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 우리가 사랑했던, 강덕경 할머니!

in #kr6 years ago (edited)

故 강덕경 할머니. (1929~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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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목소리> 작업을 하는 동안.. 함께 했던..
많은 할머니들.. 모두.. 참 좋으셨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사랑했던 할머니는..
바로.. 강덕경 할머니. 였다!

작고 여린 체구의 할머니는..
애교도 많으시고.. 장난끼도 많으시고..

말씀도 무척이나 재미나게 잘 하셔서..
늘.. 우리에게 큰 웃음. 을 선사. 하셨고..

노래도 잘 부르시고.. 그림도 잘 그리시는 등..
다양하게.. 재주도 많으셨던 데다가..

어떤 일에도..
강단 있고! 적극적으로!! 행동. 하시면서..
우리의 작업에도.. 여러모로 큰 도움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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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강이 흐르는 진주. 에서 태어난.. 할머니는..
소학교를 졸업하고.. 열다섯. 어린 나이에..

일본인 담임 교사의 권유로..
‘여자근로정신대. 1기’ 가 되어.. 일본으로 떠나서..
항공기. 군수 공장. 에서.. 강제로 노역. 을 했는데..

그 곳 생활이.. 너무나 고달파서..
한밤중에 도망을 치다가.. 군인에게 잡혔고..

그 길로.. 부대로 끌려가서..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가 되셨다고 한다.

위안소에서.. 임신을 한 몸으로.. 해방을 맞은 후..
조선으로 돌아와서.. 아이를 낳았지만..

네 살에.. 아이가 죽은 뒤로.. 평생을..
결혼하지 않고.. 내내.. 혼자 사시면서..

위안부로서의.. 과거를 숨기고..
식당 일과 가정부 일 등을 하셨는데..

1992년에.. 위안부 피해자 신고. 를 하게 되면서..
그 때부터..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신 것. 이었다.

이후로.. 할머니는..
나눔의 집! 에서.. 함께 사시면서..

자신의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증언하고..
겪었던 일과 생각을.. 그림으로 그려서..
전시도 하고.. 수요 시위!! 까지..

일본 정부로부터 사과와 배상을 받기 위한..
운동! 을.. 정말 열심히!! 하셨는데..

너무나 안타깝게도.. 폐암으로 쓰러지시더니..

1997년 2월 2일.. 68세를 일기로..
한 많은 인생을 마감하게 되셨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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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에.. “나눔의 집” 정원에는..
할머니의.. 추모비! 가 세워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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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일생을 다룬.. 책. 이 출간되기도 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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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협에서는.. 할머니의 뜻을 기려..
“강덕경 상” 을 제정..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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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ngmadam님 안녕하세요. 깜지 입니다. @qrwerq님이 이 글을 너무 좋아하셔서, 저에게 홍보를 부탁 하셨습니다. 이 글은 @krguidedog에 의하여 리스팀 되었으며, 가이드독 서포터들로부터 보팅을 받으셨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앗, 감사합니다^^ 받은 보팅으로.. 할머니를 만나러..
나눔의 집에.. 다녀와야겠네요! ^^

짱짱맨 출석부 호출로 왔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앗,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故강덕경 할머님을 추모하며...

bluengel_i_g.jpg Created by : mipha thanks :)항상 행복한 하루 보내셔용^^ 감사합니다 ^^
'스파'시바(Спасибо스빠씨-바)~!

저도.. 오랜만에.. 잠시 묵념. 했네요...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마음의 빚이 있는 느낌입니다. 뜻깊고 의미있는 작업 감사드립니다.

@홍보해

감사합니다^^ 아직까지도 해결이 되지 못한.. 우리의 아픈 역사! 인데요.. 일본 정부의 제대로 된 사죄와 배상을.. 할머니들이 받으실 수 있을 때까지!!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드렸으면.. 정말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