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MI 플레이리스트 / 오래된 노래
후각은 사람의 추억을 가장 잘 상기시켜 주는 감각이라고 한다.
낡은 크래파스의 냄새, 학교 복도의 낡은 나무 냄새, 철봉의 벗겨진 패인트부분을 손으로 쓸었을 때 나는 아릿한 쇠의 냄새를 맡으면 아련하게 추억에 빠지는 느낌이 들곤한다.
나는 후각이 아닌 청각에 추억을 보관하기를 좋아한다, 음악속에 시간을 담는다
오타루 오르골당에서 산 오르골을 뜯지도 않고 그대로 한국 집에 보관해 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오로지 그 소리속에는 일본 '홋카이도'의 감정만을 담고싶어서
노래를 들을 때 나는 그 노래를 지겹도록 계속, 계속, 계속 듣는다 그럼 다음에 그 노래를 들을 때 그 노래 자체가 아니라 그 노래를 듣던 그때의 나를 듣는 것 같은 아련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오늘의 노래는 오래된 노래
사실 대학교 들어오면서 부터 정말 좋아해서 아주 자주 듣지는 않았지만 꾸준히 노래방에 가면 부르는 내 18번 곡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잘 듣지도 부르지도 못한다
이 곡에 있는 내 시간은 대학교 2학년의 봄
밴드부를 하던 나는 나름 2학년이 되었고 또 부회장을 맡게 되면서 의견을 많이 내는 동아리 내 열혈부원이었다.
5월에 진행할 학교축제 대동제에서 무슨 노래를 할까 하는 회의에서 가장 먼저 뽑힌 곡
보컬은 동아리 후배이자, 같은 과 후배였던 신입생이 맡아줬고, 나는 리듬기타를, 일렉 솔로는 다른 기타 선배가 맡아주셨었다 드럼은 곧 군대를 가야했던 친구가, 베이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친구이자 동아리 회장이.
사실 이 곡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기타 선배는 그냥 대학 들어와서 알게 된 동아리 선배에 불과했지만 연습을 하고, 매일 집에 같이가고, 또 같이 동아리 하던 친구들이 괜히 계속 분위기를 몰아가서 그랬던지 그 선배를 좋아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 곡의 일렉기타 솔로부분은 꽤나 어려웠는데, 그래서 나는 그 선배와 첫 카톡을 할 수 있었다.
1년을 같이 동아리 활동 하면서 한번도 개인적으로 연락이 온적이 없었는데 곡이 어렵다며 온 첫 연락에 괜히 두근두근했던 기억이 있다
1학년 때 같이 활동하던 친구들이 3명이나 그 다음학기 휴학하고 군대를 가야했어서 우리는 공연 전 작게 우리끼리 모여 광안리로 여행을 가기도 했고 광안리에서 당구도 치고 바닷가에서 사진도 찍고 놀다가 다음날 갑자기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학교에서 다시 합주를 하곤 했다.
광안리 작은 엠티, 그날도 우리는 오래된 노래를 연주했지
스텐딩에그의 노래도 좋았지만 그때 그 분위기에 취해버렸었는지 후배의 목소리로 듣던 오래된 노래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스텐딩에그의 오래된 노래를 잘 안듣는다
들으면 들을수록 무대 위에서 우리가 만들었던 소리가 스텐딩에그의 노래에 묻혀 잊어져버리는 기분이라
지금은 그 후배도 군대에 가버렸고 동아리란게 특성상 시간이 지나면 잘 안만나게 되지만 이 노래를 불러줬던 후배는 내 과 후배이기도 하니깐, 전역하고 만난다면 이 곡을 불러달라고 부탁하고 싶다ㅋㅋㅋㅋ
부담스러워하겠지
노래 한 곡에 그 때 그 사람들이 한사람 한사람 담겨있다
이렇게 쓰고 보니깐 나를 아는 사람이 이 글을 안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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