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와의 연애-2] 나는 네가 시비를 거는 줄 알았어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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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와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시작부터 남다름을 과시했습니다.

연애 초기, 2015년 1월 6일. 회사에서 퇴근이 늦어져 한겨울에 30분 정도 늦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에 헐레벌떡 달려갔는데...
도착해보니 만나기로 한 지하철역 만남의 광장에서 개발을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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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추운데 저게 되나?'
괜히 더 미안해졌는데, 자기는 괜찮다고 합니다. 남자친구는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틈만 나면 코드를 봤습니다. 커피숍에서 제가 책을 보면 그는 또 코드를 봤습니다. 평범하지는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전 공대생을 살면서 처음 접해봤고, 남자친구는 그렇게 제가 만난 그 누구와도 다르다는 걸 계속해서 증명해 나갔습니다.

그러다 그 사건이 터졌습니다. 저와 주변인들을 모두 혼란에 빠트린 그 일이...


더운 여름 날, 한 여자가 개발자 남자친구와 배스킨라빈스에 갔다.
여자는 지갑을 두고 온 걸 깨닫고 남자친구에게 묻는다.

여자친구 : 현금 있어?
개발자 : 없는데...

커플은 어쩔 수 없이 배스킨라빈스를 나왔다.
잠시 후, 여자는 무더위에 지갑을 두고 온 걸 잊고 편의점에 들어가서 음료를 계산하려 했다.

여자친구 : 돈 있어?
(개발자 카드를 꺼낸다.)

무사히 결제를 마치고 두 사람은 편의점을 나와 미친 듯이 싸우기 시작했다.


제가 겪은 실화입니다.
저는 정말 이때, 남자친구가 저에게 시비를 거는 줄 알았습니다.
편의점을 나오자마자 거친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하고 화가 나는데, 남자친구는 제가 잘못했다고....

남자친구의 당시 입장은 '현금 있냐고 물어보아서 현금이 없었다. 그래서 없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질문자가 카드 있네!!라며 화를 냈다. 내 로직으론 이해할 수 없다'

이 말을 들은 제 솔직한 소감은... 1+1이 2인 이유를 설명하는 것 처럼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남자친구와 제 상식의 1+1의 답이 달랐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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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주변에도 큰 혼란을 남겼는데, 저는 제가 실수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이 일을 생각하면 속이 터질 것 같아요.)

위의 사례처럼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연애 초에 참 많이 다퉜습니다.
싸우다가 감정적이 되어 "너 집에 가!" 그러면 남자친구는 진짜 집에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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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도 제가 더 화를 낼까 봐 집에 갔다고 합니다.)

한 3번 정도 이랬을까요...?
미래에 결혼할 사람이라고 좋긴 참 좋은데, 이대로라면 저희 연애의 미래는 암울할 뿐 이기에 남자친구와의 연애 스타일에 변화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집에 가라고 할 땐 진짜 가는 게 아니야. 내 옆에서 내 화를 풀어줘' 이런 식으로... 인풋을 하나하나 넣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것까지 얘기해야 하나 자존심이 상하고 귀찮았지만 우리가 함께하려면 어쩔 수 있나요.

그 이후로 남자친구는 다퉈도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다만, "너 집에 가!"를 외치면 해맑게 웃으며 "자기가 이럴 때 집에 가지 말라고 했어. 그러니까 난 집에 가지 않을 거야"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남자친구와의 연애 요령을 알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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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게 된지 2년 차, 사내 커플이었던 저희는 각자 다른 회사로 갔고, 연락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남자친구는 근무시간 도중 카톡을 보낸다는 걸 이해 못 하고 "왜 근무시간에 연락을 해?"라며 까칠하게 굴었습니다. 하지만 전 더 이상 유약하지 않았고 끙끙대지도 않았습니다.

왠지 짜증이 나서 "닥쳐, 난 보낼 거니까 네가 시간이 될 때 답하는 건 자유야"라고 말하니, 남자친구는 납득한 느낌이었고 다시는 태클을 걸지 않았습니다.

돌이켜보면 이때쯤부터 였던 것 같습니다. 제가 지켜왔던 소중한 것을 잃어버렸던 때가.
전 원피스 등 샤랄라 한 치마를 좋아하고, 여성스럽고 교양 있는 우아함을 추구했던 여성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저는 모두에게 'OO 이는 직설적이네...'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강하고 단호한 여성으로 변했습니다. 고맙다 남편.

(+추가 이야기)

남자친구에서 남편이 된 지금도 그는 여전합니다.
겨울임에도 불구, 제가 자격증 시험을 보는 날 따라와서 벤치에서 개발을 하며 기다린다던가...
(제발 좀 커피숍 가서 하라 했는데 말로는 알았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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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들고 회사 앞에서 기다려.라고 하면
이상한 티를 입고 블록체인 개발자티를 팍팍 내며 기다리는 귀여운 존재입니다.
(물론 명령어를 넣지 않으면 기다리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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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판타지 소설의 남주처럼 알아서 척척하는 센스와 로맨틱함 따위는 있지 않지만...
(시키는 것만 하지만...)
그래도 만난 지 5년 차인 지금은 그 너머를 노리고 알아서 열심히 해보려는 노력도 합니다.

다음 편은 결혼 전의 위기에 대해 적어보려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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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님께서 님의 남편을 이해하는데 혹시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제 글 링크 하나 남겨드립니다.

https://steemit.com/kr/@steamsteem/6aap3h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다음에 시간될때 다른 글로 해야 겠군요..

개발자 남편 이야기 재미나게 읽고 갑니다 ㅋ

감사합니다 ㅎㅎ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IT 전공자로서 이해가 가는 부분들이 많습니다 ㅎㅎㅎ

이렇게 제 3자로서 보니 남편분이 너무 귀여우십니다!!!

SNL에서 진행했던 문과생 이과생 커플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즐겁게 저만의 애기를 풀어놀 수 있는 것 같아요 :)

말씀해주신 SNL을 보았는데 왜 웃기면서 슬플까요 ㅋㅋㅋ

재밋네요.. 저도 개발자긴 하지만... 그정도 까진 아닌듯한데.. 남편분이 정말 개발을 좋아하는 개발자 인듯합니다.

'개발 좋아' 기운이 내뿜고 다니는 사람이긴 합니다 :)

ㅋㅋ 저도 개발자라 남자친구도 이해되고, 저정돈 아니라 여자친구도 이해됩니다. 이더리움 티셔츠ㅋㅋ 재밌네요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더불어 제 입장을 이해해주신다니 기쁩니다 ^_*

후속스토리도 기대되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남편분 코딩하느라 애를 많이 쓰셨겠네요.

그래도 만난 지 5년 차인 지금은 그 너머를 노리고 알아서 열심히 해보려는 노력도 합니다.

덕분에 지금은 학습하는 인공지능이 되었네요. ㅎㅎ

엇, 읽고보니 그렇군요.
그는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어요!

와... 정말 로직대로 움직이시는분이군요
그동안 버그가 발생했던적은 없었나요? :)
그래도 남편분이 정말 착하신것 같아요
근데 사진을 보아하니 추운 날씨에도
엄청 집중해서 개발하시는것 같네요😂😂
코드에 대한 열정이 남다르신것 같아요

달라지는 타임라인과 환경 속에서도 계속 코드를 잡고 있으려는 모습을 보니, 열정이 남다른 것 같긴 해요!
그리고...버그가 발생하는 순간들은 '왜 저래?' 이러고 넘어간 것 같아요.
사람은 착해요.
아마도요^^;;

아 ㅋㅋㅋㅋ 너무 유쾌합니다 ㅎㅎ
야밤에 크게 웃었네요^^
다음 글도 기대가 됩니다 ㅎㅎ

즐거움을 드렸군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아니 당연한거 아닌가요? 현금이 없으니 없다고 하고 가라니 가고... 기다리라니 기다리고.. 굳이 커피를 좋아하지 않으니.. 밖에서 기다리는 거죠. 😀

"사람"은 참 이해하기 힘든거 같아요~
왜 말과 기대하는 바가 틀린지...

이상.. 문과 여자와 결혼한지 10년차 개발자?의 변입니다.

여기 제 남편과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지신 분이 계셨군요.
아내분과 제가 혹여 우연히 만나게 된다면 공통의 화제로 수다의 꽃을 피울 수 있을 것 같아요!

개발자가 주변에 없는 제 친구들은 위 이야기를 들으면 '사실이야?'라고 되묻거든요...

ㅇ..와.. 엄청 공..감합니다... 정말... 제대로 다룰줄 아시는 분이네요...
'프로그래머의 아내가 알아두어야 할 97가지' 라는 유머 아시나요?
컴공 남자를 만나는 분들에겐... 유머가 아니라 절대비법서입니다 (...)

절대비법서까지!
역시 세상에 쉬운 연애는 없는걸까요.
중에서도 전 난이도가 너무 높은 사람을 만났나봐요...-_ㅜ

으음... 아..닐겁니다... 남편분의 행동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이미 익숙하시겠지만 다양한 상황을 고려한 피드백을 넣어주셔야합니다... 프로그래머 남편을 프로그래밍 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