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가다가 본 세상'을 시작하면서
마지막으로 썼던 글이 샌드위치 패널에 대한 이야기였으니 거의 열달 전의 일이네요. 열달이나 글을 못 썼던 것, 먹고 살기 힘들어서 그랬습니다.
뭐 기억하시는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제가 2018년에 건설일을 처음 시작했을때 시작했던 공종은 해체였습니다. 해체는 건물을 새로 짓기 위해 해체하는 작업을 말하는게 아니라, 콘크리트를 붓기 위해 짜넣은 형틀을 해체하는 일입니다. 형틀목수들이 양산되는 폼(수직 거푸집)과 판낼(수평 거푸집)을 이용해 거푸집을 짜고, 각종 보강재로 폼이 터지지 않도록 작업한 다음 콘크리트를 부어넣어 하루나 이틀 정도 양생을 해, 일정 이상 굳으면 그걸 뜯어내는데, 이 작업을 해체(현장의 일본식 용어론 바라시)라고 합니다.
이걸 시작했던 이유는 뭐 큰 거 없습니다. 살고 있는 곳이 건설노동자들의 집결지나 다름없는 곳인데, 대부분이 콘크리트를 부어넣을때 형틀이 무너지지 않도록 수직으로 지탱해주는 장치인 시스템 동바리를 하는 분들이에요. 문젠 이게 워낙 무거운 파이프들을 세우는 일이다보니 힘이 어지간하지 않으면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흔 다섯을 넘어가는 사람을 신입으로 뽑지 않아요. 당시엔 인력사무소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았죠. 노가다들은 주로 벼룩시장을 통해 구인구직을 한다는 이야길 들어서 벼룩시장을 뒤졌더니 15분 정도 걸어가면 되는 거리에 바라시 조공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쭐쭐쭐 갔는데… ㅎㅎ 전체인원 중 70%가 일할 수 없는 비자를 갖고 계신 외국인들이었습니다.
건설일, aka 노가다라고 하는건 대딩 시절 방학때 등록금이나 각종 투쟁기금 만들려고 했던 기억 밖엔 없었던지라, 솔직히 현장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전혀 모른 상태에서, 체류자격이 안되는 분들과 함께 일년 정도 일을 했었습니다. 그러니 단기체류 비자 갖고 있는 분들이 어떤 대접을 받으면서 일하는지 실감나게 겪었죠.
작년 초엔 그래도 일을 꽤 잘 한다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바이러스 때문에 건물 건설 일정들이 밀리고, 또 연속된 장마 덕택에 거의 두달간 일을 못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임금체불도 겪었구요. 그거 매꿔야 하니 낮엔 노가다 하고 밤엔 배민커넥터를 몇 달을 해야 했죠.
다행히 LH전세임대 주택으로 옮기면서 월세(사실은 LH가 대신 내준 돈에 대한 이자)가 왕창 깎였고, 아끼고 또 아낀 것에 더해 전에 살던 집에서 받은 월세 보증금이 있어서 형틀목공 교육과정에 등록할 수 있었습니다. 형틀목수는 무거운 자재와 연장을 다루면서도 세밀하게 작업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강도로는 최강인 공종입니다만, 직업학교 교육과정을 통해 가게 되면 노조 가입이 쉽기 때문에 최소한 임금체불 겪을 일은 없거든요…
제가 했던 일에 비해 형틀목공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게 얼마나 노동강도가 센지는 이 글 보시면 될 것 같아요.
https://m.blog.naver.com/sunwoo8977/221770219695 거기다 해체는 일단 건물 안에서 하는 일이라 비가 와도 일 할 수 있는 날들이 좀 되지만, 형틀은 비가 어지간히 오면 짤없이 퇴근해야 합니다. 다만, 노조 현장들이 임금체불이 적기 때문에 하겠다는거죠;;;
그래서 상대적으로 이젠 글을 종종 올릴 수 있는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주 올리긴 힘든게… 학교 졸업하고 가도 ‘양성공’이라 배워야할 것이 워낙 많아요. 최근에 꽤나 인기를 얻고 있는 책, <추월의 시대>에서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만, 거의 모든 산업분야에서 소수의 엔지니어와 다수의 단순작업자로 노동내용의 분화가 극심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파트 현장만 하더라도 기술자들의 손이 많이 가는 지하층만 형틀 목수들이 작업을 하고 지층부터는 똑같은 구조가 반복되기 때문에 RCS(Rail Climbing System, 거푸집용 작업발판과 비계틀 마감용 비계틀을 폼과 일체형으로 제작한 벽체 거푸집), 현장에선 갱폼이라고 부르는 놈으로 외부 작업을 하고 내부작업은 알루미늄으로 주문제작된 폼을 이용해 작업합니다. 필요한 기술수준이 높지 않기 때문에 이미 이 작업은 대부분 이주 노동자(베트남과 태국 출신분들이 많죠)들이 하고 있습니다. 나이 오십에 엔지니어가 되려면 공부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입니다. 그 틈틈이 쓸 수 밖에 없으니 많이 쓰긴 어렵겠죠. 하지만 올해안엔 나무위키의 그 어처구니 없는 노가다 관련 글들이 개선되는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노가다에 대한 설명은 해체팀에 들어갔다가 3단 후리도메에 올라가라고 했다고 점심 전에 사라지거나 19kg 짜리 600*1200 유로폼 두 장씩 들게 했다고 점심먹고 사라진 분들이나 쓸 내용들이거든요.
노가다가 본 세상이라는 타이틀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ㅎ
오래간만에 뵈니 반갑습니다.
나무위키 특성상 그런 내용이 채워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ㅎㅎ
무리하시지 마시고 종종 뵈었으면 좋겠네요.
#hive-196917 태그를 제일 앞에 달면 한국어 사용자 커뮤니티에 글이 노출됩니다.
이미 발행하신 글도 cross posting 기능을 사용하면 커뮤니티에 올리실 수 있고, 보팅이 합산되는 것 같아 보입니다 ㅎㅎ
아, 고맙습니다. 바로 수정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