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 임금 격차의 매커니즘과 해결 방안
3월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OECD 페이스북 공식 페이지가 OECD 가입국의 성별 임금 격차를 나타내는 이미지를 올렸습니다. 한국은 성별 임금 격차가 가장 큰 나라로 나타나있는데요, 이를 보고 몇달 전 세미나를 위해 썼던 글이 생각나 약간 수정하여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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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노동이 존재하는 만큼, 모든 노동에 대해서 같은 수준의 임금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유사한 형태의 노동에 대해서는 동일한 기준을 가지고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죠.
같은 산업 내에서 동일 직군에서 같은 노동을 한다면, 그 임금이나 근로 조건 역시 비슷해야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같은 노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노동자의 고용 형태나 사업장의 규모, 성별이나 학력에 따라 임금의 차이가 강하게 나타납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능력이나 성과에 따른 임금의 차이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에 대한 고용 형태나 성별에 따라 임금이 달라진다면 이것은 단순히 '차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불평등’과 '차별'로 보는 것이 합당하겠죠.
한국은 [근로기준법]제 6조를 통해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하여 남녀의 성(性)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적·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에서 '동일 가치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 지급'이라는 이름으로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을 천명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위 이미지가 보여주듯이 성별 임금 격차가 굉장히 크게 나타나고 있는 나라죠.
혹자는 이러한 임금 격차에 대해 남성과 여성이 주로 종사하는 직군이 다르고, 그 고용 형태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문제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하는 일이 다르고 신분이 다르니, 임금 역시 차이가 나타나는 것인데 마치 여성들이 불합리하게 저임금을 받는 것 처럼 이야기한다는 불만이죠. 그러나 최근 중소사업체 여성 노동자 52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충남여성정책개발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노동자의 73.6%가 같은 직군에서 일하는 남성들과 비교했을 때 임금에서의 성차별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특히 이러한 임금 차별은 임금 구성과 체계가 확립되어 있는 대기업 보다도, 중소 사업체에서 더욱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국여성노동자회에서 발표한 여성노동자들의 사례는 같은 직군에서 유사한 업무를 하면서도 여성이 저임금을 받게 되는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모 대학에서 청소용역직으로 일하는 여성노동자 A씨는 건물 안과 화장실 청소 업무를 담당한다. 그런데 남성은 외곽 청소와 제초, 쓰레기 운반 및 분리업무를 수행하고 여성에 비해 매월 20만원정도 더 받고 있다. 남성에게만 특별작업수당, 야외작업수당 등의 수당이 있고, 하루 근무시간도 남성이 1시간 더 길다. 이는 남성의 업무가 많아 근무시간이 긴 것이 아니라 임금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다. 올해 임금인상도 여성은 6.99%, 남성은 10.99%로 성별로 다르게 결정됐다."
여성 청소노동자의 업무는 건물과 화장실 청소로, 남성 청소노동자의 업무는 외곽 청소로 나뉩니다. 여기에, 남성들의 경우 간헐적으로 제초와 쓰레기 운반 등의 업무가 추가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들의 업무는 야외에서 진행된다는 이유로 수당이 추가되며, 간헐적인 업무에 대해서는 작업 수당이 따로 지급됩니다. 같은 시설관리 노동의 경우에도, 성별에 따라 업무가 다르게 지정되며 또 그에 따라 임금과 노동시간이 달리 적용되는 것이죠.
"제조업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 B씨가 일하고 있는 공장의 조립·포장 업무는 성별에 따라 두 직종으로 나뉜다. 남성은 ‘기술직종’, 여성은 ‘단순직종’으로 분류돼 임금차이도 크다. 남성 평균임금이 250만원~300만원 수준인데 비해 여성 평균임금은 170만~180만원에 그치고 있다. B씨는 같은 공장에서 15년간 근무하다 몇 년 전 구조조정 과정에서 해고된 후 재고용되어 남성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함에도 경력인정 없이 매년 계약이 갱신되는 비정규직으로 근무하고 있다."
남성 노동자는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 여성 노동자는 생계 보조라는 이분법으로 구조조정에서도 여성이 남성보다 먼저 대상자가 되기 마련입니다. 이후 공장의 상황이 나아져서 재고용 되더라도 여성 노동자는 그간의 경력이 인정되지 않는 비정규직으로 고용이 되어, 남성 노동자에 비해 적은 임금을 받게 됩니다. 이러한 임금 격차는 업무 능력의 차이가 아니라, 남성들의 노동은 ‘생업’이며, 여성들의 노동은 ‘아르바이트’나 ‘생계보조’에 불과하다는 불합리한 선입견으로 인해 정당화 됩니다.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를 둘러싼 갈등이, 여성 식당 노동자들을 해고 대상자로 삼아 '노사 합의' 되었던 사례는 이러한 선입견이 기업과 노동자들 모두에게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혹여나 '직군에 따른 임금의 차이'라는 논리를 인정하더라도, 그렇다면 왜 성별에 따른 직군과 고용 형태의 분리가 일어나느냐는 질문이 남습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2016년 8월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전체 노동자의 55.5%에 달하는 1089만 명이 정규직이고, 44.5%에 해당하는 874만 명이 비정규직입니다. 이 중 남성의 경우 정규직이 697만 명(63.3%)이며, 비정규직이 404만 명(36.7%)으로 나타납니다. 정규직 고용이 훨씬 많은 것이죠. 그러나 여성의 경우, 정규직은 392만 명(45.5%)이며 비정규직이 470만 명(54.5%)으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여성이 10% 가량 많게 나타납니다.
보고서는 또한, 정규직과 비정규직,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중의 차별이 임금 수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줍니다. 정규직 노동자의 월 평균임금 총액은 306만 원 수준이지만, 비정규직의 월 평균 임금 총액은 151만 원 수준으로 정규직의 절반에 미치지 못합니다. 여기에 성별 고용형태를 고려하면, 남성 정규직 임금(344만 원)을 100이라 할 때 남성 비정규직(183만 원)은 53.1%, 여성 정규직(239만 원)은 69.4%, 여성 비정규직(123만 원)은 35.8%로 나타납니다. 고용형태에 따르는 임금 차별이 성별 임금 차별과 결합하여 전체 여성 노동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비정규직 여성은 정규직 남성에 비해 1/3 수준의 임금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중의 차별은 주로 중장년층 여성 노동자들에게 집중됩니다. 20대 초반에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정규직 일자리에 진입하지 못하고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지만, 20대 중후반부터 남성과 여성 모두 비정규직 보다 정규직으로 일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30대에 접어들면서 다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여성들이 많아지기 시작하죠. 40대 중반 이후의 여성노동자의 과반 이상이 비정규직입니다 . 이는 남성들이 30대 이후 은퇴 연령기인 60대까지 지속적으로 정규직으로 일하는 경향성이 나타나는 것과는 상반되는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그래프는, 결혼 이후 가사 노동이나 육아 등을 이유로 정규직 여성들의 경력이 단절되고, 이들이 30대 이후 새롭게 노동시장에 진입했을 때 주어지는 일자리는 대부분 비정규직 일자리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도록 합니다. 많은 기혼여성들이 가정의 재생산 노동과 저임금 비정규 노동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음을 나타내기도 하구요.
이처럼 기혼여성들에게 비정규직 일자리가 집중되는 현상은 정부의 여성고용정책 방향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과거 박근혜 정부는 ‘제 1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을 통하여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율을 높이겠다고 천명한 바 있지만, 그 방향은 복지, 돌봄 등 여성 비율이 높은 사회서비스 일자리를 확충하는 것이었습니다. 정부가 나서서 직군 간 성별 분리를 선도한 셈이기도 하고, 사회서비스 일자리의 대다수가 저임금/시간제 일자리라는 점에서 여성의 저임금 노동을 더욱 확대하는 방향의 정책이기도 했습니다.
분명 '동일가치 노동 동일임금'의 원칙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실제로 노동 현장에서 임금의 실질적인 차별이 나타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심각성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특히 임금공시제도가 제대로 이뤄져 있지 않고, 기업 연봉 공개를 꺼리는 분위기가 강하기 때문에 성별 임금 격차의 문제를 직시하기 어려운 지점이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성별 임금 공시제도를 공약으로 가지고 나왔지만, 아직 제대로 시행되고 있지 못한 상황이기도 하구요.
이러한 임금 격차의 문제를 인식하고, 더욱 알리기 위해 최근 월스트리트에서는 금융 회사들의 성별 임금 격차를 공개하라는 운동도 벌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 뿐 아니라, EU 역시 성별 임금 격차를 축소시키는 것을 주요한 과제로 삼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 이러한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공정임금법'을 제정하여 노동자들이 자신의 임금에 대한 '알 권리'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또한 대형 사업장의 임금체계 보고서 공개를 의무화 해 임금 격차 문제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에 나서고 있습니다.
문제를 인식하고, 알리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여성 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임금 격차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고쳐나갈 수 있도록 노동조합이 더욱 활성화되는 것도 중요합니다. 2004년 OECD 고용 전망 보고서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높고, 단체협약 적용률이 높은 국가일수록 여성의 상대적 임금이 높아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이 성차별적인 임금, 인사제도 및 관행을 시정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직장 내의 성차별적 조직 문화에서 기인하는 성별 임금격차를 완화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겠죠.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저임금 비정규 노동자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최저임금의 지속적인 인상 역시 성별 임금 격차의 개선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의 보고서를 참고했을 때, 2016년 8월 기준 최저임금 영향률은 여성(13.8%)이 남성(6.0%)보다 높고, 특히 기혼여성(14.5%), 미혼 여성(12.0%), 미혼남성(10.2%), 기혼남자(4.3%) 순으로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경력 단절로 인해 임금 차별이 집중되는 대상인 기혼여성 노동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의 직접적인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 인상 역시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의 임금을 높이는 방식으로 성별 임금 격차 해소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겠죠.
어제 아이가 학교에서 받아온 어린이용 잡지에 성별 임금차이에 대한 아티클이 있어서 유심히 봤던 기억이 나는데요, 동일 직종의 경우 임금차이가 간호사/요리사 같은 직종보다 회사임원 같은 직종의 경우 더 차이가 심한 부분이 인상적이었어요.
오 이거 재밌네요 ^^ 미국 상황에 대해서 잘 모르긴 하지만 확 떠오르는 생각이라면 어느 정도 직군에 따른 임금 기준이 정해져 있는 직종에 비해서 그런 임금 기준이 정해져 있지 않은 직종에서 더 성별 임금 격차가 강하게 나타난다고도 볼 수 있을듯?
네, 저도 비슷하게 생각했어요 ㅎㅎ
명시적인 임금 기준을 세워두거나 공개하는 것이 한 가지 수단이 될 수 있겠군요..
마음 아픈 수치네요 정말.
경력단절 후 비정규직 진입이 참.. ㅠㅠ @홍보해
경력단절의 문제는 사실 한국 뿐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이긴 한 듯 합니다. 독일 같은 경우도 EU 국가 중에서 유난히 성별 임금 격차가 심한 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서비스 산업 중심으로 여성/중년/비정규직 여성 노동자들의 비중이 굉장히 높거든요...
좋은글 보팅하고 뉴비라 팔로 남겨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