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하이네, 그의 문학인으로의 삶 3

in #kr3 years ago

하이네는 자신의 생생한 경험 때문인지 감상적이고, 서정적인 언어의 구사를 통한 시를 사랑했다.
이러한 측면을중시했던 하이네에게 뵈르네와 같이 괴테에 대한 비판을 한 볼프강 멘첼을 칭송하고, 괴테에 대해서는 신랄하게 비판한 인물들은 “단지 손에 기요틴이 없을 뿐인 로베스 피에르”로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런 정열적인 사랑에 대한 시를 썼던 하이네도 꿈을 꾸는 듯한 사랑이야기만 시에 담은 것이 아니었다.
유대인으로 태어나 여러가지 탄압을 받고, 유대인이라는 낙인이 사회적 진출에 걸림돌이 될 것을 알았던 하이네는 결국 기독교로 개종하는 것과 같이 현실을 잊고 사랑이야기만 꿈꾸고 있던 것이 아닌, 현실적인 문제를 냉정하게 생각하는 결정 또한 내린다.
이러한 하이네의 현실을 바라보는 모습은 그 이후에도 숨김없이 드러난다. 하이네가 34살이던 1830년 프랑스 7월혁명을 엄청나게 환영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파리의 7월 혁명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혁명의 아들이다”라는 말까지 했다고 전해지지만, 그는 유대인에 대해 자연스럽게 행해지는 탄압,봉건적이고 속물적인 모습의 독일에서 떠나 프랑스로 망명한다. 이후 하이네는 프랑스에서 적극적으로 사회시와혁명시를 쓰고 저널리스트적인 면모 또한 보여준 삶을 살았다.
그는 7월혁명 이후 빈익빈 부익부의 산업화의 부작용을 목격하고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서 7월혁명 당시 주장했던 공화국의 정신을 다시 바로 세울 것을 주장하며 혁명에 반대하는 귀족들에게 경고하고, 동시에 독일의 권위주의에 대한 비판도 계속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