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래의 인문학 강의[015]: 제1장 역사 || 사회와 개인 3

in #kr6 years ago

제1장 역사는 결코 사실이 아니다

----- 그렇다면 오늘날, 역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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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란 무엇인가를 묻는 이유
▷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 사회와 개인 1 : 객관적일 수 없는 역사의 객관성
▷ 사회와 개인 2 : 개인은 그가 속한 사회의 대변인이다
▶ 사회와 개인 3 : 몸젠이 로마사를 더 쓰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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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란 무엇인가를 묻는 이유
  •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
  • 사회와 개인
    1. 객관적일 수 없는 역사의 객관성
    2. 개인은 그가 속한 사회의 대변인이다
    3. 몸젠이 로마사를 더 쓰지 않은 이유




  • 몸젠이 로마사를 더 쓰지 않은 이유

    몸젠의 『로마사』는 노벨문학상(1902년)까지 받았을 만큼 뛰어난 작품입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는 세 권밖에 번역이 안 되어 있지만요. 열 권이 나와야 완간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이야기는 카이사르에게서 끝납니다. 로마사를 반밖에 쓰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늘 궁금했어요. 카의 설명입니다.

    몸젠이 로마 공화정 이후의 역사를 쓰지 못했다는 것에 놀라는 사람들이 자주 있었습니다. 시간이 없었던 것도, 기회나 지식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었거든요. 그러나 그가 역사를 쓰던 시절 독일에서는 아직 강력한 인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강력한 인물이 출현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하는 문제는 그가 활동하던 시기에 아직 현실적인 것이 아니었지요. 몸젠으로 하여금 이 문제를 로마의 무대로 투사해 보도록 자극하는 것이 없었고, 그래서 로마제국의 역사는 쓰이지 않았던 겁니다.[1]

    이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카의 주장, 즉 당대의 관심에 답하는 과거의 사건이 아니면 쓰여지기 어렵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 논거가 의심스러웠어요. 맨 먼저 제 머리에 떠오른 것은 비스마르크Otto von Bismarck, 1815~1898였어요. 독일제국을 만들어낸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바로 그 시대 사람입니다. 매우 ‘강력한 인물’이었지요. 곧바로 비스마르크 연대기를 찾아보았습니다. 세상에, 몸젠과 두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군요. 몸젠은 비스마르크보다 몇 년 더 살기도 했고요.

    그는 재상이 된 뒤 의회에 나가 자유주의적인 여론에 찬물을 끼얹고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할 것을 분명히 합니다. 이렇게 말했어요. "연설과 과반수의 찬성으로 당면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1848년과 1849년의 실수였습니다. 문제의 해결은 무엇보다도 '철과 피'를 통해서 가능한 것입니다."[2] 이른바 쳘혈연설Blood and Iron speech이었지요. 게다가 그는 1862년에 재상이 된 뒤 1890년까지 거의 30년 동안이나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렇다면 카의 저 말, ‘강력한 인물이 출현한다면’은 잘못된 가정법입니다.



    이미지 17

    1866년 쾨니히그레츠 전투 장면. 그림 한가운데, 빌헬름 1세가 검은 말을 타고 있고 그 뒤로 철혈재상 비스마르크 와 몰트케 장군이 보인다. 이 전쟁에서 프로이센은 오스트리아를 괴멸시키고 비스마르크가 독일통일을 주도하는 정치적인 힘을 얻게 된다.

    카도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비스마르크에 대해 언급하는 것을 보면 그를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영국 역사가 A. J. P. 테일러가 “유럽 근대사는 나폴레옹과 비스마르크, 레닌이라는 세 거인을 중심으로 쓸 수 있다”고 한 말을 인용하거든요. 물론 카는 그런 방식은 ‘경솔하다’고 분명히 입장을 밝힙니다만.

    카의 생각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 저는 로마제국과 관련된 자료를 읽기 시작했어요. 정확하게 평가하려면 로마공화정과 로마제국이 어떻게 다른지, 그 역사를 다룬 작가나 역사가들의 입장과 평가도 분명히 확인해볼 필요가 있었거든요.

    게다가 저는 독서를 좋아하는 여러분들만큼이나 로마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로마는 놀라운 고대국가였잖아요. 기원전 6세기에 벌써 ‘공화정’을 이루었는가 하면 법으로 통치되는 다민족국가였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법체계는 로마법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을 정도입니다. 법률 용어와 개념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오늘날과는 달랐지만 개인의 삶이 법으로 보호받았고 타고난 신분과 상관없이 계급 상승의 기회가 있었던 사회라는 의미이니까요. 구체적으로 어떤 사회였을까요?


    [1] p. 37, Surprise has often been expressed that Mommsen failed to continue his history beyond the fall of the republic. He lacked neither time, nor opportunity, nor knowledge. But, when Mommsen wrote his history, the strong man had not yet arisen in Germany. During his active career, the problem of what happened once the strong man had taken over was not yet actual. Nothing inspired Mommsen to project this problem back on to the Roman scene; and the history of the empire remained unwritten.
    [2] 『독일사』, 권형진, 2005, 대한교과서 (쪽수는 확인해야 함)


    (C) 강창래,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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