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ndria 의 영화리뷰 후아유(Who Are You, 2002) 진실보다 진심이 통하는 법

in #kr7 years ago

[모두가 수많은 모습을 지니고 있다]

온라인과 모바일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정체를 숨길 수 있는 ‘익명성’이 강화되었다. 그에 따라 사람들은 ‘나’ 자체가 아닌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다양한 메신저와 게임에서 사람들은 ‘닉네임’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으면서 다시 태어난다. 그리고 가상 세계에서 그들은 현실과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활동한다. 여기, 매일 그러한 만들어진 세계에서 살아가는 한 남자가 있다. 의욕 충만 게임개발자 형태의 이야기, 영화 <후아유>이다.

[오프닝은 흥미를 유발하고 전개방향을 제시한다]

보통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끝나기 전 5분이고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작한 후 5분이라고 하지만, 영화에서 오프닝은 엔딩만큼이나 중요하다. 오프닝에서 흥미를 끌지 못하면 적어도 영화 중반부까지 관객들이 지루하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따라서 오프닝의 가장 첫 부분에서 해야 할 것은 정보 전달도, 인물 소개도 아닌 ‘흥미 유발’이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은 직원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모여서 정신없이 회의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관객들은 그 모습을 보며 추측해본다. 방송국 PD에 관한 이야기인가, 아니면 그냥 잠시 스쳐 지나가는 TV 화면을 위한 속임수인가? 그렇게 궁금증을 충분히 유발한 후 마침내 영화는 본론에 들어간다. 컴퓨터로 아바타를 만드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제야 관객은 이 사람들이 게임회사 직원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다음에는 그 사이에서 의견을 내고 지시하고 있는 형태의 모습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이를 보고 형태가 이 회사에서 제법 위치가 있는 인물이라는 정보를 전달받는다.
다음에 회사에서 형태가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이 나오는데 팀원들을 이끌어야 할 ‘팀장’이 다른 회사로 갔다는 대사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직책이 높은 사람이 자리를 비울 경우 앞으로의 진보에 큰 타격을 입는다. 따라서 지금 형태의 회사는 불안정한 상태이고 이것이 그의 삶, 즉 이야기의 전개방향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정보를 관객에게 전달한다.

[게임의 목적 : 사랑의 메신저]

직원들은 게임 홍보용 광고를 만들며 인터뷰를 딴다. 그 중에서 전남친과 같은 아이디를 가진 파트너를 골랐다는 여자의 인터뷰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모든 게임에는 저마다의 목적이 있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단순 전투 게임인 경우도 있고, 퀴즈를 풀며 지식을 쌓는 두뇌게임도 있다. 유저 인터뷰에서는 ‘전남친’과 ‘파트너’란 단어가 나온다. 이를 통해 관객은 이 게임의 목적은 ‘사랑’이라는 정보를 알 수 있다. 영화의 주가 되는 게임의 주제가 사랑이라면 이 영화의 장르는 무엇일까. 물론 스릴러나 공포일 수도 있겠지만 ‘로맨스’가 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이를 통해 영화는 관객에게 이 이야기의 주요 소재가 로맨스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각인시켜준다.

[로맨스의 법칙 : 우연히, 그러나 필연적으로]

형태는 게임 홍보 광고를 맡게 되고, 짝사랑하던 남자를 떠나보낸 인주는 로맨스게임을 보고 기분이 상해 악의적인 메시지를 보낸다. 인주의 친구 보영은 채팅하던 상대에게 실연을 당하고 형태의 친구는 다른 회사에서 캐스팅 제의를 받는다.
로맨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연스러운 만남이다. 자꾸만 마주쳐야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이 싹튼다. 그러나 이 때 주의할 것은 결코 인위적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억지스러운 만남은 관객에게 거부감만 일으킬 뿐이다.
그 중에서 가장 주가 되는 것이 첫 만남이다. 둘의 첫 만남이 이루어지기 전 형태는 홍보 광고를 맡게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인터뷰를 해 줄 유저가 필요해진다. 그러던 중 인주가 ‘별이’라는 닉네임으로 게임 비난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인주에 대한 것이 아바타 정보에 모두 적혀있다. 게임 홍보를 위해서는 사람들의 흥미를 이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상황에서 인주의 행동을 보았을 때, 그녀는 형태의 인터뷰 상대가 될 유저로 매우 적합하다. 그리고 인주는 관련 업체에 자신이 수족관에서 퍼포먼스 하는 것을 전달하려 한다. 그러려면 이 퍼포먼스를 ‘촬영’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형태는 인주를 인터뷰하기 위해 ‘카메라’를 가지고 찾아갔다. 우연적이지만 동시에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만남인 것이다.
노래방에서 마주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일반적으로 주인공이 술을 마시려면 크든 작든 어떠한 ‘사건’이 필요하다. 이것이 만남을 위한 것일 경우 이 사건은 주인공의 일이어서는 안 된다. 일반적으로 자신에게 술을 마시고 싶은 힘든 일이 생겼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혼자 마신다. 그러나 이렇게 각자 있다가 만나게 되는 경우 자연스러움이 덜해진다. 따라서 인위적이지 않은 만남을 위해서는 조력자가 필요하다. 조력자에게 어떤 사건이 생겨 술을 마시게 되고, 주인공이 동행하면서 서로를 만난다. 술과 관련된 만남을 적용할 때 가장 좋은 점은 일반적으로 술을 마실 때는 1차, 2차 등의 단계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1차 장소에서 두 인물을 만나게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긴장감이 덜해진다. 그러므로 가장 일상적인 2차 장소, 노래방에서 두 인물이 만나게 함으로써 영화의 재미를 더 살릴 수 있는 것이다.

[두 가지 모습을 갖게 된 그들]

형태는 게임 내에서 ‘멜로’라는 이름으로 인주와 채팅을 하고, 인주는 ‘별이’라는 이름으로 형태와 채팅을 한다.
사람들이 새로운 모습을 가질 때 대개 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것이 반영된다. 멜로는 무슨 일을 하냐는 별이의 질문에 드럼을 치는 락커라 답하고, 별이는 조직에서 칼잡이를 하고 있다 말한다. 이렇게 형태와 멜로, 별이와 인주 즉 현실과 가상 사이에 갭이 생성된다. 가상 세계에서의 만남에서 일반적으로 작용하는 한계는 언젠가는 반드시 ‘만남’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중간에 상대와 연락이 끊기는 경우는 상관이 없으나 계속 관계를 이어가는 경우 불가피하게 만나게 될 수밖에 없다. 이 때 사람들을 가장 갈등하게 하는 것은 현실 속 자신과 가상세계 속 자신의 차이이다. 가상세계 속에서 만남을 이어가면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상대에 대해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만남으로 상상이 깨지면 영원히 관계를 회복할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를 두려워하고 또 실제로 이것이 둘을 갈라놓는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처럼 형태와 인주의 가상세계 속 모습이 현실과 멀어지면서 그들이 한계, 즉 만남에 이르렀을 때 서로 갈등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는 것]

형태는 인주에게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있냐고 묻고 인주는 알 것 같다고 대답한다. 그 말을 들은 형태는 자신을 좀 알아봐달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사랑을 하면서 가장 슬픔을 느낄 때는 상대가 더 이상 나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을 때라고 한다. 오랜 시간 연애를 하다가 이별을 하게 된 커플의 이유는 ‘더 이상 서로에 대해 궁금하지 않아서’인 경우가 가장 많다. 누군가를 궁금해 한다는 건 곧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사랑을 확인하는 방법 중 하나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충족되지 않을 때 그들은 사랑에 회의감을 느낀다. 형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멜로의 모습으로 별이, 즉 인주의 속 얘기를 모두 들었고 그녀에 대해 많은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인주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 적이 없었고 인주는 그에 대해 묻지도 않았다. 형태는 인주가 자신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으면서 자신만 인주에게 관심이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인주에게, 즉 별이에게 멜로는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으로 충분한 ‘투명친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 속 모든 세상을 게임처럼]

영화를 보면 중간 중간 극의 진행에 따라 게임 퀘스트처럼 서로의 관계를 더욱 진전시킬 수 있는 지시가 나온다. 이것은 영화를 보는 관객을 게임 속 유저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실제로 관객이 컴퓨터 앞에 있는 것처럼 연출함으로써 그들이 전혀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보고 있음에도 자신도 모르게 영화 속 게임의 유저가 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형태와 인주의 관계의 진전 상황을 알리는 역할도 한다. 게임 속 퀘스트는 처음에는 시작할 준비가 되었냐는 질문으로 시작해서 둘만의 공간을 만들어라, 진짜 사랑을 시작하라 등 점점 애정도가 높아진다. 뿐만 아니라 이는 영화의 소제목 역할도 한다. 그 예로 ‘밤새 속마음을 이야기하라’는 지시가 있는데 이것은 곧 서사의 진행을 알려준다. 이러한 지시문은 영화의 서사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부분에만 등장한다. 따라서 이는 관객들에게 이야기의 방향을 안내해줄 뿐 아니라 영화의 몰입도까지 높여준다.

[그들만의 장소, 아지트]

인주는 게임 속에서 형태에게 언젠가 티티카카라는 호수에서 수영을 해보는 게 꿈이라 말하고, 그걸 들은 형태는 호수를 바탕으로 비밀장소를 만든다.
이 영화 속에서 ‘티티카카’라는 아지트는 많은 의미를 갖는다. 먼저 게임 속에 나오는 티티카카는 별이와 멜로 둘만의 공간, 즉 가상세계의 아지트이다. 그리고 후반부에 나오는 동명의 카페는 형태와 인주의 ‘현실’ 속 아지트이다. 게임 속 티티카카는 현존하지 않지만 현실 속 카페는 실제로 존재한다. 그들에게 ‘현실’은 반갑지 않은 존재이다. 따라서 게임 속 아지트와 달리 카페 티티카카는 다소 부정적인 느낌을 갖는다. 서로 만나기로 한 그들의 약속이 결국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형태가 자신이 멜로임을 밝히는 ‘현실을 보여주는’ 장소이다. 즉 카페 티티카카는 게임 속 가상세계에 빠져있던 그들에게 차가운 현실을 자각해주는 냉혹한 장소가 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또 다른 의미를 갖는 아지트가 있다. 바로 형태가 인주한테 소개해주는 장소 ‘옥상’이다. 게임 속 티티카카가 가상세계의 사랑을 느끼는 장소이고, 카페 티티카카가 현실을 담은 장소라면 이곳 옥상은 현실을 잠시 ‘도피’할 수 있게 해주는 장소이다. 옥상은 게임 속 가상 세계가 아닌 현실 장소이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그곳에서 세상을 보면 ‘가상’처럼 보인다. 따라서 이 옥상이라는 아지트는 현실세계 속에서 가상세계의 모습을 함께 느낄 수 있게 해주는 도피처인 것이다.

[음악의 역할 : 마음을 표현]

로맨스 영화에서 ‘음악’의 역할은 다양하다. 그 중에서 배경음악으로 깔릴 때와 등장인물이 직접 노래를 부를 때 그 의미가 다르다. 배경음악으로 깔릴 때에는 주로 분위기를 생성하거나 서사 전체를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인물이 직접 노래를 부를 때는 주로 ‘마음을 표현’하는 역할을 한다. 보통 직접 노래를 부를 때는 ‘내 마음을 알아줘요’나 ‘사랑해요’ 등 고백이나 단편적인 감정을 노래로 대신 표현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조금 다르다.
먼저, 서로 얼굴을 보지 않은 상태로 노래를 부른다. 보통 인물이 상대에게 노래를 부를 때는 얼굴을 직접 보고 눈을 맞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눈을 맞추기는커녕 오직 목소리만 들려주며 노래를 한다. 이렇게 서로 대면하지 않음으로써 조금 더 자유가 보장되었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인물은 어떤 노래를 부를까. 상대와 함께 있을 땐 그 사람에 대한 노래를 부른다면, 상대가 직접적으로 옆에 있지 않을 때엔 ‘나 자신’에 관한 노래를 부른다. 그래서 형태는 자신의 마음을 노래로 순차적으로 표현한다. 가장 처음 윤종신의 ‘환생’을 부르고, 긱스의 ‘짝사랑’을 부르고 마지막으로 나미의 ‘유혹하지 말아요’를 부른다. 이 곡의 제목 순서는 형태의 마음을 의식의 흐름대로 표현한 것이다. 인주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형태는 자유롭게, 주체할 수 없는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했다.

[진심 앞에서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형태는 자신이 멜로라는 ‘진실’을 밝히고 인주를 잃을 뻔했으나 진심으로 그녀를 응원하고 멋있게 생각한다는 ‘진심’을 말함으로써 그녀의 마음을 얻는다. 우리는 내가 아닌 다른 모습으로 있을 때 나에 대한 진실을 숨기곤 한다. 그리고 그 진실을 알려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두려움을 갖는다. 그러나 진정한 진심만 있다면 부끄럽게 여겼던 진실도 얼마든지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니 억지로 꾸며낸 모습이 아닌 진심을 다해 다가간다면 가상 속 모습이 아닌 ‘현실 속 나’도 충분히 행복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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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내공과 필력이 수준급이시라고 생각됩니다^^ 보트&팔로우 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팔로우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