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과 연애] 평양냉면, 당신이 나쁜남자에게 속는 이유
[음식과 연애] 평양냉면, 당신이 나쁜남자에게 속는 이유
지난주 동네 마실을 다니다가 커다란 평양냉면 현수막을 발견했다. "아니... 평양냉면 불모지인 우리동네에 드디어... 평양냉면이!?" 감격한 나는 한달음에 달려갔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분명 커다란 현수막엔 평양냉면이라 쓰여 있었지만 정작 간판은 24시간 고깃집이다. 주문을 해놓고도 뭔가 불안하다... 안경을 쓰지 않아 정확히 보이진 않았지만 가격이 만원대가 아닌 0이 세개밖에 보이질 않았다. 게다가 점심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냉면을 먹는건 오직 나뿐이고 다른 사람들은 다들 돼지갈비를 먹고 있는게 아닌가?
잠시후... 정성스레 흰자와 노른자를 나눠 만든 계란고명, 수박껍질을 설탕에 절인듯한 독특한 고명, 그리고 반쪽짜리 계란이 두개씩이나 올라가 있는 살어름이 동등뜬 냉면이 나왔다. 그리고 불안한 마음에 가슴을 졸이며 젓가락으로 면을 집어 들었다. "아... @#$@#% 평양냉면 아니잖아!!!!"
설마 설마 했지만 이건 절대로 평양냉면이 아니었다. 일단 면부터 메밀면도 아니었으며, 육수는 누가봐도 이곳에서 만든 육수가 아닌 슈퍼에서 싸게사면 500원이면 사는 육수를 살짝 얼려서냈다. 이건 평양냉면이 아니라 육쌈냉면! 아니 육쌈냉면은 고기라도 주지 이건 그냥 분식집 냉면이다. 그런데 이걸 8000원씩이나 받고 팔다니!!!
마치 거액의 투자 사기라도 당 한 냥 씩씩대며 분을 삭이고 있었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나는 처음부터 이곳의 냉면이 평양냉면이 아닐거란걸 알고 있었던건 아닐까?"
평양냉면 불모지였던 동네에 뜬금없이 등장한 현수막 광고, 대놓고 24시간 고깃집인 간판, 평양냉면이라기엔 너무 싼 가격, 냉면이 아닌 돼지갈비만 먹는 주위 사람들... 사실 누가봐도 여긴 평양냉면을 파는 곳이 아니었다. 그런데 평양냉면에 눈이먼 나는 오로지 커다란 현수막 광고만 믿고 나머지 증표들은 애써 무시를 했던거다. 아...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원효대사의 심정이 이런것일까?
나쁜남자에게 속았다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렇다. "저는 유부남인줄 몰랐어요!", "진심이라고 하더니... 며칠만에 잠수이별을 당했어요.", "나중에 알고보니 양다리도 아니고 오징어다리였더라고요!" 등의 폭로를 하며 분노에 치를 떤다.
하지만 그 사연들을 좀 더 듣고 보면 당사자만 빼놓고 다들 유부남인걸 알고 있었고, 진심이라 강조하던 그 사람은 클럽이나 헌팅으로 만난 사람이었고, 애초에 여자관계에 대해 평판이 좋지 않은걸 알고 만난 남자였던 경우가 많았다.
물론 비난을 받아야 할 사람은 타인을 기만한 쪽이 되어야 한다. (그깟 냉면을 감히 평양냉면이라 하고 8천원을 받다니! 네이놈들!!!!) 다만, 우리가 왜 그 허술한 기만술에 넘어가게 되었는지도 따져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사실 가짜 평양냉면이든, 이래저래 나쁜남자든 평정심으로 차분히 바라보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인지했다면 대번에 그것이 내가 원한던 것이 아님을 알았을거다. 문제는 지나친 욕망이 나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닌 다른 객관적인 지표들에 눈을 감게 만들었던거다. (아... 꼴랑 8천원에 이 얼마나 대단한 깨달음인가?)
누차 말하지만 비난을 받아야하는 것은 의도를 가지고 타인을 기만한 쪽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지나친 욕망이 나의 시야를 흐리지 않도록 평소 부단히 점검을 해야함은 잊지 말아야하지 않을까?
바쁜 스티미언들을 위한 요약
우리가 누군가에게 속았다면 그것은 상대가 누구나 속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감쪽같이 나를 속였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지나친 욕망이 여러 객관적인 증표들에 눈을 감고 상대의 허술한 거짓말을 믿고 싶었기 때문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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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말 같네요. 남이 아무리 말해도 알면서도 믿고 싶은 마음으로 ㅜㅜ. 누구나 한번쯤은 작게나 크게나 경험이 있을거 같네요. 꼭 사랑이 아니더라도 다른 어떤 상황에서든.
알면서도 믿고 싶은 마음...
딱 그거죠...
누가봐도 평양냉면이 아니네요! 전 알고 속던 모르고 속던 결국 속이는 쪽이 나쁘다구 생각해요!!
업보팅, 팔로우하고 갑니다!
분명 아닌데...
평냉을 먹고자하는 욕망이 너무 지나쳤네요 ㅠㅠ
나쁜 냉면이네요..집에서 홈쇼핑냉면이 더 맛날듯..~
그렇죠...
개인적으론 전철우 냉면 맛나던데...
설마 누가 두번 가겠습니까? ㅎㅎㅎ
근데 저기가 돼지갈비는 기깔나게 잘해요~ ㅎㅎㅎ
강남쪽에 있던 체인인데 동치미도 맛나고...
근데 왜 저는 저기서 평냉을 주문했는지...
그렇죠... '평양냉면'이 아닌 그냥 공장식 육수를 사서 만든 '물냉면'들이 이름만 평양냉면으로 많이 유통되서 어느순간부터 물냉면=평양냉면 혼용되게 사용하는거 같아요.
혼용이라기 보다...
다 알면서 상술인것 같아요 ㅠㅠ
제가 바보죠 뭐...
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신박한 발상이에요 ㅎㅎ
저도 지금 야식을 먹어도 살이 안찐다고 믿고 싶네요...
맛있으면 0칼로리!?
오!! 백퍼 공감합니다. 저도 사고칠때 왠지 알고있었던 것같아요 믿고 싶지 않았던거지
그렇죠... 슬픈 예감은 언제나...ㅎㅎ
오! 제대로 허를 짚으셨군요! 맞아요. 그런 경우가 많은것 같아요. 제눈을 제가 가린 격이죠. ㅠㅠ
뭐... 나쁜건 속인 사람이겠지만
나 자신도 조심하는게 좋겠죠...
하... 왜 우리 동네엔 평냉이 ㅠㅠ
맞아요 어찌보면 상대방을 대하는게 내가 보는관점에 따라 상대방 인격이나 성격이 바뀌는것같아요 그게 내가보는 관점에서 보는걸 상대방이나를 어찌생각하는지는 생각안하고 오직 나의 관점이잖아요
그렇죠.
너무 나의 관점에서만 보니 객관적이기가 힘든것 같아요.
음, 상황에 들어가게 되면 객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조금 상실되는 것 같네요. 뭔가 저도 그럴 것 같습니다!ㅠㅠ
그쵸... 내상황에서는 객관적이라는게 힘든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