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터의 부탄여행기 - 2부
2부
1부는 https://steemit.com/kr/@mktkim4/2rhztn-1
김여사님과 박선생님 정작가 그리고 나 4명이 출발한 대한항공 비행기는 6시간 비행을 거쳐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도착했다. 나름 해외여행은 많이 해봤지만 히말라야는 관심밖의 동네였기 때문에 네팔은 처음 가보는 나라였다. 온통 설산인줄 알았던 네팔은 동남아의 여느 도시처럼 더운 나라였다. 6월의 카트만두는 진짜 더웠다.
다른 사람짐도 아니고 하필 딸랑 캐리어 하나들고간 내 짐이 안나와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느라 민망할 지경이었다. 한두시간 해프닝을 겪고 공항을 나와 기다리고 기다리던 턱수염 하얀 산사나이들을 만났다. 보름만에 남편을 상봉하는 김여사님은 특유의 소프라노 목소리를 높여 극적인 남편 상봉을 반가워 했다.
나는 철이 형과 탁샘을 보고 깜짝 놀랐다. 보름전 한국에서 봤던 사람들의 얼굴이 아니더라. 무슨 6.25 전쟁 사진에 나온 사람들 모습이다.한 사흘은 굶은 표정에 수염들은 아무렇게나 자라고 얼굴의 볼살은 쏙 들어간 모습이라니...
역시 나의 판단을 믿은게 다행이었다. "햐..1부팀에 안들어간게 정말 다행이구나.."라는 생각이들었다. 같이 간 소설가 박선생님도 그들이 짠해 보였는지 "도대체 어디까지 간거냐"고 너털웃음을 웃으셨다.
반면 명왕(문재인)님은 진짜 당대표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본인이 원하던 히말라야에 오셔서 그런지 너무 활기치게 보이는 거다. 하긴 그토록 오고 싶었던 곳이니 얼마나 좋았겠나. 원하던 곳에 오르고 또 좋은 산의 정기를 받아서 인지 눈도 맑고 기도 많이 보충되신거 같았다. 게다가 보름만에 아내를 만나니 너무 좋아하신다...
그에 비하면 명왕님을 수행하는 철이형은..... 아이고 파란만장한 우리 철이 형..
**
6개월전,
여행을 떠나기 6개월쯤 전인가, 어느날 전주 우석대 문창과 교수로 있던 철이형 한테 전화가 왔다. 철이 형과 나와 인연은 꽤 오래 되었지만 직접 전화를 하는건 몇번 안된다. 그런데 전화가 왔다는 것은 예삿일은 아니라는 거.
사실 예전에 철이형이 청와대 홍보비서관을 그만두고 큰 결심을 했을때 내가 너무 못도와드려서 평소에도 미안한 마음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철이형 전화가 오면 반가우면서 한편으론 겁도 나고 그랬다. (또 무슨 욕부터 내려주실까..라는)
"형님 충성" 최대한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그래야 미안한 마음이 조금은 줄어들꺼 같아서 말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철이 형 전화는 부드러웠다. "어 이런 양반이 아닌데..ㅋㅋ" 뭐 어려운 부탁을 하실려고 그러나 . .." 이런저런 상상을 했는데 ...
형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문예창작과 전공이다 보니 앞으로 진로에 대해서 고민들이 많다고 모바일 웹소설 회사 하는 너가 내려와서 특강좀 한번 해줄수있냐는 거다.
"아이고 형님, 그까이꺼 10번을 못하겠습니까.언제든지 불러주세요" 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내심으론 다행이다 싶어 전주로 내려갔다. 그렇게 진짜 오랜만에 철이형을 만나러 전주에 갔다. 내가 평소에 자동차에 관심이 없어서 이름을 잘 모르는데 암튼 쬐그만 차를 몰고 형이 나타났다. 형 집은 수원인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주일에 두번 강의가 있어서 전주에 내려오신다고 한다.
강의야 뭐 창업과정의 내 경험을 이야기 하는거니 어려운건 없고, 확실히 수도권이 아닌 지방에 있는 아이들은 서울의 정보에 목말라 하는거 같았다. 아무리 온라인에 인터넷 시대라고해도 이런건 어쩔수 없었던거..
반응은 괜찮았다. 철이형은 고맙다고 밥도 사주고 가맥집에 가서 맥주도 사주고..그러다가 정작 자신은 꽐라가 되셔서 먼저 블랙아웃 되셨다. 나는 고속버스를 타고 집으로 올라갔다.
알다시피 철이 형은 당시 민주당 대표이신 그분(?)의 측근중의 측근, 조중동 종편뉴스, 한경오 가릴꺼 없이 난도질 당하는 바로 3철 중의 한사람이다.
그때가 아마 16년 초쯤 되었을것. 한참 그분이 민주당 당대표가 되고 당내에서 난타를 당해 가루가 되고 있었을때였다. 워낙 당내에서 분열주의자들이 극성을 부리고 당대표 리더십을 훼손시키니 결국 댕대표의 권한을 책임있는 대권주주자들끼리 나눠 분열을 막자는 그런 제안을 할때였다.
당시 전주에 있던 철이형 전화로도 관련된 전화들이 막 쏟아졌다. 특히 지금은 세상의 웃음꺼리가 된 안모씨에게 당을 함께 혁신시켜 새롭게 만들자고 제안할때였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내가 농담처럼 한마디를 던졌다.
" 너무 붙잡고 사정하지 말고 문대표님이 안모씨 불러다가 주먹꽉 쥐고 야, 내가 니 형이야..좀 말좀 들어"이러면 안되냐고.. 했다.
그러자 철이 형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야이 **야 그러다가 무슨 친노친문 깡패집단 이런소리 듣고싶냐"라고 했다. 역시 준비된 사람들은 참을성도 대단하다. 나같은 사람과는 차원이 다른 인내심이다.
아이씨, 내가 생각할땐 그럼 바로 꼬리 내릴꺼같았는데..이래서 내가 어디 나서면 안되는거..
어느덧 술은 신체가 받아들일 수준을 넘어섰고 꽐라된 형을 뒤로한태 서울로 올라왔다. 철이형도 우석대 강의는 그게 마지막이었던거같다. 일주일에 1박2일 일정이긴 했지만 아쉽다고 하시더라..
그래도 참 다행이다 싶었다. 내가 이런일이라도 하고있어 저 형들한테 필요한 사람이 될수있다는게...그러곤 한참동안 만날수가 없었다.
그뒤론 다 기억하시겠지만 총선을 치를때까지 민주당은 영화 신세계보다 더 심한 활란을 겪었다. 문재인 대표 그분은 인내심의 왕,보살, 생불이라는 소리를 들어가며 그 과정을 잘 헤쳐나갔다.
그리고 기적적인 총선 결과가 나왔다.
총선이라는 큰 과정을 거친 후 그분에게 남은건 이제 1년반 가량 남은 대선뿐이다. 그리고 그걸 위할 캠프를 꾸릴동안 잠시 휴식겸 또 비전구상을 위해 히말라야를 가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5년전 그분이 자서전 운명을 만드실때가 생각났다. 그래서 아주 조심스럽게 여쭤봤다. 혹시 콘텐츠를(출판) 만드실 계획이있으신지....철이 형과 같이 있던 탁샘이 한번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을 했다. 그렇게 기회를 얻게 되어 너무 좋았는데, 그런데 나보고 히말라야를 따라올 자신이있냐는거다. 같이 하게 되면 반드시 가야한다고..
근데 왜 하필 히말라야에요. 다른데 좋은곳 많은데..왜 힘들게 고생하러 가십니까 ㅠㅠ 라고 말했더니, 그분은 히말라야를 너무 가고싶어하셔서 이미짐 다 싸놓고 히말라야 가는날만 세고 계신다고.. 그런데 어떻게 다른곳을 가겠냐는 이야기였다.
어찌되었던 히말라야는 정해졌다. 철이형은 혹시 내가 이번일로 무슨 부담이나 갖게 되지 않을까 굉장히 걱정을 많이 했다. 사실 나도 그런 걱정을 전혀안하진 않았다. 혹시 이런일로 무슨 꼬투리를 잡혀 회사 운영에 문제가 되면 어쩌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뭐 법을 어기는 것도 아니고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것 때문에 하는 것인데 뭐 어쩌랴 라는 생각으로 이겨냈다. 그리고 탄압을 받는다고 내가 뭐 무슨 엄청난 큰일을 당하랴 하는 대책없는 낙관적인 생각도 있었다. 또한 그 수많은 험한 말과 편견과 시비속에 그분들이 공격당하고 좌절할때 난 속으로만 끙끙댔지 뭐 제대로 한게 없는데 뭐 이정도 가지고 걱정을 할까 라는 창피한 마음도 들었다.
실제 철이형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3철이니 뭐니 하면서 이름가지고 조리돌림도 당하지 않는가
그렇게 결심을 하고 카트만두행 비행기에 올라탔다
**
감격적인 공항상봉을 하고 우리 일행은 한국사람 보다 더 한국말을 잘하는 네팔 친구 벅타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로 이동했다.
오후의 햇살이 아름다웠다.
![사진 2016. 6. 27. 오후 10 24 05.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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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에 계속
부탄..너무 가보고 싶습니다..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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