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대학교의 진의 - 동국대학교와 미당 서정주
동국대학교의 진의 - 동국대학교와 미당 서정주
올해 동국대학교는 개교 112주년을 맞았다. 역사가 긴 학교인 만큼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나왔다. 만해 한용운부터 연예인 이승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동국대학교 출신들이 활약하고 있다. 그러나 훌륭한 동문이 있으면, 치욕스러운 동문도 있기 마련이다. 그중 하나가 미당 서정주다. 미당 서정주는 동국대학교 전신인 1924년에 재개교한 경성중앙불교전문학교을 중퇴했다.
미당 서정주는 어떤 인물인가? 한국 시문학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고등학교 때 그의 시를 접했을 때, 어찌도 표현을 이렇게 멋지게 쓸 수 있는지 감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위대한 시인이 아니다. 철저한 기회주의자였다. 그는 친일파며 친독재 세력이었다. 당대의 가장 강한 권력에 붓으로 맞서거나, 펜을 꺾는 건 그에게 기대할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생긴다. 친일시를 작성했던 그가 전두환에게는 이런 문구가 있는 시를 지어 바친다. ‘나라 젊은이들의 체력을 길러서는 86 아세안 게임을 열어 일본도 이기게 하고’ 참으로 우스운 시대의 박쥐다.
권력에게 충성하고, 자신의 능력을 거기에 사용하는 방법으로 그는 살아남았다. 그의 시적 업적이 대단하다는 것은 부정하지 못하겠으나, 성공에는 그러한 이면도 있는 것이다. 그런 서정주는 동국대학교에 대한 시도 하나 지었다. 위 사진에 보이는 ‘우리 고향중의 고향이여’라는 시다. 개교 62주년을 기념하여 발표되었다. 전문은 다음과 같다.
그의 능력은 이 시에서도 빛난다. 정말이지 잘 쓴 축시다. 이걸 받은 동국대학교도 여간 자랑스웠던지, 중앙도서관에 걸어 두었다. 하지만 미당의 행적을 생각해보면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만해 한용운을 첫 졸업생으로 배출하고, 4.19 혁명 때 첫 사상자가 나왔으며, 각종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동국대학교에서 이런 시대의 기생자의 시를 걸어 놓는 것은 분명한 모욕이다. 업적은 강의실이나 연구실에서 논의되면 되는 거다. 그의 시문학 업적이 금자탑을 쌓았다고 해서, 이전의 행보를 무시하고, 저리 당당하게 미당의 시를 걸어 놓는다는 것은 학교 측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할 정도다.
중앙도서관은 학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시설이다. 그런 곳에 걸어놓은 시이니, 학교는 필시 자랑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리도 당당할 수 없다. 민주열사들을 기념하는 동우탑은 만해광장 구석,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만들어 놓는데, 미당의 시는 잘 보이는 자리에서 학생들을 맞이한다. 도대체 학생들은 무엇을 보고 배울까. 저렇게 기회주의자처럼 살면 성공한다는 걸 배울까.
최근 동국대에서는 노학연대를 바탕으로 청소 노동자 파업 투쟁에서 승리했다. 더 좋은 세상을 위해 권력과 타협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던 것을 세상에 다시 보여주었다. 그럴수록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에 있는 미당의 시는 더더욱 초라해진다. 미당이 있을 곳은 그런 곳이 아니다. 동국대가 ‘우리 고향중의 고향이여’를 계속해서 중앙도서관에 걸어 둔다는 것은, 동국대의 역사를 통째로 부정하겠다는 선언과 같다. 사실 그 동안의 행태가 그랬다. 서정주에 대한 찬가만 가득했고, 교양 수업에서도 서정주의 이름이 당당히 걸려있다. 반성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학교는 빛으로 어둠을 가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의 이름이 빛날 수록 어둠은 더 밝아진다.
이 시는 동국대 역사와 이념에 가장 충실했던 반역자가 남긴 위선으로서, 널리 공개가 되기는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설명 없이, 동국대를 칭송한 좋은 시라고 걸어두기만 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학교가 과연 이 학교의 역사와 이념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게 만든다. 자신들도 미당처럼 기회주의, 권력에 아부하면서 살터이니, 학생들은 그리 알라는 걸까. 학교는 명확하게 이 시가 걸려있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해야 한다. 또한 왜 그리 찬양만 하는지도 설명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동안 동국대학교가 저질러 온 반민주적인 행태, 노동자 비존중 행위 등에서 나온 말들로 동국대의 건학 이념이 바뀌었다고 단언할 수밖에 없다.
동국대에 마지막 양심이 있다면, 이 역겨운 시를 중앙도서관에서 내려야 한다. 늘 전통과 건학이념 그리고 부처님의 정신을 이야기하는 동국대가 잘못된 길을 가지 않기를 바란다. 시를 올리냐 마느냐 자체는 사소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서 동국대라는 학교의 정체성은 분명해진다. 자, 이제 선택은 동국대에게 남아있다. 미당의 시를 내릴 것인가 말 것인가. 동국대가 생각하는 고향은 어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