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해야 번뇌를 끊을 수 있을까[맛지마니까야] - 3
비구들이여, 반대로 바른 법을 잘 배운 고귀한 제자는
성스러운 이들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이들의 가르침을 바로 알고
성스러운 이들의 가르침에 이끌리고
참된 이들을 친견하고
참된 이들이 가르침을 바로 알고
참된 이들의 가르침을 이끌린다.
그들은 마음을 잘 기울여야할 대상이 무엇인지 알고
마음을 기울이지 말아야할 대상이 무엇인지도 바로 알기에
마음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들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마음을 기울여야할 것들에 마음을 기울이느니라.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고귀한 제자가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앞으로도 마음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어떠한 대상에 마을을 기울였을 때 예전에 없던, 아직 생겨나지
않은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나 무명에 의한 번뇌가 생겨나고
이미 생겨나 있던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나 무명에 의한
번뇌가 증가한다면 그것들은 결코 마음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들이니라.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고귀한 제자가 이미 마음을 기울이고
있고 앞으로도 마음을 기울여야 할 것은 무엇인가?
어떠한 대상에 마음을 기울였을 때
예전에 없던, 아직 생겨나지 않은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나 무명에 의한 번뇌가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겨나 있던 감각적 쾌락의 욕망이나 무명에 의한
번뇌가 끊어진다면 그것들은 반드시
마음을 기울여야 할 것들이니라.”
세존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처럼 마음을 기울이지 말아야 할 대상에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 마음을 기울여야할 대상에
마음을 기울임으로써 아직 생겨나지 않은 번뇌가
생겨나지 않고 이미 생겨난 번뇌가 끊어지는 것이다.
고귀한 제자는 그와 같이 이치에 맞고 지혜롭게
다음과 같은 것들에 마음을 기울이느니라.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발생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라고
그는 이처럼 이치에 맞고 지혜롭게 마음을 기울임으로써
‘개체가 있다는 견해’ 와 ‘의심’과 ‘계행과 의례에 대한 집착’의
세 가지 족쇄를 제거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관찰을 통해 끊어지는 번뇌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