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문화 역사관 REVIEW] 역사를 알아가는 또다른 방법 @Redsign
나는 솔직히 불상을 무서워한다. 어딘가 무뚝뚝해보이면서도 나를 내려다보는 듯한 그 느낌이 마치 나의 모든 것을 꿰뚫어보려는 듯한 그런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다. 부처는 인간의 생로병사를 알아채고 그것에 대한 번민에서 벗어나 스스로 열반하여 깨우친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는 다른 종교의 성인들과 다르다. 부처는 인간이었고, 인간임에도 함부로 도달할 수 없는 그런 지경에 이른 인간 아닌 인간이었다. 그 점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의 앞에 서면 언제나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사람 중 하나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었다. 또한 보살은 부처를 같은 모델로 하여 만들어진 상징물이었다고 하는데, 사실 보살은 깨달음에 이르기 전의 석가모니라고 한다. 지금은 보살은 그가 아닌 그와 인간을 중계하는 존재로 인간에 의해 만들어져 신과 비슷한 자격을 지닌 어떠한 신비로운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좀 더 유식하게 말해보자면, 위로는 부처를 따르고 아래로는 모든 사람을 이끌어 깨달음을 얻기 위해 힘쓰는 존재를 의미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상징화한 상징물이 바로 보살상이라 한다. 보살의 대표적인 예로는 미륵보살, 관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대세지보살, 지장보살 등이 있다 했다. 보살은 부처와 얼굴이 비슷하면서도 달랐다. 어딘가 좀 더 온화한 느낌을 주는 보살. 부처가 아버지라면 보살은 어머니였다. 그렇기 때문에 내게는 부처보다는 보살이 좀 더 보기에 편안했었다. 물론, 누구에게 말한다면 이상하다고 말했을 테였지만 말이다.
보살은 보살상마다 각기 다른 하나하나의 존재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신이었고, 하나하나가 각기 다른 개체였다. 그들의 공통점은 인간이 가진 어려움을 돌봐주는 존재로서 신이한 능력을 가진 이라는 것이다. 보살은 사실 그것 때문에 만들어진 게 아닌가 싶다. 자신의 위에서 군림할 뿐 자신들을 돌봐주지 않는 지배층의 횡포에 밟히고, 또 밟혀 기댈 곳을 찾는 힘없는 백성들의 바람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가 바로 보살인 것이다. 관음보살은 관세음보살이라고도 하는데, 부처의 자비심을 상징한다. 이 보살은 중생의 바람에 따라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 구제하여 준다고 한다. 아마 이 관음보살이 대중적으로 알려진 그 보살일 듯하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상징하는 보살로, 석가모니의 교화를 돕기 위해 나타나는 보살이다. 보현보살과 석가모니불 옆에 있는 보살이다. 보현보살은 자비나 이치를 상징하는 보살이다. 중생의 수명을 늘려주는 덕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대세지보살은 ‘지혜의 빛’으로 모든 중생의 어리석음을 없애 주는 힘을 지닌 보살이다. 관음보살과 함께 아미타불의 옆에서 보좌하는 보살이다.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영원히 부처가 되지 않는 보살이다. 지장보살은 여느 보살상과 달리 민머리의 스님 모습이거나 머리에 두건을 쓴 모습으로 표현된다.
불교조각실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대표적인 불상과 보살상이 시대별, 주제별로 전시되어 있었다. 종교는 시대를 반영하고,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나라가 어려울 때에는 불교는 나라를 위해 싸우는 종교가 되었고, 나라가 부패로 썩어갈 때는 그러한 부정부패를 꼬집어 비판하는 종교가 되었다. 종교만 보아도, 그 당시 존재했던 종교적 상징물만 보아도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고, 그 때의 역사적 흐름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관람에서 종교적인 상징물인 불상과 보살상을 보고 감상하며 역사를 이해할 수 있었다.
보살, 불상들은 대부분 삼국시대보다 시기가 조금 덜 된 조선시대, 고려 말의 것들이 가장 다수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그 중에서 대부분은 일제강점기나 외침에 의해 손실되고 사라진 것들이 많다고 한다. 전쟁은 그 나라의 전반적인 모든 것들을 앗아가고 파괴한다더니 그 말이 정말 딱 맞는 듯 했다. 아마 일제강점기 때가 한반도의 암흑기라 하였으니 그 때가 아마 유실이 제일 심했을 것으로 예상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와 종교, 역사는 더욱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세 가지는 민족의 얼을 상징하며 나아가 그 나라의 정체성이 되기 때문이다. 이번 관람을 통해 그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이 내겐 가장 인상적이고 의미 있는 점이었다.
장신구란, 그 나라와 시대의 귀족 문화, 예술 양식 등을 알아볼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된다. 뿐만 아니라 장신구는 신체를 아름답게 장식하는 기능 외에도 신분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귀족이라면 누구나 장신구를 착용하였다. 대표적으로 귀걸이, 목걸이, 허리띠, 반지 등의 종류가 있다. 사실 장신구라 하면 귀족의 사치품으로 생각이 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그랬다. 당장 오늘 자기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던 백성들이 썼던 물건은 절대로 아닐 것이고, 장신구 하나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백성의 고혈을 뽑았을 것인지에 대한 그런 생각만 그저 많이 들었었다. 귀족의 사치 하나는 힘없는 민초 한 명의 생명 하나다. 그렇기 때문에 장신구는 예쁘다라는 생각 말고도 참으로 애달프다, 라는 생각이 주로 들게 한다.
하지만 이런 전시에서 그런 것을 생각하는 것은 맞지 않는 일인 듯 하니 넘어가기로 했다. 이번 전시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시대는 고구려-백제-신라의 삼국시대였다. 신라 문화는 돌무지덧널무덤과 불교로 대표된다. 돌무지덧널무덤에서 출토된 금관, 귀걸이 등은 신라를 ‘황금의 나라’로 부를 만큼 화려하고 뛰어난 세계적 금공예품이다. 신라의 꾸미개(장신구)는 금관과 허리띠를 비롯하여 관모, 관 꾸미개, 귀걸이, 목걸이, 팔찌, 반지, 신발 등이 있는데 재질이나 형태가 화려하고 다양하다. 고대 일본인들이 신라를 ‘눈부신 금, 은의 나라’라고 하였듯이 신라의 꾸미개는 대부분 금과 은으로 만들어졌다. 이 외에도 수천 개의 유리나 수정으로 만든 목걸이와 손잡이를 용무늬나 봉황무늬로 꾸민 고리자루 칼이 있다. 이러한 꾸미개는 몸을 아름답게 꾸며주는 기능 외에도 정치적,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역할을 하였다. 신라시대에 주로 사용 되었던 기법은 금속 공예품의 표면을 금속 알갱이 등을 이용해 표면에 접착하는 누금기법이었다.
고구려는 고유문화를 유지하면서도 중국과 서역, 북방의 외래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역동적이고 실용적인 문화를 만들어 냈다. 고구려 사람들은 신분에 따라 다른 모양의 관을 착용하였다. 고구려의 관인은 고깔 모양의 관에 새 깃 2개를 꽂고 금테나 은테를 섞어 돌렸다. 지안 일대에서 출토된 금동관 꾸미개는 두껍게 도금된 상태로 대게 세울 장식 가장 자리를 촘촘히 오려낸 다음 하나씩 꼬아 새의 깃털처럼 표현하고 세잎무늬 등을 맞새김해 장식하였다. 개마총 벽화에 등장하는 인물이 쓰고 있는 관 꾸미개의 형태가 이와 비슷하다. 이런 고구려의 관과 꾸미개는 금, 은제, 귀걸이와 허리띠 장식, 금동 신발 등과 함께 고대 국가 지배 계층의 신분과 권위를 나타내는 상징물이었다.
백제의 꾸미개는 주로 무령왕릉 등의 무덤에서 출토되어, 이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무역이 가장 활발했던 중국 남조와 관련된 것이나 신라, 왜와의 교류관계를 살펴볼 수 있는 유물도 있어 백제 문화의 개방성과 국제성을 잘 보여준다. 관 꾸미개나 귀걸이 등은 백제 고유의 특징을 지닌 것으로 백제 문화의 독창성을 살펴볼 수 있다. 백제의 지배층은 각종 꾸미개를 사용하였는데, 대표적인 것이 은제 관 꾸미개와 허리띠장식 등이다. 은제 관 꾸미개는 은판을 길게 오려 줄기를 만들고 꽃봉오리를 장식한 것으로 부여의 능산리고분을 비롯하여 논산, 남원 등지에서 발견된다. 백제는 관료의 등급에 따라 관과 허리띠 장식을 달리하여 관직 체계를 표시하기도 했다.
신라는 화려함, 고구려는 역동적인 느낌, 백제는 고급스러운 느낌이 포인트라고 알고 있었다. 이것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나는 지에 대해서는 단지 고등학교 시절 교과서로 보고 들은 것이 다였는데 이렇게 실제로 접하면서 어떤 점에서 화려한 건지, 어떤 기법을 통해 이것이 역동적인 느낌을 내는지 등에 대해 알 수 있었다. 역시 100번 듣는 것보다 1번 보는 것이 더 낫다는 말이 맞는 말이구나 싶었던, 이것이 나중에 백성들의 시련과 고난과 연관지어서 다시 재해석되어 전시전을 한다면 더욱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Cheer Up!
새벽에 글 올리셔서
방문합니다.
글 잘 보았습니다.
교과서로 보고 들은 것보다는
실제로 접하는 느낌이 다르겠지요.
제 창도 열고 구경하시고 좋은하루 되세요.
좋은 글 잘보고 갑니다~
이런 전통을 생활속에 좀 살렸으면 하는 맘이 있네요
늦었지만 잘보고 갑니다. 좋은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