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의 달인들 - 안영

in #kr7 years ago (edited)


안영(晏嬰)은 춘추시대 인물로써 후일 제갈량이 양보음(梁甫吟)에서 읊기도 한 제나라의 대부(大夫)입니다.

그 당시 중국의 정세는 진(晉)과 초(楚)가 양대 강국으로 패권을 다투며 기타 나라들은 이들의 눈치만 보는 형편이었습니다. 제나라는 비록 큰 나라였지만 진과 가까운 위치에 있었으므로 원교근공의 원칙에 따라 제나라 임금인 제경공은 초와의 친선을 위해 그를 사신으로 파견했습니다.

당시 초나라는 지금의 양자강 이남과 장가계(張家界) 지역을 아우르는 대국이었지만, 밀과 수수를 주식으로 하는 중원지역과는 달리 쌀을 주식으로 하며 몸에는 문신을 새기는 풍속이 있는데다 초인(楚人)들의 성품 역시 다혈질이고 야만스러워 중원국가들은 은연중에 그들을 오랑캐라고 경원시하고 두려워했습니다.



제경공의 명을 받은 안영이 국경에 가까워오고 있고 그의 외모가 작고 보잘 것 없다는 첩보를 받은 초령왕은 오랑캐 두목답게 그를 모욕하기 위해 성문으로 들이지 말고 개구멍으로 들이라는 명을 내립니다. 안영이 초나라 수도 영성에 도착하여 수문장에게 자신의 신분을 알리자 수문장이 외칩니다.

“제나라 대부는 성문 옆 구멍으로 들어오시오. 그런 조그만 몸으론 그 정도면 충분할 것이오!”

그러자 안영은 태연히 대답합니다.

“저건 개구멍이지 사람이 드나드는 문이 아니다. 내가 개나라에 온 것이면 모르되 사람 사는 나라에 왔으니 사람이 드나드는 문으로 들어가겠다.”

한 방 먹은 수문장이 보고하자 초령왕도 그를 조롱하려다 도리어 조롱당했다며 그를 정중히 맞이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물러날 초인들이 아니었습니다. 초령왕을 배알한 자리에서 초나라 신하들의 공세가 이어집니다.

“제나라는 제환공의 패업을 계승한다 떠벌리지만 스스로 진나라 하나 당하지 못하고 다른 큰 나라를 따라다니며 복종하기에 급급하니 부끄럽지도 않소? 게다가 그대는 한 나라의 대부이면서 키는 겨우 오 척에 힘으론 닭 한 마리 잡지 못 할 정도인데 공연히 입만 놀려 능사를 삼으니 한심하오.”

안영이 대답합니다.

“저울추는 비록 작지만 천근의 무게를 달며, 천하대세에 대해 할 바를 아는 자야말로 호걸이요, 기회와 변화에 따라 일을 성취시키는 자가 바로 영웅이라. 우리 제나라는 사신을 보내는데도 법도가 있어 현명한 사람은 대국으로, 나같이 못난 자는 소국으로 보냅니다. 따라서 우리 상감께선 나를 이리로 보낸 것이오.”

그때 마침, 물론 이도 연출된 것이지만, 궁성 뜰로 무사들이 일단의 죄수들을 끌고 갑니다. 초령왕이 짐짓 시치미 떼고 무사들에게 묻습니다.

“끌고 가는 죄수는 어디 놈인가?”
“제나라 놈들입니다!”
“제나라 사람은 다 도둑질하는 버릇이 있는가?”

초령왕이 안영에게 고개를 돌리며 묻자 안영이 머리를 조아리며 답합니다.

“신이 듣기에 강남엔 귤이 나지만 강북으로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토질과 기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원래 제나라엔 도둑이 없는데 제나라 사람이 초나라에 오면 도둑이 됩니다. 우리 제나라와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한참 말이 없던 왕은 비로소 안영을 예로써 후대하고 제나라와 동맹을 맺습니다.

임무를 완수한데다 국위까지 선양하고 돌아온 안영을 제경공은 벼슬을 높이고 땅을 하사했지만 그는 모두 사양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임금은 안영 부부를 궁으로 초대해 연회를 베풉니다.

그런데 왕이 보자니 안영의 아내가 너무 늙고 추합니다. 다음 날 안영이 궁에 들자 제경공이 말합니다.

“어제 보니 그대 아내가 너무 늙고 추했도다. 내 딸이 젊고 아리따우니 그대에게 주리라.”

졸지에 왕의 사위가 되는 영광이 굴러왔지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정중히 사양합니다.

“여자가 시집와서 남편을 섬기는 마음은 후일 늙고 보기 싫어지더라도 버리지 말아달라는 부탁과 믿음입니다. 이제 와서 어찌 동고동락한 아내를 저버릴 수 있겠나이까.”

제경공의 안영에 대한 신뢰와 존경이 더욱 깊어진 것은 말할 나위 없습니다.





한 나라의 외교관으로 타국에 가면 제일 첫째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위신이고, 둘째가 상대국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속내를 간파하는 것이며, 셋째는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한 득실을 계량하는 것이요, 마지막으론 목숨을 던져서라도 나라의 품격을 지키고 임무를 달성하겠다는 결기입니다.

시시각각 급변하는 격랑의 국제정세 속에서 오늘도 치열한 외교전에 임하고 있을 일선 실무 외교관들의 노고에 감사를 드리는 동시에 외교가란 마땅히 어떤 마음가짐으로 직무에 임해야 하는가를 되짚어 보는 것도 무의미한 일만은 아니라 생각하여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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