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뒷모습이 슬픈 남자

in #kr6 years ago

b13476c7f8774c3fb9a8517de482cf77.jpg
(출처 : 운정 홈페이지)

오늘 오전 JP가 별세했다고 한다. 향년 92세.. 천수를 누렸다고 할 수 있지만 그의 인생은 파란만장했다. 그는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과 더불어 3김 시대를 구가했다. 정치력으로도 김대중, 김영삼과 더불어 당대의 정치 9단으로 불리며 어깨를 나란히 했다. 하지만 그는 3김 중 유일하게 2인자에 머물렀다. 인정 받는 정치인이었지만 그는 끝내 최고권력자의 자리에는 오르지 못했다. 그래서 그의 뒷모습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아쉬움이 느껴진다. 그 역시 끝내 떨쳐버리지 못한 미련을 안고 이 세상을 등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1949년 육사 8기로 입교했다. 그해 소위로 임관했고 육군본부 정보국에 배속 받았는데 이곳에서 그의 인생을 바꾸어놓을 인물을 만나게 된다.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나는 이 만남이 이후 그의 정치인생 중 상당 부분을 결정해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에게 박정희는 어떤 존재였을까?

흔히 1인자의 유전자와 2인자의 유전자는 다르다고 한다. 그런 유전자가 있을 리 없지만 나는 이 프레임은 유전자 만큼이나 강력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눈 앞에 권력지향적인 인물, 특히 나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나타났을 때 자신의 포지션을 정해야 할 필요가 생긴다. 이때 숨길 발톱이 있느냐가 이 사람의 이후 정치 인생을 결정 짓는 것 아닐까? 나는 JP에게 '숨길 발톱'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탁월한 정치력에도 불구하고 2인자에 머물렀던 것이 아닐까?

지금처럼 직접선거에 의해 최고권력자를 선출하지 않던 시절, 최고권력자의 자리에 오르려면 모시던 최고권력자를 밟고 서는 것은 불가피했다. JP는 1971년 국무총리에 오른다. 이후 무려 4년 8개월 동안 총리로 재직하지만 박정희와의 갈등 끝에 1975년 12월 경질된다. 그의 정치감각이라면 박정희 정권이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로 운명의 그날은 다가오고 있었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그는 공화당 총재로 선출된다. 이제 바야흐로 최고권력자의 자리가 눈 앞에 다가온 순간이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선거로 뽑는 나라가 아니었다. 그가 그해 12월로 예정돼 있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통령 간접 선거에 출마했다면 그는 박정희에 이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을 것이다. 그가 최고권력자의 자리에 오른 상황에서 전두환이 쿠데타를 감행할 수 있었을까? 그러나 그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불출마를 선언해버린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낼 야수의 발톱이 없는 인물이었다. 발톱을 드러낸 인물은 박정희가 총애하던 전두환이었다.

JP의 이 선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정통성 없는 권력자의 최후를 본 그로서는 그 전철을 밟는 것은 어떻게든 피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을 지 모른다. 그라면 충분히 그렇게 생각했을 법 하다. 그러나 차려놓은 밥상을 마다하는 것은 욕망의 강도에 따라 결정된다. 게다가 욕망이 정치인의 이성을 무너뜨리는 장면은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이다. 나는 JP의 이 선택이 그가 고수하려 했던 정치적 명분을 넘어서지 못한 그의 권력욕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9선의 관록과 탁월한 정치력, 화려한 이력을 남겼음에도 그의 뒷모습은 어쩐지 슬퍼 보인다.

Sort:  

JP에 대한 재밌는 글이네요. 포스팅 많이많이 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자주 놀러오세요.. 열심히 쓸게요..ㅎ

어찌 되었건 다 내려 놓고 편안히 잠드시길..

뭐 어쨋든 삼가 고인의 명복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