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밋 경제상식 : 케인스 그리고 뉴딜정책 - 대공황이 탄생시킨 영웅
오늘은 케인스 그리고 케인스학파에 대해서 알아보겟습니다
최소한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자유시장경제 이론이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1920년대 말 대공항 1929년에 터진 경제 위기는 그때까지의 경제이론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당시 호황을 구가하던 미국마저 몰락시킬 정도의 충격이었디. 이것은 자유시장경제가 맞은 직격탄이었다, 아무도 이 초유의 불황을 설명하지 못했다.
하지만 영웅은 난세에 나는 법. 이때 혜성처럼 등장한 경제학자가 있었으니 바로 그가 케인스다. 그는 자유시장에서 언제나 수요와 공급이 균형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며 대공황은 유효수요(실제 물건을 사려는 수요)의 위축으로 인한 불균형 현상 때문에 온 것이라 정의했다. 나아가 이 문제를 해결기 위해서는 국가의 시장개입이 필연적이라 주장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각 나라들이 국가의 개입 없는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던 시기라 케인스의 주장은 혁신을 넘어 혁명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이에 비난과 반발이 쏟아졌다. 게다가 대부분 나라들의 재정 상태가 좋지 않았기에 시장에 개입할 돈도 없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케인스의 주장은 현실성도 없어 보였던 터라 그는 더욱 코너에 몰렸다.
이런 케인스에게 구세주가 나타났으니 미국의 32대 대통령 루스벨트였다. 루스벨트는 케인스의 경제 이론을 그대로 실행하는 뉴딜정책을 실시했다.
당시 미국의 문제는 과도한 잉여농산물과, 1,500만 명에 달하던 실업자였다. 루스벨트는 '통화의 국가통제, 생산물 조정, 테네시 강 개발을 통한 실업자 구제, 실업급여와 최저임금제 도입' 등을 시행했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뉴딜정책이다. 그 결과 미국은 대공황에서 탈출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케인스의 경제이론은 각광받기 시작했고 케인스학파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유명해지게 되었다. 오늘은 대공황을 이겨낸 미국의 뉴딜정책 그리고 케이스, 케인스학파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스스로 홍보하는 프로젝트에서 나왔습니다.
오늘도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오늘도 여러분들의 꾸준한 포스팅을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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