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요? 현실은 더 심하죠” 불금 홍익지구대에서 벌어지는 일

in #kr7 years ago

한 경찰관이 올린 청와대 청원이 지난 14일 한 달 만에 마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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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홈페이지

청원자는 자신을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3년 차 20대 남자 경찰관이라고 소개했다. 청원자는 112신고 출동 후 폭행을 당한 경우가 5번이나 된다고 했다. 그는 매 맞으면 국민을 보호할 수 없다고 하소연하며, '경찰관 모욕죄', '경찰관 폭행 협박죄' 등을 신설해달라고 요청했다. 무려 6만 3705명 시민이 청원에 동의하며 이 경찰관을 응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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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라이브'

얼마 전 TV에서는 경찰들 이야기를 다룬 tvN 드라마 '라이브'가 인기였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막 현장에 투입된 신입 경찰들이었다. 이들은 사건 현장을 누비면서 맞고, 고발당하고, 욕을 들었다. 극 중 한 소시오패스 남성이 쏜 총에 맞아 경찰이 죽는 사건에 이르면 시청자는 마치 현실에서 일어난 일인 양 안타까워했다.

청원은 드라마 '라이브' 방영 시기와 겹치며 시민들 공분을 일으켰다. 경찰은 왜 맞아야 하는가. 실제로 현장에서 경찰이 이렇게 많이 맞을까. 드라마 '라이브'의 실제 배경이 된 서울 마포구 '홍익 지구대'를 가장 사건 사고가 많이 발생한다는 금요일 밤 찾아갔다.

◈ 사건, 사고 끊이지 않는 홍익 지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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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마포구에 있는 홍익지구대 / 이하 박송이 기자

홍익 지구대는 서울시 합정역 랜드마크인 주상복합 메세나폴리스 인근에 있다. 마포구 합정동, 동교동, 서교동 3개 동을 담당한다. 술집이나 클럽 등이 많은 관할지역이다 보니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 18일 금요일 밤 10시, 홍익 지구대 내부 풍경은 드라마에 나온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입구에 들어서자 경찰들 서너 명이 나란히 데스크에 앞에서 신고를 받거나 전화로 보고 중이었다. 지구대 곳곳에는 CCTV가 설치돼 있었다. 입구 옆 천장에 놓인 큰 모니터로 지구대 인근과 내부 상황이 보였다. 한쪽에는 피의자나 조사자들이 대기할 수 있는 의자가 놓여있었다. 막 불금이 시작된 시간이라 의자는 텅텅 빈 채였다.

경찰들은 쉴새 없이 움직였다. 순찰이나 사건 처리가 끝난 경찰들은 지구대로 돌아와 상황을 보고했다. 십여 분 있다 다시 차를 타고 나갔다를 반복했다. 지구대 앞에 순찰차 세 대 이상 동시에 서 있던 적이 없을 만큼 경찰들은 바쁘게 돌아다녔다.

사건을 알리는 무전은 지구대 내에서 잠시도 끊이지 않았다. 사건 접수는 사이렌이 울리는 소리로 시작됐다. 지구대 안에서는 스피커를 통해 크게 크고 작은 사건이 울려 퍼졌다. 밤 11시 20분쯤 합정역 3번 출구에서 싸움이 벌어졌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청소년들끼리 시비가 붙었다는 내용이었다.

싸움은 크지 않았지만 근처에서 이 십여 명이 구경하느라 소란이 벌어졌다고 했다. 순찰을 돌던 경찰에게 사건이 전해졌다. 20여 분 뒤 경찰이 출동하자 상황은 이내 종결됐고 학생들에겐 보호조치가 내려졌다는 보고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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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밤, 70대 노인이 지하철에서 소란을 피우다 신고를 받고 온 경찰에게 연행됐다.

밤 11시 40분, 웅성웅성 소리가 들리더니 한 노인이 경찰들 부축을 받으며 지구대로 들어섰다. 파란색 조끼에 부피가 큰 배낭을 멘 노인은 경찰에게 이끌려 지구대에 설치된 의자에 앉았다. 그는 "나 술 안 취했다"면서 소리를 질렀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경찰들은 노인 손에 수갑을 채웠다. 그는 "수갑 풀어라. 손목이 다쳤으니 치료비를 내놓아라. 이 xx야"라며 욕설을 퍼부었다. 70대 노인인 그는 지하철역에서 술에 취해 소란을 피우다 신고를 받고 지구대에 오게 됐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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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경찰을 향해 소리를 지르며 욕을 했다.

지구대에 있던 경찰 서너 명이 노인을 말리기 위해 다가갔다. 김상덕 경위는 술에 취해 소리 지르는 노인을 어르고 달랬다. 그렇게 하기를 30분, 경찰은 노인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한 손에 태극기를 쥐어 든 노인은 다른 한 손으로 김 경위 손을 잡고 흔든 후 지구대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찰에게 삿대질하며 욕하던 노인에게 처벌은 없었다. 김 경위는 "욕은 항상 듣는다. 법에 따라 매번 처리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날 야간 근무를 총괄하는 이관재 경감은 믹스 커피를 수시로 마셨다. 밤 8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 30분까지 꼬박 근무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중간에 2시간 휴식시간이 있지만 사실상 밤샘 근무나 다름없었다. 지구대 근무는 2교대였다. 아침 8시를 기준으로 12시간씩 주간과 야간으로 나뉜다. 야간 근무는 그야말로 밤을 꼬박새는 강행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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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밤, 한 시민이 술에 취해 지구대 한쪽에서 쓰러져있다. 오른쪽에는 시민의 보호자가 신분을 확인하고 있다.

한 주 뒤인 26일,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 3시에 다시 홍익 지구대를 찾았다. 이번에는 지구대가 조금 더 소란스러웠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바닥에 깔린 매트리스 위에는 20대 남성이 술에 취해 쓰러져 있었다. 입구를 지나 지구대 오른쪽에 있는 대기 의자에는 20대로 보이는 짧은 커트 머리 여성이 앉아있었다. 두 손이 닿지 않게 각각 수갑이 따로 채워져 의자 양쪽 기둥에 고정돼 있었다.

여성은 경찰 조사를 받다가 자해를 해 수갑이 채워졌다고 했다. 술에 취한 여성은 눈물을 흘리며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곁에 있던 경찰은 "안전을 위해 따로 수갑을 채운 것"이라며 여성에게 설명했다.

4시가 넘어갈 무렵 흰색 티를 입은 30대 남성이 지구대 안으로 들어왔다.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 싸움이 벌어져 연행돼 왔다고 했다. 경찰은 현행범으로 체포됐으니 수갑을 채우겠다고 공지했다. 남성은 수갑을 찼다는 사실이 기분 나쁘다는 듯 "도망갈 생각도 없고 조사에 협조할 거다"라며 계속해서 경찰에 항의했다. 증거를 남겨놓으려는 듯 수갑을 찬 손을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다가 이 모습을 본 경찰과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 "가볍게 맞는 일은 일상다반사, 경찰은 참는 직업이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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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사건 신고가 접수되고 있는 지구대

홍익 지구대에 발령받은 지 2년 차라는 서태훈(30) 경장은 하루 밤새 두 차례 폭행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초 신고를 받고 나간 현장에서였다. 자정쯤 서 경장은 한 남성이 술 취해 행인에게 시비를 건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

서 경장이 술 취한 남성(55)을 잘 설득해 사건은 빠르게 마무리되는가 싶었다. 경찰 권고대로 집으로 돌아갈 줄 알았던 남성은 갑자기 서 경장에게 손을 날렸다. 서 경장은 "안경이 날아가고 '퍽' 소리가 날 정도로 얼굴을 세게 맞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남성은 그 자리에서 공무집행방해죄로 체포됐다.

또 한번은 술 취한 외국인이었다. 앞서 남성에게 폭행 당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새벽 3시. 출동하는 길에 한 택시기사가 서 경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술 취한 흑인 3명이 택시기사에게 시비를 건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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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거리.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사진 / 연합뉴스

서 경장이 다가오자 흑인 중 남성 하나가 냅다 도망가기 시작했다. 서 경장이 그를 쫓자 일행이었던 흑인 여성 2명이 서 경장을 따라 뛰며 방해했다. 그러다 흑인 여성 한 명이 서 경장 얼굴을 때렸다. 주먹으로 '세 대'를 연속으로 맞자 어느새 안경은 또 저만큼 날아가 있었다.

다행히 한 시민의 도움을 받아 서 경장은 피의자 세 사람을 지구대로 연행했다. 조사결과 흑인 남성 한 명과 서 경장을 폭행한 여성은 미군이었다. 여성은 18세로 나이가 어렸고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했다. 이들은 조사 없이 미군 쪽으로 넘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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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지구대 벽에 붙어있는 관내도.홍익지구대 경찰들의 관할 구역이 표시돼 있다.

서 경장은 "현장에서 '경찰 뭐냐'고 하면서 치는 건 매일 있는 일"이라면서 "경찰은 참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취자가 가장 힘들다. 주취자만 좀 적어도 더 많은 사건에 힘을 쏟을 수 있을 텐데"라고 덧붙였다.

이종민(30) 경장은 술 취한 시민들이 경찰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런 경우 공무집행방해가 성립 안 된다. 그는 "눈을 못 뜰 정도로 주취자가 취해 있을 때 깨우면 '뭐야' 하면서 휘두르는 팔에 맞은 적이 많다"라고 했다.

이 경장은 경찰들이 조심하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폭행의 90%는 주취자에 의해 발생한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을 사법처리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팔을 잡은 상태에서 깨운다"면서 "저희가 항상 철저히 조심할 수 없는 노릇이라 고충이 있다"고 말했다.

◈ 특별법 만드는 것보다 '판결 강화'가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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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집에서 시비가 벌어져 지구대로 연행된 남성. 경찰에게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경찰들에게 '청원'에 관해 묻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미 법은 충분하다는 것이다. 핵심은 '법원의 판결 강화'라고 했다.

경찰 고위간부 A 씨는 공무집행방해죄 형량을 높이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A 씨는 "피의자를 처벌한다고 해서 경찰에게 도움 될 것이 없다. 일만 많아진다. 재판도 쫓아다녀야 하지 사건도 해결해야 하지. 그렇게 되니 경찰이 묵인하고 용인하는 게 많아진다"고 했다.

그는 '합의금 장사꾼'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공무집행방해죄는 형량이 무겁다. 잘못하면 구속당할 수 있으니 피의자들이 큰 합의액을 제시하기도 한다"면서 "형량이 세지면 합의금 장사꾼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또 다른 고위간부 B 씨는 법 적용을 엄정하게 하는 것이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B 씨는 "5년 이하인 공무집행방해죄를 특별법 만들어서 10년 이하로 만들면 뭐하겠나. 법원에서 1년 때리면 다 똑같아진다"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공무집행방해죄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받는다. 소방활동을 방해하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을 물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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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대에 연행된 시민들이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과 함께 마포경찰청으로 이동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폭행 가해자가 공무집행방해죄로 엄중한 처벌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이들 대부분 훈방 처리되거나 벌금 선에서 끝난다. 벌금이 선고돼도 선처를 구하는 피의자들이 부지기수다.

홍익 지구대 서태훈 경장은 폭행을 당한 후 피의자 가족들이 찾아왔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벌금이 선고되면 피의자들이 경찰을 만나게 해달라고 한다. 가족을 대동하고 와서 미안하다고 하면 마음이 약해진다"고 했다. 경찰이 선처에 동의하면 벌금은 더 줄어들게 된다.

통계를 보면 이 같은 경향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윤재옥 대구 달서구을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공무집행방해 검거 인원 조치 결과'에 따르면 2014~2016년까지 공무집행방해죄로 검거된 인원은 4만 5011명이다. 이 중 단 10.2%(4619명)만 구속조치 됐다. 나머지 89.7%인 4만 392명은 불구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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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셔터스톡

해외에서는 공무집행방해죄에 대한 판결이 매우 엄격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삼진 아웃제'를 시행하고 있다. 경찰 폭행으로 걸리면 2번째는 최소 25년 형 이상이며 3번째엔 최고 종신형을 받을 수 있다.

2015년 미국 일리노이주에 사는 한 남성이 편의점에서 난동을 부리고 맥주캔으로 경찰을 때린 사건이 있었다. 경찰은 뇌진탕 증세를 보였고 남성은 공무집행방해죄로 체포돼 지난해 4월 징역 20년 형을 선고받았다.

일본은 공무집행방해 사건이 발생하면 피의자와 합의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놨다. 공무집행방해범을 엄격히 처벌하기 위해서다.

이달 초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이철성 경찰청장 등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제복공무원이 자부심을 가지고 헌신할 수 있는 사회 분위기를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김 장관은 제복 공무원에 대한 폭행을 중대범죄로 규정하고 엄중 처벌을 약속했다.

경찰 내부에서는 "판결이나 처벌이 실제로 강화되기까지는 요원해 보인다"면서도 "이번 일부터 시작해서 우리 사회 인식이 차차 나아지지 않겠느냐"며 희망적인 시선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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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저래 경찰관들이 고생이 많네요^^

응원의 말씀이라도 드려야 겠습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