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생활자] 작지만 마음에 확실히 와닿는 것들
2016년. 기억하는 한 첫 이사였다. 생후 면목동에서 보낸 2년은 너무 어려 기억에 없으니까. 우리 가족은 내가 2살 무렵부터 28년 동안 살던 월계동에서, 성신여대와 고려대를 길 하나 사이에 둔 안암동 끝자락으로 옮겨왔다. 난생 처음 살게 된 아파트였다. 아파트 5층 한 쪽에 자리잡은 내 방에서 잔 첫날. 공중에 떠 있는 기분이 들어 자꾸 뒤척였다. 아파트 특유의 공중부양 감각에 적응한 후에는 창문 너머 붉게 퍼지는 노을과 저무는 달을 즐기기 시작했다. 탁 트인 풍경을 내 방에서 볼 수 있다는 게 점점 더 좋아졌다.
올해로 이사온 지 햇수로 3년째. 나는 시간이 날 때 마다 보문동과 안암동, 동선동 사이를 어슬렁 돌아다닌다. 성신여대와 고려대 쪽은 번화가고 보문동 쪽은 아파트와 연립주택이 많다. 사람들은 대학가 쪽에 몰린다. 나는 수수한 건물과 골목으로 가득한 사람 사는 동네로 발길이 간다. 물론 지름신이 오면 로드숍으로 가득한 성신여대로 향하지만. 뭔가를 비우고 싶은 마음과 채우고 싶은 마음을 모두 한 동네에서 해결한다.
온전히 주거지역으로 눈을 돌려보자. 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건물 중 호기심 가는 게 몇몇 있다. 우선 카페가 괜찮다. 이 동네 카페에는 망원동이나 연남동처럼 있는 힘껏 뽐내는 귀여움이 없다. 대신 과하게 귀엽지 않아 편안하고, 밋밋해보여도 개성 있는 공간과 만난다. 엔틱한 나무 탁자와 멋진 화분으로 채워진 공간, 내부를 현대식으로 개조한 한옥 카페 같은 것들이다. 공간 분위기와 함께 ‘사쿠란보 차’처럼 대형 체인에서 잘 눈에 안 띄던 메뉴를 보는 것도 좋다.
이런 카페들은 주로 성북천 쪽에 있다. 조금만 부지런히 걸어도 재미난 공간을 마주치니 굳이 서울 중심지로 카페투어 갈 필요를 못 느낀다. 걸어서 갈 거리는 아니지만 버스 몇 정거장 떨어진 월곡역 쪽에 있는 인포숍 카페별꼴도 참 좋다. 장애인이나 성소수자 이슈 등 다양한 분야의 활동가들이 모이는 공간인데, 벽면 가득 도시재생과 LGBT 등 묵직한 사회이슈를 담은 범상치 않은 책들이 방문자들을 맞는다. 빈손으로 가도 거기 있는 책만 읽는 데 몇 시간을 거뜬히 쓴다.
또 하나 눈길이 가는 건 한옥이다. 흔히 서울에서 한옥 구경하기 좋은 데로 북촌과 서촌을 꼽는다. 좀더 서민적인 한옥을 보고 싶다면 보문동 쪽이 딱 좋다. 수수하다 못해 밋밋한 모습에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왠지 오래 곁을 지켜줄 느낌이랄까? 게다가 성북천 주변의 한옥에는 동네서점이나 요가공간 등 재미난 곳들이 들어차 있다. 여기에 성북구청 뒷편 큰 길가에 자리 잡은 2층 한옥들의 존재감도 무시할 수 없다. 1층은 상업용도로, 2층은 주거용도로 쓰이는데, 이는 지붕만 한옥인 일본 ‘마치야'식 건축구조다. 이 동네 한옥에는 현재 삶의 모습과 과거 식민지 시기의 흔적이 생각 이상으로 많다.
좀더 디테일이 더해진 한옥을 보고 싶으면 한성대입구역까지 걸어 성북동 쪽으러 넘어가면 된다. 요즘같이 추운 날에는 어림 없지만 곧 따뜻해질 테니까. 오래 걸어도 감기 안 걸리는 계절이 오면 좀더 멀리 걸어가야지.
서울에 살면서 어디로 이사를 가야 하나 알아보면서
서울안에 있는 한옥에 한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옥이 고즈넉하니 좋죠. 아파트와 달리 이곳저곳 스스로 손봐야 하는 게 번거롭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