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일기] "벌써 해고됐어요?" 의사가 놀라다

in #kr5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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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6일 마약일기

상담을 하던 정신과 병원에 갔다. 의사에게 내가 해고됐다고 말했다. 의사는 놀라워했다.

“세상에. 어떻게 그렇게 빨리 해고할 수 있어요?”
“모르겠어요. 저를 빨리 털어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도와주는 선배는 없었어요?”
“있기는 한데 많지는 않아요. 팀장은 저한테 ‘한겨레 창간 30주년 기념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너도 알지?’이런 말만 해 요. 저 때문에 기념일을 망쳐선 안되니까 빨리 회사를 나가달라는 뜻같아요. 전혀 저의 억울한 부분은 살펴봐주지를 않아요.”
“허 기자님이 제가 상담한 환자분들중 가장 빠르게 해고되시는 분 같네요.”
“그런가요.”
“네. 보통은 재판이라도 받은 다음에 해고를 하는게 보통인데.”
“회사는 창간 30주년 기념일 전에 저를 어떻게든 잘라내야 한다는 목표를 세운거 같아요,”
“복직 소송을 꼭 하세요. 이건 너무 하네요.”

의사는 차분하게,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화를 내주는 듯 했다. 이 의사의 말을 듣다보면, 내가 부당한 상황에 있다고 인지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해고되는 게 부당한 건가. 아니면, 해고는 정당한데 과정이 부당한 건가. 아니면, 징계는 당연한데 해고라는 징계의 수위에 문제가 있는 건가. 아무튼 의사도 처음 보는 상황이라며, 함께 당황해주었다. 내가 겪는 당황스러움에 함께 말을 얹어주는것 자체만으로도, 나는 치료받는다고 느껴진다.

“제가 아는 교수는 마약 투약으로 처벌받았지만 지금도 학교에서 교수로 잘 지내고 있어요. 보통은 직위해제를 하고 나서 죄질의 양태를 형사적으로 살펴본 뒤에 징계 수위를 결정하거든요. 한겨레가 너무하네요.”

의사는 계속 나를 위로하려 했다.

“상담한 분들 얘기 들어보면, 보통 마약 제공자 세명 이상을 불면 경찰이 풀어주겠다고 하는 것 같아요. 경찰 단속 실적 올리는 데 도움을 준 대가로.”

그렇구나. 그럼 나도 마약 제공자 세명 이상 불면 기소유예 처분 받을 수 있을까. 그런데 내 주변에는 지금 마약 하는 지인이 한명도 없는데. 나는 기소유예 처분도 못받는 건가. 이럴줄 알았으면 마약하는 사람들을 좀 평소에 많이 알아둘걸 그랬나. 아, 머릿 속이 복잡해진다.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이 충분히 억울하다고 판단했는지 의사는 내게 김승희 국회의원실을 찾아보라고 권했다. 그나마 국회의원들중 마약 사용자의 인권문제를 가장 신경쓰는 의원이라고 한다. 이런 의원이 있었나? 처음 듣는 이름이다. 메모를 하고 상담실을 나왔다.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련글 / 허재현 기자의 마약일기를 시작하며
https://steemit.com/drug/@repoactivist/4vbeg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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