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오늘 회사 그만둡니다 2
"어떻게 살 것인가?" 언제인가부터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다. 긴 시간 고민 끝에 답을 찾았다. "'어떻게' 살고 싶지 않다"였다. 이제 안다. 내가 어떻게 살고 싶다고 생각한들 그리 살아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생은 언제나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우연의 연속이니까. 이제 거창하게 ‘어떻게 살아야 하나?’를 고민하는 대신 그냥 오늘을 잘 살고 싶다. 참 많은 계획을 세우며 살아왔다. 물론 그 계획 때문에 얻은 것도 많고, 나름 성취를 이룬 것도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며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정작 소중한 하루는 놓치고 산 적이 내 인생의 대부분이었다.
중학교 때는 좋은 고등학교를 가야 한다고 생각했고, 고등학교 때는 좋은 대학을, 그리고 좋은 직장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 질문에 늘 답이 있었다. 하지만 그 답은 나의 답이 아니었다. 부모가, 사회가 원하는 답이었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알게 되었다. 정작 나는 오늘을 산 적이 없다는 그 불편한 진실. 내일의 목적과 목표를 향해 오늘의 삶은 늘 내일을 위해 저당 잡힌 채 살아왔던 것을 부정할 수 없었다. 오늘의 행복은 늘 유예되어야만 하는 대상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어른이 되었다. 정작 오늘을 제대로 한번 살아보지도 못한 채 의무로만 가득 찬 오늘을 꾸역꾸역 살아내어야만 하는 불쌍한 어른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나름 잘 살고 있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내었다. 자신이 지난 온 삶을 부정하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으니까.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좋은 여자를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고 아이를 갖게 되었다. 대부분의 아버지가 그렇듯 가장이 된다는 것은 꽤나 무거운 짐이었음을 가장이 되고 난 이후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일까? 직장에서 무던히도 열심히 했다. 늘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보다 뒤처질 까봐. 가장의 의무를 충실히 해내지 못하게 될까봐 불안했다. 그래서 열심히 했다. 꽤나 열심히 해서 인지 운이 좋아서 인지 직장에서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거진 1년 동안 국내와 세계를 돌며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고민하지 않았다. 아니 기뻤다. 나름 회사에서 자리도 잡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회사에서 나를 인정해주고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를 부러워하는 동료들의 눈빛과 격려에서 나는 더욱 확신이 섰다. 그 시절 나는 그렇게 나의 삶의 방향성에 대해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한 달을 온전히 세계를 돌아다녔다. 세계 방방곡곡 많이도 돌아다녔다. 지금 생각해도 그것은 내게 둘도 없는 경험이었다. 일을 할 때 성취감은 물론이고 나의 좁은 견해를 폭넓게 해주는 기회였으니 말이다. 그렇게 한 달 간의 출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다행히도 아들은 나를 웃으며 반겨주었다. 긴 출장을 갔다 와서인지 출장을 다녀와서도 며칠을 거의 밤을 세워야 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그리고 또 한 달은 밀린 업무 때문에 정신없이 보냈다. 그러던 일요일이었다. 아들이 아침에 일어나서 나에게 걸어 오는데 너무 많이 커버렸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 ‘많이 컸네’ 라는 생각보다, ‘내가 못 본 아들의 몇 달은 이제 영원히 볼 수 없는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냥 갑자기 아들 녀석의 성장을 같이 해주지 못함이 너무 안타깝게 느껴졌다. 아마 그때 스스로의 모순을 희미하게나마 느꼈나 보다. 모든 월급쟁이가 겪는, 가족을 위해 일을 한다면서 정작 가족들과 같이 할 시간이 너무 없었던 상황에서 오는 그 모순 말이다.
그 희미한 모순으로 깨달았다. 내가 어리석었음을. 나는 여전히 오늘을 살지 못하는 사람이었던 게다. 내일을 위해 정작 소중한 오늘을 저당 잡힌 채 살고 있었다. 직장에서 성취와 성장은 이루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정작 오늘을 살고 있지는 못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다 가족들을 위해 열심히 하는 거야’라는 비겁한 변명으로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살았다. 심지어 직장 안에서 성장과 성취가 나를 위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어 버렸을 때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직장에서 했던 노력들은 스스로의 성장이나 성취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불안하지 않으려고 뒤처지지 않으려고 하는 겁 많은 어느 가장의 발버둥 같은 것이었다.
나는 이제 오늘을 살고 싶다. 오늘 못 본 아들 녀석의 얼굴은 이제 영원히 볼 수 없는 것이고, 그 미소를 보며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그 뜨거운 행복은 영원히 느끼지 못하는 것이니까. 나는 기어이 오늘을 살아야겠다. ‘거창하게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기 전에 나는 그저 오늘을 살아내야겠다. 하루는 작은 인생이고 하루를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사람이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없는 노릇이니까. 진정 고민해야 할 질문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는 것이 아닐까?’가 아니라 ‘내일 해도 되는 일을 기어이 오늘 하며 사는 것은 아닐까?’이다. 바로 오늘 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고 행복한 일을 하며 살고 싶다. 그리 살고 싶어 나는 회사를 그만둔다.
@위로해
사실은 경험자로써 새로운 여정에 대한 축하를 드리고 싶습니다ㅡ 화이팅
맞아요 ㅠㅠ 모든 아빠들의 고민 ㅠ.ㅠ...힘내세요!
모든 아빠들의 고민 공감합니다. ㅠ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sindorimspinoza 님 용기에 박수를 보냅니다.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잔아요!!!
팔로 꾸욱~❤
작은 행복에 만족하며 살 수 있는 삶
작은 행복에 만족 할 수 있는 마음
작은 행복이 모여 이루어지는 삶의 여유
나도
그것이 옳다고 알지만
소중하다는 걸 알지만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용기가 없다는게
슬프네요..
실천하실 수 있는 용기가 부럽습니다
부모의 무게는 모르지만, 오늘을 살아내고 싶다는건 이해가 갑니다. 잘 읽었어요
요즘 워라밸이 중요해지는것 같아요. 저도 그래서 회사 월급이 좀 적더라도 야근 없는 회사에서 8년째 다니고 있네요. 아이가 어릴 수록 부모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정말 소중한것 같아요. 아이가 초등학교 고학년만 되도 부모와 함께 시간이 줄어들고 그땐 친해지려고해도 늦는것 같아요. 생활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행복과 만족도는 달라지는것 같아요. 힘내세요! ^^;
저도 회사를 퇴사한지 4개월이 지났네요.
어자피 조직내에서 필요없어 버려질꺼라면 스스로 나오는게 더 좋은선택일꺼라 생각하고 나오고 몸은 편해졌지만 마음은 여전히 편치만은 않습니다.
회사라는 조직 없이도 자생력을 기르는것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아요 ㅠ
팔로 & 보팅하고 갑니다. 앞으로 자주 소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