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의 중요성에 대한 좀더 깊은 생각 - 박상익,《번역청을 설립하라》

in #kr6 years ago (edited)


외국 작가의 책을 읽다보면, 답답할 때가 가끔 있습니다. 뭔가 부자연스럽고 앞뒤 문장에 논리적인 연관성이 없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기도 하죠. 그런 경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서평을 참조하기도 하는데, 꽤나 많은 사람들이 번역이 문제라는 것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사실 저는 원문을 보면서 서로 비교해는 사람이 아니기에 번역이 진짜 문제인지 판단하지는 못합니다. 가끔 나오는 의학 용어 번역이 어색할 경우, 판단할 수는 있습니다만^^;

저는 번역이 좋지 못한 경우 두 가지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줄거리, 내용이 바뀔 수 있다. 둘째는 내용 습득이 어려워 오히려 원문을 보는 것만 못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학생 때 물리학에 관심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 영어 교과서와 번역본인 한글 교과서 두 책을 갖고 있었는데 저는 번역본을 거의 보지 않았습니다. 복잡한 한자용어와 줄줄이 나열하는 만연체 문장에 비해 영어 교과서는 쉬운 영어로 간략하게 설명을 했기 때문이죠. 대학에서 전공 공부를 하셨던 분이라면 한글 교과서가 더 복잡한 이런 느낌 많이들 느껴보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번역을 때려치고, 그냥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요? 《번역청을 설립하라》의 저자 박상익은 이런 것들은 모두 번역이 소외되고 경시되어 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고 비판하면서 국문 번역이 중요한 이유와 학계가 나아가야 할 길을 설명합니다.

  1. 선진국, 그리고 우리와 가까운 일본은 세계의 지식을 자국어로 엄청나게 번역했다. 그것이 학문의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
  2. 전문 연구자와 달리 시민들이 외국어로 지식을 습득하는 경우 모국어를 통한 것보다 그 학습능률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국민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양질의 번역은 매우 중요하다.
  3. 한글은 뛰어난 언어다. 매년 한글날만 되면 우리는 한글을 찬양하지만, 한글로 번역된 지식의 양과 질은 부실하기 그지없다. 중요한 것은 콘텐츠다.
  4. 예전에는 라틴어가 세계의 중심이었지만 영미에서는 영어 번역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는 영어가 세상의 중심 언어다. 한글이 언젠가 세계의 언어가 되지 않으란 법이 없지 않은가? 사대주의에서 벗어나 우리의 언어를 이용해야 한다.
  5. 돈이 되지 않는 번역을 시장에 맡길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국가 번역 사업 지원은 매년 10억 남짓이다. 다른 분야에 비하면 매우 빈약한 수준인데, 앞으로 이에 대해서 인식을 바꿔나가야 한다.
  6. 교수와 학자들 또한 국문으로 된 책을 내서 시민들에게 양질의 지식을 공유할 의무가 있다.

전반적인 글의 내용에 동의하지만 모든 주장에 동의하는 바는 아닙니다. 저 같은 경우 의학 논문을 접할때 영어가 편하다고 느낍니다. 지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하루에도 수십편의 영어 논문이 나오는 상황에서 일일이 국문으로 번역되길 기다리긴 어렵습니다. 국가적으로 번역 수준이 올라가면 빠르게 국문 번역본이 나올 수 있겠지만, 그것도 수준의 한계가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전과 기초 학문의 경우 알기쉬운 한글 번역은 굉장히 중요할 테지요. 번역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어나 양질의 번역본을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는 날을 기대해봅니다.

여담으로 이 책에 김재인 박사님(@armdown)이 언급됩니다. 10년동안 들뢰즈의 《안티 오이디푸스》를 번역하셨다고 하는군요. 인세는 330만원. 10년동안 그 분야의 전문가가 번역한 노력에 비하면 너무나도 적은 보상이라는 생각입니다. 학자가 정당한 보상을 받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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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diatrics 님 주 1권 독서하고 서평쓰기 챌린지 완료입니다. 이글에 1/3만큼 보팅하고 갑니다. 나머지 보팅은 다른 게시글에 3일에 거쳐 리워드 하겠습니다. (스팀잇 업데이트로 인한 보팅이 늦어진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저도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영어로 되어있는 책을 번역할때 문화가 다르기떄문에 단어를 그대로 번역하는것 보다 한국에서는 그럴경우 어떤 표현을 쓰는지를 생각해서 한국정서에 맞게 번역을 해야 하는데... 어떨때는 번역한 책을 읽으면 꼭 구글 번역기로 번역한 느낌이 나서 ㅎㅎㅎ. 좀 부자연스러울때가 있죠.

@rtytf 미국에 사시니까 사실 번역이 필요 없으실 것 같은걸요😉

헉 330이요? 너무하는군요. 누구를 비난해야할지 조차도 모르겠네요,

@jyinvest 그렇죠? 안타깝습니다..

고전과 기초 학문 외에도, IT 로컬라이제이션 건설 경제 사회 일반 분야 등의 광대한 분야에서 번역이 필수이고 실제로 상당한 번역작업이 매일 24시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번역료는 수십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듯. 오히려 내려가는 것 같습니다. 그 번역료라는 것이 많은 것을 대변해줍니다. 즉, 일반적으로 번역만으로는 아직도 안정적인 생계 유지가 힘듭니다. 즉, 인재가 머물 수 없는 시장이지요. (물론, 안정적이고 성공적인 일부 소수 번역사분들을 예외로 하면).

수준 높은 콘텐츠가 있어도 세계 시장에 나가지 못하고, 공공, 산업 분야에서도 초저렴 번역 입찰이 필수이고, 초스피드로 작업해낸 문서의 번역 오류로 인해 국가적으로도 막대한 금액의 손해가 나는 일이 반복되어도 ... 변화가 없어서, 그저 안타깝습니다. 위 저서의 저자가 어떤 심정으로 글을 썼을지 제목만 봐도 충분히 상상됩니다 ㅜㅜ

@ajlight님의 심정이 느껴지는 글입니다...😥

쉬운 영어가 쉽기는 한데, 잘 번역된 국문과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더라구요.

@relaxkim 그만큼 국문으로 잘 번역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겠죠..😃

출판산업에서 수익구조가 사실 좀 불공평한 것 같습니다. 저도 출판사에서 일하지만 출판사는 서점들 욕하고 각 외주 협력업체들은 출판사 욕하고 결국 협력업체들이 좀 고생하며 버텨가고 있죠.

@leejinhyeok 출판사에서 일하시는군요! 출판업계 어렵다어렵다 이야기하는 것이 하루이틀이 아닌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종종 들리겠습니다. ^^

@dipfox 감사합니다^^

컴퓨터쪽 원서도 번역본으로 보면 참 이상한 표현들이 많았어요. 그래도 요새 나온 책들은 많이 괜찮아졌더라고요. (대학생 때 본 책 중에는 MS Windows 의 Windows 를 창문이라고 써놓은 곳도 있었어요. -_-;;)

그런데 물론 번역본이 잘 되어 있으면 좋지만, 일하다보면 외국인이랑 대화할 일이 생기다보니 결국 영어로서의 표현법도 알아야하긴 하는 것 같아요. 그래도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새로운 지식을 접할 수 있도록 일본처럼 번역 예제가 잘 되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심지어 일본은 일-영 번역 예제가 많아서 사람들이 구글 번역을 사용 시에도 한국어->일본어->영어 로 번역을 돌리더라고요.

@realsunny 역시나 일본이 워낙 번역을 많이 해서 중역이 많은 것이죠!
MS windows을 창문으로 번역해놓은 것 저도 예전에 본 것 같습니다🤣🤣

날씨가 많이 춥습니다. 감기조심하세요

@maikuraki 네, 일교차가 심해졌네요. 건강 잘 챙기세요^^

저도 한때는 번역을 이렇게밖에 못하나 투덜댔는데, 번역이 생각만큼 쉬운 게 아니더라고요. 의역이냐, 직역이냐의 문제도 있고요.
말씀하신 대로 기초분야는 많이 번역돼있으면 좋을 거 같아요.

@bree1042 말씀대로 생각만큼 쉬운 것이 아니라는 것에 동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