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글쓰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in #kr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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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사춘기의 질풍이 한창이던 열 다섯 중학교 시절의 봄,
이렇게 시작하는 첫 연애편지를 쓴 것 같습니다.

몇 번을 망설인 끝에 고른 하늘색 비행기가 그려진 편지지에 그 나이 또래에서 유행하던 자음을 크게 쓰는 글씨체로 또박또박 눌러쓴 열 서너줄 남짓의 어설픈 고백 글이었지요.

내용이라는 게,
친구들이 마실 우유를 가져오는 체육부장의 역할을 맡아 매일 아침 우유박스를 받으러 가는 길에 본 너랑 친해지고 싶으니 언제 시간 되면 같이 롤러스케이트나 타러 가자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이야기였습니다.

며칠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 답장과, 그 아이의 반 우유 담당이 바뀐걸로 첫 연애편지가 처참하게 ‘까였다’는 걸 알 수 있었지요..

그 아련한 아픈 경험때문이었는지,
그 이후로 별로 글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적힌대로 외워야 하는 것들로 시험을 쳐서 대학에 가고,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주 임무였던 군 생활을 보내고,
글쓰기와 아주 먼 일을 밥벌이로 삼으면서
점점 글쓰기와 멀어진 것 같습니다.

나이가 든 다음에도,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스토리에 적응하지 못한 이유도
이런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그러던 제가 조금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마흔이 된 올 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의 절반쯤을 살아오면서
내가 생각해 온 것들,
생각하고 있는 것들,
생각해 나아가야 할 것들에 대한 기록이 조금은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록의 방법을 찾다 만난 것이 바로 ‘스팀잇’입니다.

제가 이 곳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분들이 단점으로 지적하기도 하는,
일주일이 지나면 수정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때 그때에 느끼는 생각과 감정들이,
일주일이 지나면 화석처럼 굳어져 더이상 변하지 않을테니,
시간이 지나고 돌아봐도 그 때 그 모습 그대로 온전히 남아있을 거라는 기대였습니다.

이제 막 열흘이 지난 시점에서,

스팀잇을 통해 많은 분들의 글을 만납니다.

그리고,
너무나 다양한 분야에서 너무나 다양한 훌륭한 글들을 만납니다.

보팅 하나, 댓글 하나로는 그 가치를 다 할수 없늘 정도로 수준 높고, 아름답고, 마음을 울리는 글들을 만나면서 쓰는 즐거움보다 읽는 즐거움을 더 느끼는 요즘이기도 합니다.

좋은 글과 함께할 수 있는 오늘이..

문득..
감사한 저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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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안쓰셨다고 하나 꽤 감성적인글입니다ㅋ

두서 없는 끄적임 수준입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