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연대기> 리뷰

in #kr7 years ago (edited)

생리에 관한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김보람 | 러닝타임 84분 | 개봉일 2017년 1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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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김보람 감독이 외국인 친구에게 생리대 주머니를 선물하면서 시작된다. 네덜란드인 친구는 탐폰을 사용했기 때문에 선물이 생소했다. 감독은 패드 외의 생리 용품을 찾아보면서 생리 이슈를 접한다. 연대기(chronicle)인 만큼 영화는 고대 여성에서 시작해서 할머니, 감독 본인 그리고 학생으로 내려오면서 생리의 역사를 살핀다. 생리가 어떤 방식으로 여성을 괴롭혀왔고, 왜 현대의 한국 여성들이 패드 외의 생리 용품을 불편해하는지를 여성들 본인의 입으로 들려준다. 그러한 경험이 공유되는 장으로서의 영화는 또한 연대(solidarity)이기도 하다.

남성 시청자로서 생리는 낯선 주제다. 인류 절반이 겪고 있는 불편함이자 투쟁의 이유인 생리를 이해하는 것은 같은 인간으로서의 의무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교육적이지만 산뜻한 화면의 색감만큼이나 무겁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냈다. 중간에 삽입된 애니메이션도 무척 좋았는데 영화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면서도 서사성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에서 가장 무겁게 다가온 장면은 감독의 생리혈이 고프로로 촬영된 부분이었다. 나한테는 섬뜩하면서도, 이것이 현실의 이야기임을 알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영화의 중반부까지 '보통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루다가, 후반부에서는 정치적 과제와 진전을 다룬다. 이 둘을 매개하는 접점이 유튜브 방송을 하는 영국인 소녀인데, 자연스럽게 이어지지는 않았다. 인터넷 방송이나 논쟁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정치적 투쟁의 과정이 있었을 테지만, 영화의 분위기상 그런 주제를 다루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마지막 인터뷰 장면에서 감독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몇달간 생리용품을 실험하면서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고, 길거리에 지나가는 여자들을 보면서도 각각의 개성을 느끼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몸이 고유성으로, 고유성이 타자에 대한 이해로 확장되는 흐름이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인터뷰와 더불어 밝은 색감과 애니메이션, 분위기를 떠받치는 음악이 좋았다. 무겁지 않게 볼 만한 다큐멘터리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