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세계 타이틀매치

in #kr3 years ago

범죄로 보는 한국사 - 가짜 세계 타이틀매치

한국 프로복싱의 전성기는 1970년대 중반에서 80년대까지라고 할 수 있을 것 같구나. 홍수환, 유제두, 염동균, 박찬희,김성준, 김태식, 장정구, 유명우 등등의 이름을 지금도 줄줄 외는 걸 보면 아빠도 열렬한 권투팬이었다 싶다. 80년대 초반 새로운 단체 이름이 끼어들었어. IBF. 즉 국제 복싱 연맹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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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프로복싱의 양대 산맥 WBA와 WBC에 IBF가 더해진 거야. 즉 같은 체급에 세 명의 ‘세계 챔피언’이 존제하게 된 거지. ‘세계 챔피언’에 목말라 있던 한국 복싱계는 초창기 IBF에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그리고 그 이전까지는 그렇게도 험난하였던 챔피언 고지에 뻔질나게 태극기가 꽂히기 시작했다. 심지어 한국 선수들끼리 세계 타이틀전을 벌이는 진귀한 풍경도 여러 번 펼쳐졌으며 챔피언 벨트의 값어치는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돼 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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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여담을 덧대면, 담뱃불 붙이기 위해서는 으례 성냥을 사용했고, 은빛으로 빛나는 미제 라이터라면 뇌물성 선물로도 향용 이용되던 시절, 혜성과 같이 나타난 1회용 라이터가 있었다. ‘불티나’라는 상표였어. IMF를 전후하여 중국산 싸구려의 인해전술에 침몰하고 말았던 불티나의 로고는 한 권투 선수의 트렁크에 씌어진 반짝이 글씨로 아빠 기억의 박물관 한 켠에 큼직하게 걸려 있다. 그 트렁크를 입었던 이는 IBF 플라이급 챔피언 권순천이었어.

IBF 플라이급 챔피언이 돼 기세 좋게 3차 방어를 성공한 그는 머나먼 나라 콜롬비아에서 온 상대와 4차 방어전을 치르게 돼. 상대의 이름은 알베르토 카스트로. 한 번도 진 적이 없는데다 KO율도 70%를 넘었던 하드 펀처라고 했다. 하지만 막상 경기는 지루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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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 특유의 끈끈함은 있었지만 커리어다운 파괴력은 간데없이 링 사이드를 빙글빙글 돌기만 하는 카스트로를 권순천이 헉헉대고 따라붙어 주먹을 날리는 분위기였지. 그러다가 경기 종반 권순천의 회심의 레프트가 카스트로의 턱에 꽂혔고 카스트로는 맥없이 무릎을 꿇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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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가 끝난 뒤 인터뷰에서 권순천이 까다로운 선수였노라며 카스트로를 평한 건 그렇다 치는데 프로모터 전호연씨가 극구 카스트로를 칭찬하는 건 좀 귀에 거슬렸다. 그래도 자신에게 패배한 상대를 칭찬하는 승자의 미덕을 과시하는 것이려니 했는데 문제는 매우 엉뚱한 곳에서 불거져서 네이팜탄처럼 터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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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며칠 뒤 중남미 현지에서 외신이 날아들었다. “한국에서 타이틀전을 치뤘다는 IBF 셰계 랭커 알베르토 카스트로는 한국에 간 적이 없다.” 아니 그럼 한국에 와서 시합도 하고 훌륭한 복서라는 칭찬도 받은 알베르토 카스트로는 어디 사는 누구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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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이 연이어 날아왔다. “한국에서 시합한 선수는 카라발로 플로레스고 진짜 카스트로는 황당해하고 있다..” 즉 가짜 도전자를 상대로 세계 타이틀 매치가 벌어지고 KBS가 중계하고 수천 명이 표를 사고 수백만 명이 경기를 지켜보며 열광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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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경기의 프로모터였던 극동프로모션 대표 전호연씨나 가짜 혐의를 받은 선수와 그 매니저 등등은 입을 모아 권순천의 상대가 진짜 ‘알베르토 카스트로’라고 우겼지만 소용이 없었다. 진짜 알베르토 카스트로 측이 WBA 등 국제 기구에 정식 항의를 제기한 마당에 버틸 수도 없었지. 결국 한국에 온 ‘알베르토 카스트로’가 입을 열었다.

“저는 카라바요 플로레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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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호연 측은 자신이 콜롬비아측에 속았다고 주장했고 이는 상당 부분 사실로 밝혀졌다. 다른 선수와의 시합 때문에 한국에 왔던 페루인 메니저 토레스는 권순천과 카스트로와의 대전 계약을 맺고 돌아갔는데 알베르토 카스트로 측은 권순천의 대결에서 승산이 없고 대전료가 싸다는 이유로 대전을 거부해 버렸어.

그러자 토레스는 가짜 도전자를 내세우기로 한다. “진짜 카스트로의 사촌형인 아만시오 카스트로를 끌어들여 선수 경력증을 가짜로 만들고 알베르토 카스트로의 선수 자격증에 플로레스 선수의 사진을 바꿔 붙여 진짜 카스트로 선수인 것처럼 한국 권투 위원회에 제출”(조선일보 1984년 9월 16일)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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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프로복싱의 대부라고까지 불리던 전호연은 남미에서 온 복싱 사기단(?)과 더불어 구속된다.플로레스와 매니저 등은 곧 풀려나 추방되는 것으로 마무리됐지만 전호연은 근 1년 동안의 옥살이를 경험해야 했지. 출감 후 그는 자신은 가짜 도전자임을 까맣게 몰랐고 “가짜 복서 사건으로 매스컴 등 전국이 시끄러우니까 청와대에서 빨리 문제를 해결하라고 지시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나를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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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한 면도 없지 않았겠지만 아빠는 그에게도 분명한 책임이 있었다고 생각해. 경기가 열리기 전 이 엽기적인 사기극을 중단시킬 기회가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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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카스트로 아니 플로레스가 가지고 온 여권에는 도전자 알베르토 카스트로가 아닌 버젓이 다른 이름이 찍혀 있었다. 이 사실은 중계 주관 방송사인 KBS도 감지했고 프로모터 전호연씨도 알고 있었으며 경기를 감독하고 주최하는 한국 권투 위원회도 파악하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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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카스트로’의 프로모터는 진짜 카스트로라고 바득바득 우겼고 한국권투위원회와 전호연 프로모터는 그 주장의 진실성을 캐기보다는 당장 다가온 시합과 이미 팔려나간 입장권과 유사시 발생할 손익계산서에 더 신경을 썼던 거야.
한국방송공사와 한국 권투 위원회가 “우리는 안하려고 했는데 방송 중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했다.”와 “우리는 안하려고 했는데 한국 권투 위원회가 보증다고 했다.”의 구차한 공방전을 벌이는 와중에 전호연 프로모터는 “인생은 노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운이 따라야 한다.”(중앙일보 1984년 12월 24일)는 한탄 속에 감옥으로 갔다.

그런데 그가 정말 운만 나빴는지는 의심의 여지가 많아. 그는 1976년 9윌11일 동양 라이트급 타이틀매치를 개최하면서 가짜 필리핀 도전자를 내세웠다가 진짜의 얼굴을 알고 있던 관중이 고발해 경찰 수사를 받은 일이 있었고, 가짜 도전자 사태가 불거진 뒤에는 국내로 불러들인 선수들의 대전료를 가로채 사기 혐의로 기소 중지 상태에 있었음이 밝혀졌으니까. 가짜 도전자 사태는 그의 불운이라기보다는 탐욕과 관성의 결과였을 가능성이 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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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는 엉뚱한 쪽으로 돌아갔다. 한때 열렬히 IBF에 올인하며 대량 생산된 챔피언들의 시합 중계로를 알뜰히 챙기던 한국권투위원회가 180도 태도를 바꿔 IBF 왕따 작전에 나선 것이다. 그 방법은 실로 졸렬했다. 국내에서 IBF 시합을 금지해 버린 거야. (1986.1.21. 동아일보) 정부의 외화 절감 요구에 부응한다는 명분이었지만 WBC와 WBA의 챔피언 벨트를 두르고 있던 장정구와 유명우에계는 이 조처가 적용되지 않는 IBF 표적 조처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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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F 타이틀전이라면 도전도, 방어전도 국내에서 치를 수가 없었다. 피땀흘려 샌드백만 두들긴 공으로 조금 볼품이 없긴 하지만 한국 권투 위원회가 인증한 세계 기구의 챔피언 벨트를 두르고 있던 선수들은 창졸간에 국내에서 타이틀전을 할 자격이 없는 수준 떨어지는 얼치기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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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IBF를 만든 것도 아니었고 그들이 그를 지지한 것도 아니었건만 그 복서들은 한동안 국내에서는 시합을 할 수 없었다. 사기는 왕서방이 치고 열심히 재주 넘은 곰들이 매를 맞게 된 상황이었다고나 할까. 밤죄를 공모했거나, 또는 그에 놀아난 ‘전문가’, 확인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감독기관과 언론사, 뭔가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눈앞의 손해를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의 합동 범죄는 우리 현대사에서 지천으로 많았지만 ‘가짜 세계 타이틀매치’는 그 중 높다란 검은 별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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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ts men boxing. Who's gonna win. It's the strongest one with target ind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