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hoice를 읽고 13

in #kr3 years ago

미국 차를 사면 미국 자동차 노동자들과 주주들을 돕는 것이고, 일제 차를 사면 메르크 사와 보잉사의 노동자들과주주, 그리고 경영인들을 돕는 것이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자신이 사고 싶은 차를 선택하면 되는 것이다.
물론 미국자동차 생산자들은 당신에게 미국 차를 사라고 부탁한다.
그래야 미국이 외제 차에 의존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미국인이 외국 차를 못 사게 하는 것은 쉽다.
이는 더 질 좋은 차를 더 싼 가격에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기술 혁신은 어려운 것으로 미국 생산자들은 자기들 스스로 그렇게 못하면 정부에 요청하여 일본차를 수입 금지하든가 아니면 ‘자율적’ 쿼터를 부과하라고 한다.
공급이 줄면 미국 자동차의 값은 올라가고, 인상된 가격은 그야말로 복지 원조금이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동차 생산자를 돕기 위해 자동차 구매자가 내는 동냥인 셈이다.
하지만 여기서 소비자는 죄의식으로 상품을 구매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할 필요성이 있다.
사람들은 한정된돈으로 가장 높은 가치를 주는 생산품을 살 권리가 있으며 사람들의 죄의식으로나 불쌍하게 생각해서 자기네 제품을 사준다고 노동자나 회사가 생각하면 생산성은 결국 점점 하락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에드는 자유무역이 앞으로의 미국사회에 좋은 일임을 깨닫게 되고 다음과 같이 프랭크 의원의 지
지연설에서 연설한다.
“미국을 위대하게 하는 것은 바로 미국의 활력입니다. 그 활력의 일부는 우리 국민들로부터 나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활력은 우리가 생생하게 살아 있도록 우리를 자유롭게 풀어놓고 미래에도 그 약속이 지켜지는 미국의 법과 제도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미국의 핵심에 있는 그 불길, 즉 창조의 불길, 변화의 불길, 생명의 불길을 보호해야 합니다.”
자유무역은 더 많은 기회, 더 많은 부 그리고 더 역동적인 세상으로 인도한다.
우리는 리카도가 에드에게 한 충고처럼 삶을 경험할 것인지 삶의 경험을 두려워하고 그것에서 도망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