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일기] 포르투갈은 마약이 비범죄화 되어 있다는 설명을 듣다
#2018년 6월16일 마약일기
윤현준 교수를 만나러 가는 길. 그의 이름은 처음 듣는다. 그러나 내게 ‘명예회복 하시라’고 전화를 준 사람은 이 분이 처음이다.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마약퇴치운동본부 재활상담팀장’을 오래 하셨다. 지금은 대학의 사회복지학과에서 강의를 겸하는 모양이다. 그는 나더러 서강대 앞으로 오라고 했다. 자신의 수강생들을 만나게 해주겠노라 했다.
지하철 6호선 서강대역에서 내렸다. 근처에 한겨레신문이 있는 공덕역이 있어 서강대까지 오는 것도 마음이 불편하다. 일단 선글라스를 꼈으니까 혹여라도 거리에서 날 알아보는 사람은 없겠지? 서강대 정문 쪽으로 걸어올라가자 저멀리 서있는 훤칠한 키의 중년여성이 보인다. 저분이 윤현준 교수이구나.
“어머나. 인터넷의 사진은 샤프하시던데, 살이 많이 찌셨네.”
운 교수도 나를 인터넷에서 먼저 검색해보고 나온 모양이다. 그래. 포탈 인물 정보란에는 10년 전 내가 꼬꼬마 기자였을 때의 사진이 아직도 올라가 있다. 내가 올린 것도 아닌데 그냥 포탈이 그렇게 알아서 걸어두었다. 지금 나는 그때보다 10kg 이나 더 몸무게가 나간다. 우울증을 앓으면서 식욕이 커졌고, 그게 결국 지금의 내 외모를 만들었다. 뚱뚱한 사람들을 너무 게으르다고 나무라지 말라.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근처 커피숍으로 가서 앉았다. 윤 교수는 내게 “어떻게 마약을 하게 됐는지 한번 이야기해보라”고 말했다. 온화한 큰누님 같은 표정의 윤 교수가 신뢰가 갔다. 의사 외에는 털어놓지 않았던 이야기를 제3자에게 처음으로 꺼냈다.
“만나던 친구가 있었어요. 중독자였는데 처음에는 제게 그런 이야기를 안하더라고요. 어느 순간 그 녀석이 저를 만날 때마다 피웠던 담배가 마약이 아닌지 의심하게 됐어요. 태국 친구한테 선물로 받은 담배라는 게 설명의 전부였는데. 제가 바보가 아닌데 연기 맡아보면 이게 일반적인 담배가 아니라는 건 알잖아요. 근데 그게 필로폰이라는 건 최근에서야 알았어요. 제 머리털에서 검출된 건 대마초도 아니고 필로폰이더군요.”
사람들은 그가 중독자인 줄 알았다면, 바로 그 친구랑 헤어지지 않았냐고 반문할 거다. 그게 그렇게 칼로 무자르 듯 되는 일인가. 너무나 오랜만에 찾아온 불덩이였다. 힘든 일상의 괴로움을 잊을 수 있었고, 나를 온전히 사람으로서 따뜻하게 안아주는 유일한 존재였다. 내 오락가락하는 우울증은 그 사람 덕에 치유를 받았다. 나는 마약중독자를 만난게 아니라, 사랑을 한 것이다. 후회하지만,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도, 그 후회할 사랑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순간이란 게 존재한다. 누구에게나.
“어쩜 제 예상이 하나도 틀린 게 없네요. 제가 상담해온 마약중독자들 태반이 허 기자님같이 마약을 시작하게 돼요.”
윤 교수는 진심으로 안타까워 해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상담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도 익명으로 들려주었다. 내가 한심하게 손가락질했던 그런 사람들이 다 나와 비슷한 경로를 거쳐 중독자가 되어가고, 그렇게 비난을 받았던 것이구나. 그리고 그 고통을 제대로 치유하지 못해 저렇게 자살하고 말았구나. 나도 언제가 결국 저렇게 스스로 목숨을 내려놓게 될까.
윤현준 교수에게 상담받은 어떤 이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꺼냈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너무나 바빠 매일 출근을 해야 했는데 냉장고 앞에 항상 애정이 득뿍 담긴 글귀의 메모를 남겨 놓고 출근했다고 한다. 어린 아이는 그 메모를 읽으면서 누나들과 함께 집에서 냉장고 속 음식을 꺼내먹으며 엄마를 기다렸다고 한다. 아이는 매우 유명한 사람이 되었지만 동시에 어느 순간 중독자가 되었다. 이제 그 ‘어른이 된 아이’는 하늘을 떠난 엄마 곁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계속 저를 찾아와서 상담받기를 원했는데, 마약퇴치운동본부에 계속 들락거리면 기자들이 자신을 아직 중독 상태라고 바라볼까봐 두려워서 못오겠다고 하더라고요.”
적절한 치유가 없는 상태에서, 그는 얼마나 외로워 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자살을 택한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자살을 하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중독의 고통은 유족들조차 외부에 말해주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중독문제로 고통을 받고있고, 극단적 선택의 경계에서 오가는지 우리 사회는 잘 모른다.
“허기자님. 평소에 술이라도 마셔보지 그랬어요.”
“제가 술은 몸에 잘 안받아서요.”
“그래. 술 못하는 사람들이 마약을 하는 경우 많아요.”
윤 교수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지금의 마약퇴치운동본부가 제 역할을 다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관리부처부터가 잘못 정해져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중독은 사회적 회복을 돕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사회복지의 영역에서 중독문제가 다뤄진다고 한다. 마약퇴치운동본부 관리부처는 한국에서 식약처다. 그들은 약에 대한 전문가이지 사회복지 전문가가 아니다. 윤 교수는 “중독 문제를 사회복지 부처에서 관리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미국에서 공부한 이다. 그래서 미국에서 어떻게 중독 정책이 마련되어 있는지 설명해주었다. 포르투갈에서는 이미 모든 마약 투약에 대해 비범죄화 정책을 도입하고 있다고 한다. 윤 교수는 나더러 우리 사회의 중독자들에 대한 정책을 함께 바꿔보자고 권했다. 자신이 가르치고 있는 대학원생들 앞에서 비공개 강연을 해달라고 청했다. 흔쾌히 함께 하겠다고 했다.
“허 기자님. 무슨 꿈을 꾸세요.” 윤 교수가 물었다. 요즘은 계속 한겨레에서 해고되는 순간에 대한 악몽을 꾼다. 또는 내가 해고된 이후에도 한겨레를 계속 다니는 꿈을 꾼다. 그러다 ‘아차. 나는 마약 때문에 해고된 사람이지.’ 뒤늦게 깨닫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꿈을 반복해서 꾼다. “허 기자님. 꿈 속에서 계속 싸우세요. 저항하고 욕하세요.”
물론, 한겨레만 탓할 순 없다. 한겨레가 약한 조직이라서 그렇다. 어찌 나같은 사람을 거두면서 정면으로 우리 사회에 맞서겠는가. 한겨레의 체력이 커지지 않는 이상, 나같은 중독자들은 바깥으로 튕겨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꿈 속에서라도 싸우자.
‘이건 옳은 결정이 아니야.’
※당부의 글.
안녕하세요. 허재현 기자입니다. 우리 사회는 그간 마약 문제에서만큼은 단 한번도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연재글은 마약 사용자들이 어떤 일상을 살며, 어떤 고민들에 부닥치는지 우리 사회에 소개하고자 시작한 것입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하려는 의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바람직한 마약 정책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마약 사용자들과 우리 사회가 함께 건강한 회복의 길을 걸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보려는 의도입니다. 이점 널리 혜량해주시어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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