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주간의 공군 훈련소 일기-1주차,2주차

in #kr6 years ago

사실 훈련소 수료는 예전에 했지만 훈련소 때 썼던 일기를 깜빡하고 있었다.
그러다 지금 잠깐 1박2일 휴가 나와서 생각 난 김에 써보려고 한다.

(자세한 기수나 입대 일자는 밝히기 조금 그래서 밝히지 않고 쓰겠습니다.)

(겨울에 입대해서 추웠습니다.)

-1주차-

1일차
오지 않을 것 같던 입대날이 되었고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앞뒤 양옆 빡빡이들 역시 믿기지 않는 표정들이다.
인터넷에서 처음 1주차는 대기하는 시간이라는 걸 봤는데 역시나...
양반자세로 대기하는데 다리가 너무 아프다. 그런데 빨간 모자 쓴 교관, 소대장들이 쳐다보고 있어 다리를 풀 수도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분명히 여기 도착하면서도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내가 딱 연병장에 모일 때 엄마는 참아왔던 울음을 터트렸고 아마 그때부터 잘못됐을거다.
기나긴 대기 시간이 지나고 사회의 물품들을 택배 박스에 넣기 시작했다. 다 끝나고 생활관에 들어와 어색한 공기 속에 인사를 했다.

2일차
오늘 역시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정신없이 이불 정리하고 준비해서 나가면 기다리고 밥먹고 기다리고 피 뽑고 기다리고..그러다 보니 밤이었다. 그 당시로 보면 시간이 정말 안 가지만 하루를 기점으로 보면 어느새 밤이 돼 있다. 그렇지만 아직 이틀 째... 6주가 얼마나 긴지 몸소 느낀다.
사실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내가 정말 이게 끝나면 이등병이 되는건가? 이거 끝나면 집에 갈 것만 같다.
체감 상 4주차는 된 것 같은 이틀 째 밤. 오늘도 6초 같은 7시간을 잔다.

3일차
기다긴 대기 시간이 지나고 우리 소대 33번까지 불침범이라고 했다. 나는 8번이었고, 2시~3시 불침번에 서게 되었다.
11시에 조금 뒤척이다 잠들었는데 갑자기 불침번 교대 시간이라 해서 정신없이 나갔다. 3층 화장실 앞에서 나 포함 두명이 서서 무섭진 않았다. 대신 지루했다. 아직 본지 이틀 밖에 안 된 사람과 할 얘기도 없는데..
긴긴 시간이 지나고 방에 들어와 누웠는데 코고는 훈련병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 했다.

4일차
오늘 저녁에 종교 소개 시간이 있었는데 진짜 너무 재미있었다. 2시간 동안 실컷 웃었다. 빨리 일요일 종교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

5일차
예방접종을 받는데 (계절 독감, 파상풍) 양 옆에서 한 번에 주사를 놨다. 진짜 놀랐다.
그리고 대망의 스님컷 시간이 있었다. 귀향 대상자들(건강상의 이유로 집에 돌려보내지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모두가 스님이 된다. 진짜 1미리로 머리를 밀린다. 바리깡이 이렇게 아픈지 몰랐다. 살살 좀 해주지ㅠㅠㅠ
방에 돌아와 서로의 머리를 보며 실컷 웃었고, 형광등이 머리에 비춰지고 엄청 따뜻했다. 문득 머리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또 보금품을 받았다.(전에도 한 번 받았지만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드디어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ㅎ.ㅎ

6일차
오늘부터 갑자기 조교님들과 소대장 님들이 예민예민 옆매를 먹고 예민파티를 벌였다. 강당에 우리를 다 모아놓고 갑자기 손가락으로 어느 부분을 가리킨다. 그리고 관등성명이 나오지 않으면 바로 얼차려.. 진짜 하루 같은 한 시간 동안 계속 되었다. 다행히 난 한 번도 얼차려 하지 않았다. ㅋ.ㅋ
내일은 드디어 일요일! 종교 행사가 있는 날이다. 훈련소에서는 난 절대 종교가 없어 하는 사람도 어쩔 수 없다. 이 시간만이 기다려진다. 물론 우리는 전 기수들과 같이 종교 활동을 해서 놀림 받을 게 뻔하지만 기대되는 마음은 감출 수 없다.
아! 여기 별 진짜 많다. 어제는 별똥별도 봤다.

7일차
종교행사는 정확히 생각보다 5백3십2만배 더 재미있었다. 전테 율동은 네크로멘서를 떠올리게 했다. 목사님이 부두술사가 되어 우리 전체를 조종하는 광경은 직접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물론 전 기수들이 우리를 놀리는 건(왜냐면 이 기수들은 수료가 1주일 남았기에....)불가피했지만...ㅎ
그렇게 1분 같은 2시간이 훌쩍 지나고 생활관에 복귀해 총기를 처음 들어봤다. 묵직했다. 게임으로만 보던, 게임에서 조차 기본 총이라고 쓰지 않던 M16A1을 직접 보니 생각보다 예쁘고 무거웠다.
내일은 입단식을 한다고 하는데 부디 무사히 넘어가길 빈다.(오늘도 얼차려를 피할 수 없었기에...)

-2주차-

8일차
큰걸음 만든 사람 나와라. 지금이라도 나와서 사과하면 봐줄게 진짜.
어깨 빠질 것 같다. 여태까지 살면서 내가 했던 제일 미련한 걸음걸이다. 팔을 어깨보다 높이 치란다. 그리고 이걸 일주일 동안 한단다...맘에 안 들면 더 길게 하고..에효..
본격적으로 훈련이 시작되니 시간이 너무 없다. 빨래하고 씻고 편지 쓰고 일기 쓰면 시간이 부족하다.. 그리고 아침엔 씻지도 못 한다.
맘대로 씻지도 못 하고 물도, 화장실도, 다른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하지 못 한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임과 동시에 미련한 동물이다. 저번주에 대기 할 때는 뭐라도 했으면...했는데 막상 그 '무엇'이 시작되니 저번주가 낫다..
저녁엔 팥빙수가 나왔는데 왓더! 이렇게 맛있을 수가..
그리고 여기 부산우유가 너무 많이 나온다. 아니 여기는 진주인데 왜 부산우유가 이렇게 맨날 나오냐

9일차
진짜 큰걸음 만든 사람 불러다가 잠 안 재우고 일주일 내내 큰 걸음만 걷게 하고 싶다.
그리고 오늘 대망의 군대리아가 나왔는데 너무 맛있었다. 맨날 군대리아만 나왔으면 좋겠다.
오늘은 시간이 너무 없어서 이 정도 밖에 쓸 수가 없다.

10일차
D-30!
하루를 기점으로 보면 시간이 정말 빠르다. 그런데 6주가 정말 미치게 안 간다. 벌써 10일이나 지나긴 했지만...후
아 그리고 오늘 급양 도우미에 차출 됐다. 정확히 말하면 그냥 끌려갔다. 5시에 수업이(훈련이) 끝나고 갑자기 원래 먹던 급식실이 아닌 다른 급식실로 가서 뭐지? 웬일이지? 웬일로 5시에 여기서 먹지? 했더니 급양 도우미였다. 까라면 까라더니 조교를 까버리고 싶었다. 애초에 미리 말해주면 어디 덧나나? 진짜 노예의 기분이 이런 기분이구나...몸소 느낀다.
그래도 난 빡센건 아니었다. 외곽 근무 였다.(급식실 밖에서 박스를 정리하거나 쓰레기를 정리하는데 그날 튀김이 아니면 완전 놀자판이다.)

11일차
D-앞자리가 2가 되었다. 오늘은 굉장히 빡셌다. 총검술을 배웠는데 총검술이 아니라 그냥 얼차려였다. 3시간 넘에 모래밭에서 구르니 온 몸이 흙범벅이 되었다.
그러고보니 요즘 부산우유가 안 나온다. 전 기수들 이제 수료한다고 맛있는거 주나보다. 진짜 인생 바꾸고 싶다.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으니 변비가 생겼다. 원래 변비에 걸려본 적이 절대 앖는데 너무 고통스럽다. 변배 개극혐. 군대 개극혐.
오늘 드디어 그때 싼 소포를 보냈다. 그리고 오늘도 불침번이란다. 에라이 시발

12일차
오늘 쓸 말 진짜 많다.
새벽 3시~4시 불침번을 하고 진짜 아침에 간신히 일어났다. 너무 피곤했다. 오늘 아침부터 갑자기 뜀걸음이 1.5km에서 3km가 되었다. 두 배가 되니 좀 힘들었다.
아침을 먹으러 가니 수료식 하는 전 기수들을 마주쳤다. 인생 바꿔주세요 제발....아침은 해물비빔소스였는데 세상에 이런 맛은 처음 먹어본다. 맛있는 척하는 굉장히 맛 없는 음식이다.
오전엔 세탁기를 돌렸는데 갑자기 자취할 때 햇살이 비치며 빨래를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비중을 두지 않았던 일상의 기억들이 물 밀 듯 떠올라 울적해졌다. 이래서 향수병이 걸리는건가?
뭔가 겪어 본 사람만 알 것 이다.
오후엔 체력테스트가 있었다. 악으로 깡으로 달려 간신히 2급을 받았다. 특급은...사람이 아닌 듯.
점심은 갈비찜이었는데 이렇게 맛있을 수가...갈비찜 사랑해.
저녁엔 또 급양도우미 했다. 제발 좀;;;
무엇보다 현관에 먹을 거 쌓아두지 좀 마라. 저번엔 콜라를 한 가득 쌓아두더니 이번엔 프링글스랑 트윅스를 떡하니 쌓아뒀다. 주지도 않을거면서 왜 이러냐 우리한테 개빡치네 진짜 휴가나가면 트윅스 10개 한입씩 먹고 버린다. 개같은 훈련소

13일차
오늘 원래 아침 점호 실내에서 한다고 하고 밖에서 하길래 개빡칠뻔했다가 뜀걸음 안 한다해서 개꿀~~
오전엔 화생방 이론 교육 들었는데 원래 이런거 재밌어해서 그런지 시간이 훌쩍 갔다. 점심먹고 헌혈차 와서 헌혈했는데 몽쉘3개와 포카리는 진짜...반칙이다. 너무 맛있잖아. 몽쉘 진짜 사랑해.
그리고 드디어 오늘 처음으로 효전화했다. 양옆에서 울고 난리나고 나도 부모님 목소리 듣자마자 살짝 울 뻔 했지만 참아냈다. 아쉬운건 아빠가 엄마랑 같이 없었다는 것... 그래서 다음주 주말엔 아빠한테 전화하기로 했다. 제발 다음주엔 같이 있기를 바라며...
저녁먹기 전까진 자습하고 밥먹고 수업듣고 샤워했다. 내일 감미품(간식)으로 3시!에 라면!이 나온단다! 으아ㅏㅏㅏㅏㅏ빨리 주세요.
그리고 오늘 단체로 쿠사리 먹었다. 뭐 헌혈하고 난 뒤에 한 명이 응급수진을 갔단다. 이게 왜 우리 잘못이냐? 우리가 왜 혼나냐 이걸로 도대체가 그 사람이 아픈게 우리 죄냐 우린 헌혈하래서 헌혈했고 오히려 헌혈하는 사람 적다고 계속 방송 때려놓고; 애초에 방송을 하질 말던가.
다시금 느끼지만 군대는 말이 안 통한다.

14일차
아침 5시 30분.
원래 기상시간보다 30분 일찍 불침번 말번이 갑자기 우리 생활관을 깨웠다. 급양 도우미란다. 진짜 조교들 다 집합. 장난해!??!? 아니 제발..미리 알려주면 어디가 덧나냐. 왜 자꾸...당일 날 갑자기 이러는데...
오늘은 종교참석 있는 날이니 예수님의 이름으로 봐준다.
종교 참석 가는데 비가와서 다 같이 우의를 쓰고 갔다. 우의에선 3년 동안 신고 안 빨은 발냄새가 났다. 다 같이 우의를 입고 움직이니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오늘 종교 참석은 특히 재미있었다. 생활관 사람들과 친해져 다 같이 앉았고, 편지를 받았으니 말이다ㅎㅎ 근데 편지는 특기학교에서 준다고 해서 3번 넘게 정독했다.
또 갑자기 불려가서 강당청소했다. 아 진짜 미리 좀 알려줘...
3시 30분엔 라면을 준다더니 쌀국수 비빔면이 나왔다. 순간 갔다 버리고 싶었지만 밥 말고 다른 걸 먹는게 얼마만인가 너무 좋아서 한 입 딱 입에 넣는 순간 방송에서 면에 이상이 있으니 먹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웬걸..우리 방은 물을 빨리 받아서 반 이상이 다 먹었는걸 더군다나 나도 배고파서 그냥 먹었는걸...ㅎ
갑자기 어이가 없었다ㅋㅋㅋㅋㅋㅋㅋ상한걸 주냐 아무리 그래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생활관 사람들끼리 이거 러시안 룰렛이다. 조만간 한 명 식중독 걸린다. 하며 오랜만에 깔깔 웃었다.

쓰다가 급히 나가봐야 해서 3주차는 곧 쓰겠습니다.

Sort:  

Congratulations @seop-e! You have completed some achievement on Steemit and have been rewarded with new badge(s) :

You got your First payout

Click on the badge to view your Board of Honor.
If you no longer want to receive notifications, reply to this comment with the word STOP

To support your work, I also upvoted your post!

Do you like SteemitBoard's project? Then Vote for its witness and get one more aw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