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E] 시적인 심정을 지닌 모든 이들처럼 그는 무지한 사람들을 사랑했다. 그는 무지 속에 언제나 위대한 생각의 가능성이 있음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어리석은 사람들, 특히 교육을 통해 어리석게 된 사람들을 참지 못했다. 자신들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의견을 잔뜩 가지고 있는 사람들, 유별나게 현대적인 유형으로, 그리스도에 따르면 이들은 지식의 열쇠를 갖고 있으나 사용할 줄 모르고, 다른 이들도 사용할 수 없게 하는 이들이었다. 그것이 신의 왕국의 문을 열기 위한 것일 수 있는데도 말이다. 그는 주로 속물주의자들과 격렬히 부딪쳤다. 이는 모든 빛의 자녀가 치러야 할 전쟁이었다. 속물주의자들은 그가 살았던 시대와 공동체를 특징 짓는 것이었다. 범접하기 어려운 그들의 아이디어와 젠채 하는 것, 그들의 지루한 교리, 저속한 성공을 위한 숭배, 삶의 역겨운 물질만능주의적 측면에 대한 전적인 몰두, 자신들 존재와 중요성에 대한 터무니 없는 판단. 그리스도가 살던 시대의 유대인들은 지금의 영국의 속물주의자들과 정확히 일치했다. 그리스도는 인습적 관습의 '회칠한 무덤'을 조롱했고, 그 구절을 못 박았다. 그는 세속적인 성공을 완전히 경멸해야 할 것으로 취급했다. 그는 그것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는 부를 하나의 짐으로 봤다. 그는 삶이 어떤 사상이나 도덕 체계에도 희생되어야 한다는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형식과 의식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지, 인간이 형식과 의식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지적했다. 그는 안식일주의를 전혀 가치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냉담한 박애주의, 과시적인 공공 자선 활동, 중산층이 몹시도 중요시하니 지루한 형식주의에 그는 가차 없는 경멸을 퍼부었다. 우리에게 정통이라 하는 것은 단지 우둔한 묵인이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의 손에는, 끔찍하고 마비시키는 압제적인 것이었다. 그리스도는 이를 쓸어내 버렸다. 그는 오직 정신만이 값진 것임을 보여주었다. 그는 그들이 언제나 율법과 예언서를 읽지만, 그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말이지 조금도 알지 못하는 걸 지적하는 데 열정적인 기쁨을 느끼곤 했다. 그들이 박하와 회향으로 십일조를 내듯, 매일을 판에 박힌 일상의 정해진 의무를 따라 정형화된 방식으로 헌납하는 것에 반하여, 전적으로 현재를 사는 것이 몹시도 중요함을 설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