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바람의 나날 36
장현태 부장이 내게 두 번째로 내린 명령은 조직폭력배 두목인 장대호를 잡아오라는 것이었다.
장대호가 가끔씩 들러 운동을 하고 간다는 헬스클럽에 회원으로 가입해 녀석이 나타나기만 기다렸다. 첫 번째 임무를 잘 처리하는 바람에 나는 의기충천해 있었고, 그렇지 않아도 매일 하고 있는 운동을 임무를 수행하면서 하게 되니 오히려 일거양득의 심정이 되어 내심 즐겁기까지 했다.
나는 하루 종일 헬스클럽에서 살다시피 했다. 오랜만에 세퍼레이트 머신이나 레그프레스 머신, 래트 머신 등의 전문기구를 이용한 다양한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도해 보았다. 하루하루 근육이 늘어 이러다가 미스터 코리아 선발대회에 참가할 수준이 되는 게 아닐까 싶어 질 정도가 되었을 때, 놈이 부하들을 이끌고 나타났다.
대개 정치깡패들이 여당 소속인데 비해 장대호는 특이하게 소속이 없었다. 하지만 누가 뒤를 봐주는지 경찰에 붙잡혀갔다가도 별 탈 없이 금방 풀려나곤 해서 세간의 화재가 되곤 했던 인물이었다. 장 부장으로부터 명령을 하달 받고 나서 장대호에 대해 꼼꼼히 조사했던 것이다.
놈이 운동을 하기 위해 옷을 벗자, 배와 등에 새긴 호랑이 문신이 먼저 드러났다. 이름대로 큰 호랑이였다. 정말 대호라는 이름에 걸맞은 문신이었다. 게다가 백이십 킬로그램이 넘는 거대한 몸은 군살이 하나도 없는 완전한 근육덩어리였다. 그가 기구를 다룰 때마다 배와 등에 새겨진 호랑이가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게다가 그를 수행하고 있는 부하들 또한 대단한 덩치들이라 나는 조금씩 위축되고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놈들의 수는 점점 늘어만 가고, 도대체 어떻게 저런 무지막지한 놈을 잡아갈 지 막막하기만 했다.
하지만 여기서 놈을 놓치면 다시 놈을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았다. 그 길로 잠적해버리면 어디서 놈을 찾는다는 말인가?
벽에 새워둔 십오 킬로그램짜리 바를 슬며시 집어 들고 나는 놈들에게로 조금씩 접근했다. 하지만 놈들도 여간 눈치가 빠른 축들이 아니었다. 이상한 낌새를 챘는지 두 놈이 재빠르게 나를 막아섰다.
나는 가벼운 봉을 휘두르듯 바를 놈들에게 휘둘렀다. 두 놈은 한 차례씩 어깨를 얻어맞았지만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놈들은 오히려 들고 있던 아령과 뎀벨을 내게 집어던졌다. 나는 운동기구 사이를 요리조리 피하며 놈들을 계속 후려쳤다. 드디어 머리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한 놈이 쓰러지고, 턱을 얻어맞은 다른 한 놈도 피를 낭자하게 흘리며 주저앉았다. 장대호는 벤치프레스용 벤치를 들고 나의 공격을 막아내고 있었다.
너무 시간이 지체되었다고 느낀 나는 좀 더 거칠게 놈들을 밀어붙였다. 드디어 장대호를 가까이서 보호하던 한 놈도 목을 얻어맞고 쓰러졌다. 이제 남은 사람은 나와 장대호, 단 둘 뿐이었다. 장대호는 뒷걸음질 치며 목욕탕 쪽으로 밀리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 일격을 가하기 위해 바를 높이 쳐들고 장대호에게 다가섰다.
어쨌든 성급하면 실수를 하게 마련이었다. 장대호에게 바짝 다가서던 나는 그만 물이 흥건한 목욕탕 바닥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미끄러지는 탄력에 의해 내 발이 장대호의 발을 걸었고, 장대호의 육중한 몸이 내 몸 위를 덮친 것이다. 장대호는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장대호는 내 위를 덮치는 것과 동시에 자기 겨드랑이에 내 목을 끼우고 조르기 시작했다.
나는 곧 숨이 막히고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아무리 버둥거려도 장대호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었다. 이러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몰려들었다. 그때 겨드랑이가 치명적인 급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벽에 붙은 거울을 주먹으로 쳐서 깨뜨렸다.
거울 한 조각이 내 손아귀에 잡혔다. 나는 깨진 거울 조각으로 장대호의 겨드랑이를 있는 힘껏 내려찍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그제야 내 목을 조이던 장대호의 겨드랑이가 슬며시 열렸다. 나는 발버둥을 치며 겨우 놈에게서 빠져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놈은 피가 흐르는 겨드랑이를 두 손으로 감싸 쥐고 허겁지겁 헬스클럽을 빠져나갔다. 나도 몸을 일으켜 놈을 따라 계단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헬스클럽 입구는 장대호의 부하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나는 사면초가에 둘러싸인 항우 꼴이었다. 이미 장대호는 부하들 뒤로 사라진 뒤였다. 장대호의 부하들이 야구방망이와 쇠파이프로 무장하고 나를 막아섰다. 나는 놈들에게 쫓겨 다시 헬스클럽으로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난장판이 된 헬스클럽엔 몸을 숨길 곳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창문을 열고 아래로 뛰어내렸다. 내가 아래로 뛰어내리자, 헬스클럽으로 쫓아 올라온 놈들도 따라 뛰어내렸다. 나는 졸지에 사냥감이 되어 무작정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런 내 앞에 고급승용차 하나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멈춰 섰다. 뒷문이 열리며, 장현태 부장이 안에서 손을 내밀었다. 나는 장 부장의 도움을 받아 겨우 차에 올라탔다. 차는 추격자들을 따돌리고 급히 그곳을 빠져 나왔다.
"이 일을 하다 보면, 항상 두 번째에 실수가 많더군. 아무래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미리 대기하고 있었지. 장대호가 떴다는 정보를 한 시간 전에 입수했거든.”
나는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고마운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한 번의 실수는 용납되지만, 우리 세계에서 두 번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두 번이 곧 마지막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장 부장은 역시 냉정한 사람이었다. 슬며시 일기 시작하는 장 부장에 대한 어설픈 감정의 끈을 과감히 차단해버렸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자신이 태풍의 눈 속으로 들어 왔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도 놈들에게 쫓겨 달아나던 생각을 하면 등골이 다 서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