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가난해지기_2(부동산편_가끔은 벼락거지 되기, 고급수학에 주의)

in #kr3 years ago

2억 벌었어..... 친구가 소주간을 기울이며 말했다.
그래 잘했다. 그 때 안 샀으면 어쩔뻔 했어. 나도 사라고 강추 했었잖아. 내가 거들었다. 덜 드라이하게....(이 친구가 오랫만에 술값을 내려나? )
사람들은 본인이 살고 있는 아파트가 올랐다고 좋아한다.
나는 마음속으로 드라이하게 말한다. 하나도 번게 없는건데.......

문제는 내 집값이 오른게 돈을 번 건지가 헤깔리는 거다.
내 집이 20프로 올라서 10억이 12억이 되면 2억을 벌었다고 좋아한다. 숫자상으론 맞는 듯하다.
문제는 대개의 경우 그 집을 팔 수 없다. 판다면 비슷한걸 또 사야한다. 비슷한 옆집들은 오르지 않았을까?
내 집만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있다면 천재이거나 운이 억수로 좋은 사람이다...
그렇다면 내 집이 오른걸 가지고 더 좋은 집을 살 수 없다는거다. 결국은 내 집을 판 돈으로 거의 비슷한 가치의 집을 (실제로는 가치가 좀 낮을 집을..)살 수 밖에 없다. 무엇을 번 것인가?

실제 상황을 보자. 대개 집을 팔면 많던 적던 양도소득세를 낸다. 또 새 집에 대해 4프로 이상의(확실치 않다) 취등록세 등을 낸다. 이사비용도 든다. 그렇다면, 결론은 내 쌈지돈을 더 보태지 않는 한 내가 살던 집보다 가치가 낮은 집으로 이사할 수 밖에 없다는 거다. 그래서 이사 하기가 어려워진다. 이거 헌법상 기본권인 거주이전의 자유를 제한하는 거 아닌가요? 시간이 많은 사람이 헌법소원을 내 볼만 하다.
(고급수학으로 설명: 우리 동네에 30평 집을 10억에 사서 2억이 올라서 12억에 팔면 예를 들어 2천만원을 양도소득세로 내고 11억8천이 남는다. 그런데 같은 가치의 다른 집을 사려면 4천8백만원의 취등록세를 내야 하고 3백만원의 이사비용이 든다면 ...즉 내가 판 것과 같은 가치의 집을 사는데 7천1백만원이 모자란다. 이 수학을 이해했다면 상당히 머리가 좋은거다)

좀 더 나쁜건 이사를 하지 않아도 오른 집값에 대해 재산세와 때로는 종부세등을 내야한다. 둘을 합해서 보유세라 한다. 보유세가 오른거다. 내 삶의 질은 변한게 없고 명목상(숫자상) 가치만 올랐는데 내가 부담해야 할 세금은 올라간다.
그렇다면, 다시 .....무엇을 번 것일까?
내 드라이한 기준에서 보면 마음의 행복을 번 것이다. 아 내 집이 이렇게 올랐구나...라는.....
물론 맞는 면도 있다. 집을 가지지 못한 많은 사람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번 건 맞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번게 아니고 집을 가지지 않았을 때 만약 집을 사야만 한다고 생각하면 생기는 고통(더 큰 돈으로 집을 사야하니까)을 줄인 것이다. 이 고통의 감소만큼 마음의 행복이 된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구수와 주택의 수는 비슷하다고 한다. 즉, 1가구 1주택이 되면 딱 맞는 것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렇다면 강남이던 변두리던 어디에든 본인의 생활이 가능한 곳에 집 한채 있으면 그게 평균인거다.
그 상황이 된다면 오히려 집값이 내려가는게(모든 집이 같이 내려간다는 가정하에) 이득이다. 세금이 줄어드니까.
이사할 때 양도세도 안 내도 되고 취등록세도 줄어든다. 보유세도 당연히 준다.

그러나, 현실은 어렵다. 우리는 집값이 내려가는걸 드물게 본다. 대개는 오른다. 왜 그럴까?
땅 그리고 그 위에 지어질 수 밖에 없는 집은 좀처럼 늘리기 어렵다. 그러나 지난 수십년간 인구는 계속 늘어왔다. 가구당 인구수가 줄면서 가구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왔다. 더군다나 일인당 국민소득은 50여년전 수십달러에서 이제 3만불을 넘어섰다. 어떻게 집값이 내릴 수 있겠는가

그래서 한 가구에 집이 없으면 장기적으로는 천천히 상대적으로 가난해지고 때로는 벼락거지가 된다.
어떻게든 내가 등 붙일 한 채는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 집이 가격이 오르던 내리던 돈을 번 것도 아니고 잃은 것도 아니다. 크게 보면 오르던 내리던 내 삶은 비슷한거다.

세상의 젊은이들이 반박한다. 지금의 임금으로 어떻게 등붙일 곳을 살 수 있다는 말입니까?
맞는 말이다. 단기적으로는....그런데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자. 이제 인구가 줄기 시작했다. 가구수는 당분간 조금 늘어나겠지만 예전만큼은 아니다. 그게 아니더라도 나라의 모든 아니 대대수의 젊은이들이 집을 살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이 상황(소득과 집값이 이렇게 현저하게 차이나는)이 지속가능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둘 중 하나로 균형이 맞추어질 수 밖에 없다. 소득이 늘어나거나 집값이 하락하거나.... 인류가 유발하라리가 말하는 영생의 호모데우스가 되지 않는 한 위 세대들은 사라져 갈 것이고 사라지지 않더라도 생산능력이 현저히 줄어든 기성세대가 본인의 소득과 맞지 않는 집을 오랫동안 보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세상은 의외로 빨리 평형을 찾아간다. 지금 잠시 평형이 깨져서 전국민이 부동산 가격만 쳐다보는 우울한 상황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이 또한 지나고나면 한바탕의 해프닝으로 기억될 것이다.
평형으로 가는 중요한 변수는 소득, 세금(보유세), 건물의 유지비, 개발에 대한 규제 등 많다.
경제의 자율적 힘이 때로는 정치의 힘이 머지 않아 아무도 집값에 관심을 두지 않고 각자의 행복한 삶에 집중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주길 기대해 본다.

더 중요한건 집이 있어도 불행한 사람도 많고 집이 없어도 행복하게 사는 사람도 많다.
매일 언론이 떠드는걸 무시해보자.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삶에 무엇이 그리 차이가 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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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트 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돈과 경제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주는 글, 앞으로도 자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