치활동의 원칙이 무엇인지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뿐이다. 또한, 그 조직의 이름에 학생'자치'회라고 규정함으로써 학생회가 자치기구임을 드러내, 간접적으로 상위법을 따른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학생자치를 보호한다는 선언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오히려 남용해서 학생의 기본권을 해칠 수 있는 문구가 있는데 바로 '건전한 학풍을 조성하기 위하여'라는 부분이다. 나는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에게 묻고 싶다. 건전한 학풍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사람마다 답이 다 다를 것이다. 그러니까 건전한 학풍은 사람마다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여기서 핵심은 이 '건전한 학풍'을 규정하는 게 도대체 누군가라는 부분이다. 그 주체가 학생이라면, 학생이 원하는 학풍대로 이끌어 갈 수 있는 학생자치의 토대를 마련하는 문구라고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 문구 자체는 모호하다) 그러나 주체는 학생이 아니다. 바로 학생을 제외한 구성원들에 (대체로 교사들) 의해서 건전한 학풍이 규정되었다. 그러므로 성일고등학교의 학생 규칙은 학생자치를 보장해주고 있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학생자치를 훼손할 근거로써 작용하고 있었다.
이를 보면 말만이라도 번지르르하게 했던 헌법과 교육기본법, 초, 중등 교육법 그리고 경기도 학생 인권조례와는 다르게 성일고등학교 학칙은 문구적으로도 학생자치를 제대로 보장할 근거를 갖고 있지 않았다. 말로는 민주시민 자질 함양, 학생자치회의 설치라고 함으로써 학생자치를 실현하는 기관처럼 자신들을 포장했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고, '건전한 학풍'에 따라 학생자치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제동 장치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2014년 당시의 내가 이 조항을 두고 '학생 자치 활동을 보장한다고 명시했고'라고 파악한 것은 틀린 사실이다.
이렇게 살펴보았을 때 당시 성일고등학교의 학생 자치는 실현 자체가 애초에 글러 먹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의원회니, 학생회장이니 뭐니 다 존재해도 실상은 위에서 좌지우지되는 외형적인 학생자치에 불과했다. 이런 식으로 학교는 기만적인 학생 자치의 근거를 통해 학생자치의 실현을 원천적으로 펼치지 못하도록 못 박아 넣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완전한 학생자치의 실현'을 꿈꾸고 보고서를 썼던 내 꿈은 애초에 박살 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