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대생 일기 - 01. 법이라는 공기를 뿌리는 기계에 대하여
법대생 일기 - 01. 법이라는 공기를 뿌리는 기계에 대하여
법학과에 전과하고, 첫 수업을 듣게된지 벌써 3개월 가까이 된다. 사학도에서 법학도의 길로 방향을 전환하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역사는 그저 단순히 좋아해서 선택한 것이라면, 법학은 진심으로 그 길을 가겠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에, 사학을 대할 때보다 사뭇 진지해질 수 밖에 없었다. 법은 사회에서 공기와 같은 존재다. 좋든 싫든 우리는 늘 그걸 마시고 살아간다. 지금에 와서 법이 없는 사회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러나 그 공기가 얼마나 신선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나의 의문은 여기서 출발했다.
법이라는 공기는 얼마나 신선한가? 여기서 신선하다는 건, 그 기능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확신하건대 법은 절대 신선한 공기가 아니다. 오히려 사람을 질식시킬, 혼탁한 공기다. 그렇다고 진공 상태로 바꾸어 버리면 절멸하기 때문에, 그대로 두는 것일 뿐이다. 이에 대해서 다양한 개선들을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법이라는 공기를 뿌리는 기계가 애초에 잘못되었고, 또한 광범위하게 뿌리는데, 작은 공기청정기 하나 두었다고 해서 무슨 개선이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운이 좋게도, 그 옆에 서 있는 사람만이 잠깐 혜택을 보게 될 뿐이다.
여기서 나는 위선자들의 모습을 본다. 크게 두 종류다. 기계를 갈아 치우지 않고, 공기는 신선하다고 우기는 사람과 공기 청정기 몇 대만 더 설치하면 된다고 호언장담하는 사람. 전자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으려고 하기에 위선적이고, 후자는 근본 원인을 무시하기 때문에 위선적이다. 둘 다 나쁘지만, 경중을 가려야 한다면, 당연히 후자를 선택할 것이다. 전자의 경우는 차라리 솔직하기라도 하다. 후자는 공기를 뿌리는 기계를 무시한다. 그것이 문제임을 명확하게 알지만, 바꾸고 싶어 하지 않는다. 오히려 공기 뿌리는 기계를 열렬하게 지킨다. 한국에서 이야기하는 사법 개혁이라는 건 대개 이런 종류다.
나는 법학도로서, 기계 자체를 바꾸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이것은 법학도들이 추구하는 정의 실현과는 조금 다르다. 나는 그들이 하고자 하는 정의 실현을 기계를 사수하는 것으로 본다. 물론 그 기계에도 장점이라는 건 있기에, 어느 정도 활용하고, 공기청정기를 설치해,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도 이 세상에서는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그저 습득한 정의만을 지키는 것뿐이지 않을까? 유념할 부분이 하나 있다. 나는 그들이 생각하는 정의가 옳지 않다는 게 아니다. 그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 정의에 불합리한 부분이 있으니 강력한 교체를 원할 뿐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 공기를 뿌리는 기계를 다루는 방법을 배우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부족한 솜씨로 설계도를 그려본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정의, 그것이 기반이 된 법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그래서 적어도 상상 속에서는 나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있다. 하지만 상상일 뿐이다. 현실로 실현하기 위해서는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그것은 보통 고되다.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좌절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현실의 벽이 너무 크다는 사실. 이렇게 점차 타협하다가 ‘조금씩 개선하고, 있는 법을 잘 작용하면 된다’로 후퇴하고, 사람들이 존경하는 현실 법률가가 된다.
그러나 나는 현실 법률가와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정의를 찾아 나가며, 있던 것도 다르게 해석하여, 새로운 부분을 끄집어내는 유형의 법률가가 되고 싶다. 이렇게까지 결론이 나오자, 나는 하나의 결심을 하게 되었다. 바로 단순히 대학에서 배우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일본의 인권 변호사가 법정에서 사회로 나와야 한다고 호소했듯이, 나 또한 대학에서 사회로 나와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렇게 나는 기계를 갈아치우는 하나의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기존에 있던 기계 이해도 부족하고, 사회로 나가는 작업도 미진하다. 하지만, 언젠가는 좀 더 그것들을 잘 하게 될 날이 올 거라고 확신한다. 1mm라도 나는 더 나아가고 있고, 법적인 지식과 사고를 확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나는 기계를 갈아 치우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그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꿈을 꾼다. 어렵거나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그걸 실현시키기 위해서 조금이라도 노력해보려고 한다. 적어도 나에게는 꿈을 꾸지 않고 죽은 상태로 사는 상황보다는 꿈을 꾸면서 죽어가는 게 더 의미있다. 이것이 내가 법학도로서 가지는 가장 큰 원칙 중 하나다.
공기에 대한 얘기보고 갑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팔로잉 하겠습니다.
ㅎㅎㅎ 공기에 비유하셔서 이해가 쉽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