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gle Duplex의 등장. 다시 인간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할 시간

in #kr7 years ago

자자... 이제 우리는 다시 질문을 던져야 할 때이다.

인간은 왜 인간이지?

근대 그러니까 모더니즘 그리고 그 모더니즘에 대한 반향으로 탄생한 포스트 모더니즘. 그러니까 18세기부터 21세기까지.

인간은 왜 인간이지? 에 대한 답변은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니까!" 였다.

언어를 사용하니 로고스가 있는 것이고, 언어를 사용하니 주체와 객체가 분리되는 것이고, 언어를 사용하니 랑그와 파롤, 시그니피앙과 시그니피엥이 있는 것이고, 언어를 사용하니 의식과 무의식이 존재하는 것이고, 언어를 사용하니 욕망과 욕구와 요구가 매번 미끌어지는 것이며,. 언어를 사용하기에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욕망의 시지푸스 신화가 재현되는 것이며, 언어가 존재하기에 혁명의 횃불은 늘 다른 곳으로 향하며, 언어를 통해 사회를 구성하는 매커니즘과 권력체계가 만들어지고 유지되었으며, 언어를 통해 가족 관계와 인간 관계의 친밀함과 적대감이 측정되었고, 언어를 통해 금기와 규칙이 정의되고 역설적이게도 금기 위반과 혁명이 잉태되었으며, 언어가 존재하기에 매번 이 산이 아닌가벼가 반복되었다.

그런데... 이제 언어는 인간의 것이 아니다.
구글의 이 인공지능 비서는 아직 언어의 커뮤니케이션적 측면에 국한된 듯 보이지만, 아마도 이 동영상에서 시연한 것보다 훨씬 더 패턴화와 구조화를 통한 언어적 학습. 아니 언어적 학습 이전의 무의식과 언어와 존재와 타자와 정치와 권력 등등에 대한 학습이 윤리적 판단과정이 배제된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알파고는 하나의 은유였다. 그 동안 인간들은 무의식은 패턴화 될 수 없다고 안위하고 있었다. 패턴화 될 수 없는 무의식은 인간의 최후의 보루였다. 물론 언어는 초창기에는 의식의 영역이라고 주장되었다가, 점점 무의식의 영역이라고 뒷걸음질치며 신성불가침 영역을 설정해왔었다. 알파고는 패턴분석 자가학습 등을 통해 대뇌피질에 있는 바둑 규칙과 수싸움 등등 이성적 영역을 압도한 것은 물론 세력, 기세, 타이밍, 감각 등 비이성적, 무의식적 영역 마저도 비웃으며 박살내버렸다.

아래 동영상은 저 비서를 어시스턴츠 즉 조력자로 국한 시키려 한다. 하지만 조금만 방향을 바꾸면 저 비서는 대타자로서 작고 분절된 자아에 명령을 내리는 존재가 될 것이다. 이게 최저가야, 이게 최선의 선택이야, 이게 최고의 방법이야! 이 대타자는 아마도 지금 사회의 최고의 가치인 자본주의적 효율성을 반영할 것이므로 최고, 최선, 가장 효율적 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대신 할 것이다.

이런 기술적 흐름과 성과를 부정하거나 파괴하려 할 것인가?
그것은 불가능하고 불가역적이다.

그렇다면 이제 다시 물어볼 차례이다.
인간은 도대체 무엇으로 인해 인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