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기법 소개 -<박하사탕>을 중심으로

in #kr3 years ago

언어적으로 표현되는 대사처리 이외에 몸동작이나 시간 편집과 공간 배치를 통해 이루어지는 영화 특유의 시각적
표현기법을 눈여겨볼 때 영화에 대한 좀더 심층적인 분석이 가능해집니다.
영화에 따라서는, 아니 잘된 영화일수록이러한 영화적 기법들이 영화의 이야기 전개보다 더 영화적인 특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중요하게 부각되곤 한답니다.
여기서는 <박하사탕>을 소재로 삼아 짧게 몇 가지만 살펴보기로 합니다.

  1. 셔레이드(charade): 대사 외적 표현의 묘미

표정이나 동작을 통해 미세한 심리를 표현하는 셔레이드(charade)는 직접적인 대사보다는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시켜서 비언어적인 신체언어를 통해 간접적/상징적/은유적으로 내면적 심리나 감정을 극적으로 전달하는 영화적방법입니다.
우리는 영화 <친구>에서 유오성이 장동건을 설득하다가 협상이 결렬된 뒤 나와서 담배를 떨어뜨리고그것이 땅에 닿아서 불이 꺼지는 장면이 친구간의 의리가 끝났다는 신호로서 살인의 지령이 된다거나, <황금광시대>에서 주인공(채플린)이 더러운 구두를 우아하게(?) 요리해 먹는 장면이 부자들의 잔치에 참여할 수 없는 굶주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역설적으로 포착하는 데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얼마전 수업시간에 보았던 <박하사탕>을 살펴보면, 주인공 영호가 본인이 상실한 순수를 상기시키는 순간마다 본인도 모르게 다리를 절면서 걷는 장면이 나옵니다.
평상시 아무렇지도 않다가 완전히 의식 저편 무의식 속으로 봉인당했던 순수 혹은 마비되었던 양심이 되살아날 때마다 원죄의 상처(trauma)도 함께 신체적 기억으로 재생됩니다.
이런 장면을 대사로 처리한다면 도리어 김이 빠지지 않을까요?
또한 순임에게 받은 ‘박하사탕’이 광주항쟁을 진
압하기 위해 출동하는 군인들의 군화발에 으깨어지는 장면은 한국 현대사 속에서 순수와 인권 등 소중한 가치가 국가적 폭력에 의해 박살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리하여 그 어떤 구구한 대사보다 훨씬 더 강력한 의미전달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정의를 부르짖다 잡혀온 학생에 대한 고문을 끝낸 뒤 룸싸롱에 와서 여자를끼고 놀아나는 자신의 추한 모습과 그 악한 사회구조 속에 웃음과 몸을 팔러 나온 아가씨를 보고 느낀 환멸감은 이어서 화장실에 걸린 거울을 보면서 자신을 향해 조소를 퍼붓는 손가락 제스쳐로 응결됩니다.
한편 영호가 구조적 폭력의 하수인으로 일상적 폭력의 가해자가 되었음을 잘 드러내는 셔레이드는 바로 ‘으르릉’하고 개소리를 내는 장면을 통해 잘 드러납니다.
한번은 고문당하는 학생을 향해 공권력의 하수인으로 구조적 폭력의 통로인 고문형사로 짖는 것이라면, 한번은 고문을 받았던 그 학생의 아이를 식당에서 만나 장난스럽게 ‘으르릉’하고 짖는 장면입니다.
이미 내면화된 폭력, 일상화된 야수성의 표출인 것이지요.
이런 장면을 소설로 써서 글로 표현할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눈을 통해 들어오는 가시적 이미지가 얼마나 우리를
사로잡는 매력, 아니 마력을 품어내는 지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