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은 육성하고 암호화화폐는 규제한다는 것이 말이 안되는 이유.

in #kr7 years ago (edited)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 백서의 서론의 첫 두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Commerce on the Internet has come to rely almost exclusively on financial institutions serving as trusted third parties to process electronic payments. While the system works well enough for most transactions, it still suffers from the inherent weaknesses of the trust based model.'

그리고 이는 다음과 같이 번역되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의 상거래는 거의 금융기관을 제 3자 신용기관으로 하는 전자지불 방식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거래에 시스템은 충분히 작동하고 있지만, 여전히 신용기반 모델이라는 내재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데이터는 복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기존의 전자상거래는 '신뢰받는 제 3자'가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예를 들어 지마켓에서 내가 신용카드로 결제할 때 '지마켓'이라는 중개업체가 필요합니다. 또한 신용카드 업체와 신용카드 결제은행도 중개업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멜론을 통해 음원파일을 이용할 때도 멜론의 모회사인 로엔 엔터테인먼트를 비롯하여 신용카드/은행의 중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방식의 문제점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1. 중개 업체가 데이터를 조작했을 때, 검증할 방법이 없다.
    예를 들어 아이유가 음원 스트리밍 한 번에 1원을 받기로 계약했다고 가정합시다. 멜론에서는 아이유에게 스트리밍이 10,000번되었다고 주장하며 10,000원을 보내기로 합니다. 하지만 이 10,000이라는 숫자는 오직 멜론 내부 서버에만 있으며 이것이 위조/변조되었는 지 여부는 아이유의 입장에서는 알 길이 없습니다.

  2. 독과점적인 위치의 중개업체에 권력이 집중된다.
    음원 수익에 대하여 분배 비율을 '엿장수 맘대로' 바꾸더라도 아티스트 입장에서 거부하기 힘들다. 혹은 음원을 잘 보이는 곳에 게시하는 댓가로 부당한 요구를 할 수도 있습니다. 나쁜 상상력이 있다면 이러한 회사가 아티스트에게 다양한 권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이 놀라운 점은 비트코인 시스템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누구도 믿을 필요가 없다는 점입니다. 마이너, 개발자 혹은 다른 비트코인 유저를 믿지 않아도 비트코인은 본연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만약 블록체인을 통하여 음원을 유통한다면, 중앙에서 통제하는 기관 없이 아티스트와 음원 소비자 간의 거래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또한 이러한 거래를 할 수 있게 데이터를 유지하고 중계하는 '마이너'들은 인센티브를 통하여 움직이는 시스템의 일부일 뿐, 마이너에게 아티스트가 잘보일 이유도 없습니다.

분산원장은 무신뢰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기술적 배경일 뿐입니다. 블록체인을 통해 음원을 유통하거나, 사진을 유통하거나, 혹은 컴퓨팅 파워, 심지어 스팀잇처럼 글의 가치를 유통할 때도 누구도 믿을 필요가 없습니다. 게임의 규칙은 이미 정해져 있고, 정해진 규칙 대로 돌아갈 것이라는 것은 오픈된 소스와 데이터베이스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블록체인의 혁신을 이야기 하면서 분산원장에 집중하고 무신뢰 시스템을 놓치는 것은 주객이 전도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암호화화폐가 없으면 블록체인 데이터를 유지할 인센티브가 없기 때문에 블록체인 생태계가 존재할 수 없게 됩니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이러한 데이터 유지/관리를 담당하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에서는 굳이 인센티브가 없어도 데이터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리플의 트랜잭션은 리플랩스에서 담당하며, 마이닝이 필요없습니다.(이것에 대하여도 근본적인 오해가 있는데, 나중에 이야기 하겠습니다.) 하지만 반대급부로 무신뢰 시스템을 잃게 됩니다. 리플은 리플랩스의 판단에 따라서 계좌 동결이 가능합니다. 내가 리플을 가지고 있고, 이것을 이동하는 데 있어서 리플랩스의 허가가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리플 랩스에서 리플에 관련된 중요한 변화를 만들 때도 커뮤티니의 동의과정이 필요없습니다. 그냥 개발자 몇 명이서 바꾸고 공지하면 그만입니다.

만약 내가 리플을 이용하는 데 있어서 리플랩스의 선의를 믿어야 한다면, 이게 일반적인 계좌이체보다 혁신적이라고 할 이유가 있을까요?

Andreas M. Antonopoulos는 프라이빗 블록체인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합니다.

프라이빗 블록체인은 블록체인의 근본적인 가치를 오해하고 있다. 이는 자동차의 발명에 대하여, '자동차의 핵심은 타이어에 있다. 따라서 자동차에 엔진을 떼어버리고 말이 끌도록 한 뒤 이것도 자동차라고 부르자.'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누가 봐도 자동차의 혁신은 엔진에 있는데, 타이어가 자동차의 근본적인 변화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진실을 호도하는 것입니다.

블록체인의 근본적인 혁신에 대해서 무신뢰 시스템에 집중하지 않고 분산 원장에 집중하는 것도 같은 오해입니다. 무신뢰 시스템이 없는 분산 원장은 그저 보안 기술이거나, 데이터 저장 방식일 뿐입니다.

도대체 누가 보안 기술 따위에 신경을 쓴단 말입니까. ㅋㅋ 네이버가 어떤 암호화 기술을 쓰는 지 궁금했던 분이 있는지..

비슷한 예로 투표의 근본적인 가치는 모든 사람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여 집단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점에 있는 것이지 종이에 도장을 찍어 상자에 넣는 과정에 있지 않습니다. 만약 종이에 도장 찍어 상자에 넣는 과정이 핵심이라면, '체육관 선거'에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언론에서 블록체인의 가치를 이야기 할 때 해킹 방지나 데이터의 효율적인 이용에 대한 논의가 많습니다. 블록체인 기술 자체가 새롭고 난해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블록체인의 근본적인 가치는 거래에서 중간자를 빼버리고, 그 자리에 프로그램된 '규칙 덩어리'를 갖다 놓을 수 있다는 점에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보드게임을 아주 좋아합니다. 예전에 젠가나 카탄 정도의 게임만을 아는 분들은 최근에 나온 보드게임을 해보시길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근 10여년 간 보드게임의 발전이 눈부십니다.

보드게임에서는 룰북만 보고도 이 게임이 어떤 게임인 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룰북에서 나쁜 행동을 하는 플레이어에게 보상을 주면 게임에 참가하는 플레이어들은 나쁜 행동을 하게 됩니다. '아발론'이나 '사기꾼 나방'에서는 모든 플레이어가 거짓말과 속임수를 써야만 이길 수 있도록 규칙이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런 게임을 해보면 사기를 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가 형성됩니다. 어떻게 보면 나쁜 플레이어보다 나쁜 규칙이 문제인 것입니다.

블록체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이유는 더 나은 규칙을 만들었을 때, 이 규칙이 지켜질 것이라는 것을 게임이론이 보증한다는 데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 뛰어난 규칙을 제시하는 코인들이 많이 나올 것이고, 이 규칙에 따라서 세상이 신뢰를 다루는 방법이바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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