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과 학술출판의 파괴적 혁신

in #kr7 years ago

블록체인과 학술출판의 파괴적 혁신

한국 대학원생들의 졸업에 비상이 걸렸다. 학술DB 업체들이 구독료를 과다하게 인상하자, 대학이 협상 테이블 자체를 보이콧한 것이다. 이 덕에 올해 초부터 협상이 완료되지 않은 대학의 학생들은 엘스비어, 누리미디어, 한국학술정보 등이 제공하는 논문에 접근할 수 없다. 논문을 읽지 못하면 쓰지도 못하고, 결국 졸업을 못하거나 불법으로 논문에 접근해야만 한다.

예술작품에 저작권이 존재하고, 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공감대는 널리 퍼져 있다.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은 어떨까. 연구자의 저작권을 보호한다는게 누리미디어 등 학술지 업체의 논리다. 하지만 과연 논문이 예술작품과 같은 저작권법으로 보호되어야 할까. 아니다. 논문은 국민 모두의 것이어야 한다.

논문이 출판되기 위해 사용된 연구비 대부분은 세금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진행된 연구가 논문으로 출판되는 것이다. 따라서 세금을 낸 국민은 그 연구에 접근할 권리가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의 저작권을 보호하고 이들에게 이익을 준다면, 국민에게 소정의 금액을 내고 논문을 보게 하는걸 고려해볼 수 있다. 하지만 누리미디어를 비롯한 학술DB업체들은 논문의 저자들에게 아무런 이익을 돌려주지 않는다. 주변의 연구자 아무에게나 물어보라. 자신이 출판한 논문을 팔아 돈을 번 연구자는 단 한 명도 없다.

심지어 학술지는 논문게재료라는걸 받는다. 보통 신문에 칼럼을 실으면 필자에게 원고료를 주는데, 학술저널은 논문을 게재해주는 댓가로 수백만원에 이르는 돈을 받는다. 더 황당한 건, 논문 심사를 요청하는 심사위원에게 무료봉사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요약하자면, 학술지 시장은 철저하게 중앙집권화되어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몇몇 거대 학술지들이 저자, 독자, 대학, 심사위원 모두에게 돈을 받으며 자기 배만 불리고 있는 블루오션이다.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 바로 이들 거대 학술지 업체들이다.

얼마전 ‘연구를 위한 블록체인’이라는 논문을 읽었다. 극단적으로 중앙집권화되어 학술시장을 참극으로 몰고가는 학술지 업체들의 횡포를,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혁신할 수 있다는 제안이다. 분산화된 신용거래를 가능하게 하는 블록체인 기술이 학술지에 적용된다면, 자유롭게 연구데이터를 업로드해 공유하고, 이를 암호화해 보관하며, 연구결과를 빠르게 발표해 중복되는 연구를 줄이고, 특히 논문의 심사와 출판에 필요한 계약을 혁명적으로 바꿀 수 있다. 심사위원들은 무료봉사가 아닌 댓가를 받게 되고, 논문의 심사과정도 영원히 블록체인에 보관되고 검증된다. 더이상 중앙집권화된 거대 출판사의 존재는 필요 없어지게 된다.

학술지는 원래 연구가 다른 연구자들에게 효과적으로 공유되도록 하는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20세기 중반부터 학술지 시장은 엘스비어, 스프링어 등의 대형출판사들에 의해 독과점되었고, 이들은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해 연구 외엔 현실적 개념이라곤 없는 연구자들의 지갑을 털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연구자의 논문은 출판사에 귀속되고, 그 논문을 보려면 출판사에 돈을 내야만 한다. 학술지는 원래 연구자들 사이의 교류를 활발히 하기 위한 것이지만, 이제 거꾸로 교류를 막는 벽이 되었다. 이에 대항하려고 오픈액세스 학술지들이 우후죽순처럼 쏟아졌지만, 이들도 결국 논문게재료를 받고 심사위원에게 무료봉사를 요구하는 관행을 변화시키지 못했다.

블록체인 기술은 현대사회의 학문체계를 자본주의적 질서로 황폐화시키고 있는 거대 독점 출판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런 출판사 중 하나인 네이처가 최근 블록체인이 변화시킬 과학계의 변화를 비아냥거리는 글을 실었다. 그러니 해야 한다. 조선일보가 싫어하는 정부 정책은 무조건 시행해야 하는 원리와 같다.

김우재, 과학적 아나키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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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감사합니다. 이와 관련해서 https://www.pluto.network 라는 한국 프로젝트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데 관심이 생기시려나 모르겠습니다.

네 이미 알고 잇습니다. 아직 큰 진전은 없어 보이더군요. 기대하고 잇습니다

안녕하세요 pluto팀 입니다 :) 피드백은 항상 환영입니다. 관심과 응원 감사합니다!

학술 논문을 게재할 수 있는 스팀잇과 같은 플랫폼이 어서 나오길 기대합니다

항상 내편이 반이고 반대편도 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글 잘읽고 갑니다.

유익하고 좋은 글 잘 보고 감사드립니다~^^

독과점이 아닌곳이 없습니다. 지출되는 비용이 정당하게 배분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모든분야가...스팀잇을 본 받으면 사회가 더 좋아질것 같은데 말입니다.

'탈중앙화'에 대한 개념을 알고 나서 가장 먼저 생각난 '시장'이 이쪽이었는데, 역시 많은 분들이 비슷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계신 것 같네요.

페북에서 즐겨 보았습니다. 스티밋에서도 활약 기대하겠습니다.^^

과학출판계의 역사와 현황에 대해 가디언에 지난 여름 긴 기사가 난 게 있네요.

https://www.theguardian.com/science/2017/jun/27/profitable-business-scientific-publishing-bad-for-science

감사합니다

리스팀합니다. 좋은글잘보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