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에 버블이 '어디에나' 있었습니다
요즘 뉴스, 타임라인은 온통 가상화폐 얘기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입에 올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화의 대부분은 결국 "그래서, 거품이냐 아니냐?"로 귀결됩니다. 전 우문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거품 얘기를 더 해보겠습니다.
아마존, 튤립 얘기는 수없이 들었을테니 19세기 영국 철도 얘기를 해보려합니다. 1769년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합니다. 직후엔 기술적 한계에 부딪혀 상용화엔 실패했지만 기술적 돌파구가 발견된 1820년대부터 철도 산업은 로켓을 달고 뻗어 나갑니다.
증기선은 비교도 안될 혁신적인 산업이 출현하자 곧장 버블이 일었습니다. 절정기였던 1845년 무렵엔 하루에 한개씩 철도회사가 설립됐고, '철도'라는 이름만 붙이면 주가가 폭등했습니다. 장밋빛 전망에 불을 지핀건 1845년 초 철도회사들이 발표한 1000여개의 철로 신설 계획이었습니다. '호재'죠.
이어지는 호재에 철도회사 주식에 몰린 돈이 약 6억 파운드에 달했습니다. 당시 영국 GDP가 5.5억 파운드였습니다. 2017년 대한민국 GDP가 1500조원이었으니, 1650조원의 자금이 한 산업에 쏟아부어진 것입니다.
익숙한 모습이죠? 버블이었습니다.
결말도 비슷합니다. 연초 발표된 철도노선이 삽을 뜨기 시작한 연말이 되자 하나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사기행각이 드러납니다. 노선 구현이 쉽지 않다는 사실도 확인됩니다. 건실한 업체들은 투자자들에게 주식대금을 청구했고, 대금 마련을 위해 투자자들이 주식 매각에 나서면서 주가는 폭락합니다. 당시 철도 관련주의 시총은 반토막이 납니다.
전형적인 버블로 시작한 철도 버블은 익숙하게 끝 맺습니다.
하지만 이후 영국 철도산업도 몰락했을까요. 버블기에 쏟아부어졌던 자금은 새로운 장치, 설비 개발에 투입됐습니다. 당시 영국에서 최고의 엔지니어들과 기술, 장비는 철도 산업에 투입됐습니다. 전세계적으로 지금 같이 거대한 금융 시장이 마련돼있지 않던 시대에 대규모 인프라 사업인 철도 착공을 시장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나라가 영국이었습니다.
다시 가상화폐로 돌아와보면, 지금의 버블(이라 치고)이 없었다면 이 글을 보는 분들은 블록체인, 가상화폐에 관심을 가졌을까요? 예전부터 블록체인 기술을 연구해 온 엔지니어들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분들의 존재도 몰랐고, 코인은 더욱 몰랐습니다.
지금은 전국민이 코인 얘기를 합니다. 아무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블록체인은 유망한 기술'이라는 국민적 컨센서스(?)까지 생겼으며, 관련 산업 밖에 있던 수많은 똑똑한 분들이 공부에 나서고 있습니다. 가격 상승 이전에 언제한번 가상화폐, 블록체인에 진지한 관심을 기울였었나요.
실질적인 변화도 있습니다. 매일 터지는 가상화폐 거래소에 불만은 많으시겠지만, 제가 알기로 지금 가상화폐 거래소에서 발주해 쓰는 장비들은 큰 증권사 못지 않은 최고급 장비입니다. 해커의 표적으로 떠오르면서 보안 투자도 어느 곳 못지않게 하고 있습니다.
비록 ICO는 막혔지만 큰 꿈을 품고 블록체인 공부에 나선 엔지니어들도 수없이 많을 겁니다. 인문계 전공자인 저부터 파이썬 이후로 몇년만에 블록체인 관련 프로그래밍 책을 읽어보기 시작했습니다.
신기술은 항상 버블을 만듭니다. 하지만 모든 산업의 발전은 이른바 '과잉투자'로부터 시작됩니다. 로켓이 대기권을 벗어나는데 연료의 95%를 쓰는 것처럼, 도입부터 상용화까지 이어지는 그 계곡을 뚫는데 버블은 필수적입니다.
설사 버블이 꺼져서 투자자들이 한강으로 '가즈아' 할수도 있습니다. 슬프지만 그런 일은 코스닥에서도 수 없이 일어납니다. "가훈이 '주식하지마라'"라는 분들이 주식시장 폐쇄를 요구하는건 본 적 없습니다.
버블 이후 뭐가 남을까요? 남습니다. 국민들의 관심, 전문가들의 공부와 자본 투입. 버블을 겪으며 쌓은 노하우라는 유, 무형 자산이 남습니다.
버블이 없다면 뭐가 남을까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일본을 보며 배 아픈 마음, "그때 정부가 뒤쳐졌다"는 언론 기사 정도가 남겠지요.
가까운 시일내에 옥석가리기가 시작되리라 봅니다. 지금 유통되는 코인의 99%는 휴지조각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코인도 자신의 생태계를 실현시킨 것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버블 이후에도 '옥'들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런 옥들이 남아서 네덜란드의 튤립산업을 지탱했고(네덜란드는 지금까지도 튤립산업 강국입니다) 코인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서퍼들은 물을 뚫고 가는게 아니라 타고 갑니다. 지금 대처는 파도를 타긴 커녕 칼과 방패 들고 바다에 뛰어들어 허우적거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모쪼록 정부가 시대를 타는 혜안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Awesome Job My Friend...
잘읽고갑니다^^
어차피 버블이 남기는 것은 개인의 것이 아닌데
이런 절호의 찬스에 '폐쇄'같은 방법밖에 없다니
진짜 정부에 혜안이 필요한 시점인 것 같습니다.
저는 변화를 최대한 빨리 쫓으려는 노력을 하겠습니다 ㅎ
막기엔 이미 늦었고, 막는게 능사도 아닌 만큼 잘 이용해야할 것 같습니다.
정말 맞는말씀 같습니다 대단하시네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