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발전이 원유 시대의 종말을 가져올까요?
리서치 업체 스탠포드 C. 번스타인은 어느 한 쪽 관습에만 묶여있는 기관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고객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잘꾸민 차트, 현금 흐름 할인 전망, 때로는 끔찍한 말장난으로 콘텐츠를 제공하지만, 번스타인에서는 "The Future of Oil Demand" 같은 주제로 두툼한 책자를 발행하기도 합니다.
최근 발간한 보고서 “How Technology Will End the Oil Age”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보고서에서는 과거 세상에서 사라져간 원자재 산업의 역사를 보여주면서, 원유 시대를 끝낼 수도 있는 기술 발전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날이 곧바로 찾아오진 않겠지만, 다음 같이 주장합니다.
... 원유 산업이 종말로 가는 속도와 과정은 측정하기 어렵고 불확실하다. 이 산업과 해당 기술은 소비자 기기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코끼리가 벌새와 같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변화는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사례만큼 빠르게 일어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번스타인은 이 보고서에서 과거 원자재 기반 산업 중 하나였던 고래 기름에 대해 자세히 살펴 보고 있습니다.
어떤 미국 소설에서는 사나운 흰 고래로 언급되기도 했듯이, 미국의 포경 산업은 19세기 중반에 정점에 이른 후, 1850년대 후반 에드워드 드레이크가 원유를 발견한 때를 기점으로 서서히 사라지게 됩니다. 비록 고래 기름 가격은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말입니다.
<1850년대 중반 이후, 고래 기름 가격은 상승세를 유지했지만, 포경 시장은 서서히 사라져 갑니다.>
그리고 다음 차트는 19세기 전반의 포경 산업의 규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포경 산업이 정점에 있을 당시 미국 경제에 약 1천만 달러를 기여했으며, 당시 미국 내에서 5번째로 큰 산업이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뉴잉글랜드의 뉴베드포드가 있었습니다. 애틀랜틱지에 따르면, 고래 기름의 용도는 광범위했습니다.
뉴베드포드 산 고래 기름은 전국 각지로 공급되었다. 고래 기름은 신상품 기계의 윤활유로 쓰였다. 저급 고래 기름은 등잔에 채워졌다. 고래 수염은 코르셋의 지지대로 들어갔다.
역사가 에밀리 어윈에 따르면, 조지 워싱턴과 벤저민 프랭클린은 고래 기름으로 만든 양초를 즐겨 사용했던 것으로 유명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업계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요?
그 전말은 익숙한 이야기입니다. 대체제의 발견, 임금 인상 그리고 해외로부터의 경쟁으로 인해 결국 수익성은 떨어졌고, 자본은 더 빠르게 성장하던 미국 내 다른 산업에 투자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던 산업이 바로 철도였을 것입니다. 미국 내 철로 규모는 1861년 남북 전쟁이 발발하기까지 10년 동안 3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포경 산업은 소멸하고, 관련 종사자들은 다른 곳으로 뿔뿔히 흩어졌을까요?
번스타인의 보고서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1960년대 고래 포획 개체수는 1850년 정점 당시보다 20배나 늘었다. 포경 산업은 소멸한 것이 아니라, 변한 것이었고 규모는 더 폭발했다.
그렇습니다. 미국 시장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포경 산업은, 예를 들어 고래의 고칼로리 함량 덕분으로 20세기까지 인기를 이어갔습니다. 고래는 1930년대 후반 독일 국민 건강에 중요했습니다. 당시 유니레버는 고래 기름을 주성분으로 마가린을 제조하고 있었는데, 독일 경제상 헤르만 괴링은 마가린 판매로 얻은 수익을 포경 선단에게 보조금으로 지급하라고 강제했고, 제3 제국을 고래 기름 독립을 선언하기도 했습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와서, 임금, 대체재 및 경쟁이 미국 포경 산업 소멸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그외에 다른 요인도 있었습니다. 번스타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
마지막 그리고 이 보고서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것과 가장 관련이 있는 요인은 포경 기술 자체의 발전 때문이었고, 결국 미국 포경 산업을 도태시켰다.
이런 기술적인 면이 고래 산업의 공급과 수요 모두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공급 측면에서 볼 때, 증기선과 끝을 폭발시키는 작살이 발명됨으로써, 기존 너무 빠르고 커서 접근이 불가능했던 흰긴수염 고래를 포경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포경 방법의 발전으로 고래 기름의 공급량이 많아져 가격 인하를 가져왔고, 진입 장벽이 낮아짐에 따라 포경 산업의 비용 감축이 가능해 졌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수요 측면에서는, 등유의 보급 확대와 1880년대 영국에서 '브러시 붐'이라는 투기적 열풍을 불러 일으켰던 에디슨의 전구 발명 등 연료의 혁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아직 전 세계적으로 포경 산업은 계속되었지만, 미국 경제의 급속한 팽창에서는 더 이상 큰 역할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사례를 현대에서 살펴보면, 기술 발전이 세계 원유 시장의 역학에 점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 빗댈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셰일 원유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오랜 기간 셰일 원유는 생산 비용이 높고, 그에 반해 생산량은 낮기 때문에(아래 차트 참조), 현금 먹는 하마라고 인식되었지만, 유가 상승으로 인해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지난 3월 국제 에너지기구(IEA)에서 내놓은 원유의 미래에 관한 보고서에서는 텍사스와 뉴 멕시코를 횡단하는 풍부한 원유 매장지인 퍼미언 분지의 2030년까지 원유 생산량을 전망하고 있습니다.
기존 OPEC 원유 감산 정책이 계속된다면, 미국 내 원유 생산량이 올해 말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 모두를 따라잡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현재 IEA는 미국이 2020년 말까지 원유 순 수출국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2006년 일간 1,340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하던 미국에게는 커다란 전환점이 되는 순간일 것입니다.
놀라운 성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셰일 원유가 경제적으로 실용이 있다는 가정하에 가능한 일입니다. 셰일 원유 산업이 자본집약적이란 점을 감안할 때, 유가가 배럴당 53달러 이하로 내려갈 경우, 셰일 원유 산업은 다시 곤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수익성 문제는 제쳐두고라도, 셰일 원유 시대는 종래 과도한 권력욕에 취해있던 OPEC에게는 여전히 두통거리가 될 것입니다.
OPEC와 미국 셰일 원유는 영원한 딜레마 관계에 빠져 있습니다. 즉, OPEC가 감산 중지를 너무 이르게 결정하면, 시장에 공급 과잉이 일어날 위험이 있고, 너무 늦게 되면, 미국 셰일 원유가 그 자리를 차지해 시장 점유율을 그러쥘 것입니다.
유가가 배럴당 80달러에 근접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이러한 존재와 관련된 위협이 1973년 처럼 한때 세계를 스태그플레이션에 몰아넣을 수 있는 힘을 지녔던 OPEC 카르텔을 하찮은 존재로 만들고 있습니다.
수요 측면에서 볼 때, 원유 시장은 재생가능 에너지 및 전기 자동차에 의해 이중으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미국 에너지 정보국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태양광 및 풍력 발전 비용이 크게 감소했고, 향후 10년 동안 더욱 인상적인 성장을 보일 것으로 전망됩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재생가능 에너지 산업의 필요성에 대해 귀를 닫고 있으며, 지난 1월에 태양광 패널에 관세를 부과한 것처럼, 1920년대 급속한 투자로 미국의 전기화가 13mkw에서 33mlw로 앞당겨 졌던 상황을 기대하기는 아직 무리입니다.
다만 1882년 뉴욕 펄 스트리트에 미국 최초의 발전소가 가동을 시작한 시점과 1920년대의 미국 가정 50%에 전기가 공급된 시점 간의 시차에 주목할 필요는 있습니다. 즉, 채택에서 대중화에 이르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린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전기 자동차만 봐도, 방안의 코끼리 입니다(아무도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모두 인지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 아래 차트는 향후 20여년 동안 전기 자동차 수요를 전망한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 일간 원유 수요 1억 배럴에서 2040년이 되면 일간 730만 배럴이 줄어들게 됩니다. 배터리 기술의 비교적 유년기에 있으며, 선진국 이외에는 충전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을 감안할 때, 전기 자동차가 원유 시장을 실질적으로 위협하기 까지는 아직 먼 길이 남아 있으며, 위에서 예상된 것보다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입니다.
궁극적으로 고래 기름이 기술 발전이나 대체제에 의해 뒤안길로 사라지긴 했지만, 986년 국제 포경위원회에서 상업 포경을 금지할 때까지, 미국 경제에서 고래 산업이 버려진 후에도 족히 100년 동안 살아남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언젠가 기술 발전이 원유 시대의 종말에 일정 부분 기여하겠지만, 그 과정은 일각에서 바라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 입니다.
<출처: Financial Times, "Call me Ish-shale">
금리인상과 유가상승, 유심히 보고있는 중에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고래기름이 옛날에는 그리 많은 양이 소모되는 큰 산업이었는 줄 몰랐어요.
그냥 립스틱이나 만드는줄 알았네요
이 많은 분량의 좋은 글을 알기 쉽게 옭겨주셨군요.
많은 인사이트를 얻어갑니다~~
매우 좋은 내용입니다.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