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입 능가경 제1 라바나왕 권청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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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세존께서 저 왕에게 말씀하셨다.

[ 너는 응당 내게 물어라. 마땅히 너를 위해 말하리라. ]

그때 야차왕은 다시 가지가지 보배의 관 . 영락과 모든 장엄구로 그 몸을
장엄하고 이렇게 말했다.

[여래께서는 항상 말씀하시기를 ( 법도 오히려 버리거든 하물며 비법이리요 )
하셨는데, 어찌하면 이 2종법을 버릴수 있읍니까? 어떤 것이 법이며 어떤 것
이 비법이옵니까? 법을 만일 버려야 한다면 어째서 둘이 있읍니까? 둘이 있으
면 곧 분별상에 떨어집니다. [ 체가 있다 . 체가 없다 . 실이다 . 이이 아니다
라는 이러한 것은 일체가 모두 분별이므로, 아롸야식에는 차별상이 없어서
(차별상은) 마치 털바퀴가 머뭄과 같음을 깨달아 알지 못하므로 청정한 지혜
의 경계가 아닙니다. 법성 (법의 성품 )이 이러하거늘 어찌하여 버릴 수
있읍니까?]

그때 부처님이 능가왕에게 말씀하셨다.

[ 능가왕이여, 너는 어찌하여 병 따위의 무상하고 파괴되는 법을 보지 않는
가? 범부들은 그 중에서 허망하게 분별을 내지만 너는 지금 무슨 까닭에
이러한 법과 비법의 차별상을 알지 못하는가? 이것 ( 법과 비법의 차별상 )
은 범부들이 분별하는 바이지 깨달은 지혜로 보는 바는 아니다. 범부들은
가지가지 모양 중에 떨어지지만 모든 깨달은 이들은 그렇지 아니하다.

능가왕이여, 궁전과 동산 숲을 태울 때 가지가지 불꽃을 볼 수 있는데,
불의 성품은 하나이나 아오는 빛과 불꽃은 섶의 힘에 말마암기 때문에
장 . 단 . 대 . 소 가 각각 차별이 있음같이, 너는 지금 어찌하여 이와 같은
법과 비법의 차별상을 알지 못하는가.

능가왕이여, 하나의 종자가 싹과 줄기와 가지와 잎과 그리고 꽃과
과일의 한량 없는 차별을 내듯이, 밖의 법도 그러하고 안의 법도 역시
그러하다.

이른바, 무명이 록이 되어 온 . 계 . 처와 일체 모든 법을 내어 삼계
중에서 여러 갈래의 생을 받아 고통 . 쾌락 . 좋음 . 추함 . 말함 . 침묵 .
움직임 . 가만있음 .이 각각 차별이 있고 또 모든 식의 모양은 비록
하나이나 경계에 따라서 상 . 중 . 하 . (染)염 . 쟁(爭) . 선 . 악 의 갖가
지 차별이 있음과 같다.
능가왕이여, 다만 위와 같은 법이 차별이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수행
자가 관행을 닦을 때 스스로의 지혜로 행할 바도 역시 차별의 모양을 볼 수
있거늘, 하물며 법과 비법이 갖가지 차별과 분별이 있겠느냐?

능가왕이여, 法과 非法의 차별 相은, 마땅히 알라 모두가 상 분별임을.

능가왕이여, 어떤 것이 법인가. 이른바 2승과 모든 외도들은 허망하게
분별하여 [實體등이 있어서 모든 법의 인이 된다] 고 말하지만, 이러한
법들은 응당 버리고 응당 여이어서 그 중에서 분별하여 상을 취하지
말아야 한다. 제 마음법의 성품 (自心法性) 을 보면 병등의 모든 물건에
대한 집착이 없어진다. 평범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취하는 바는 본래
실체가 없다. 모든 관행인이 비바사나로써 여실하게 관찰함을 이름하여
[모든 법을 버림] 이라고 한다.

능가왕이여, 어떤 것이 비법인가. 이른바, 모든 법은 무성무상임을
알아서 영원히 분별을 여이어 사실과 같게 보는 이는. 있다거나 없다거나
하는 이러한 경계는 모두 생기지 않으므로, 이것을 이름하여 [비법을
버림]이라 한다.

또 비법이 있으니, 이른 바 토끼뿔 . 석녀의 아이 등은 모두 性 . 相이
없으므로 분별할 수 없지만 단지 세속의 말에 따른 이름과 글자가 있을
뿐이므로, 병 따위와 같이 取着할 것이 아니다. 저것은 식으로 취할 바도
아니므로 이와 같은 분별도 또한 버려야 한다. 이것을 이름하여 [법을 버림]과
[ 비법을 버림 ]이라고 한다.

능가왕이여, 네가 먼저 나에게 물은 것은 이미 다 말했다.

능가왕이여, 네가 말하기를 [ 저는 과거 모든 여래께서 이 이치를 물었고 저
모든 여래께서 이미 저를 위해 말씀하셨읍니다 ] 라고 했지만, 능가왕이여,
네가 말한 과거란 단지 분별일 뿐이고 미래도 역시 분별이고, 나 라는 것도
역시 분별이다.

능가왕이여, 저 모든 부처님의 법은 모두 분별을 떠났고, 이미 일체의 분별
과 희론에서 벗어 났으며, 색상과 같지도 아니하므로 오로지 지혜로써 깨달
을 바이지만, 중생들이 안락을 얻게 하려고 법을 연설하신다.

모양 없는 지혜로써 말하는 것이 여래이므로, 여래는 지혜가 체가 되고
지혜가 신이 되므로 분별할 수 없고, 곳(장소)로써도 분별할 수 없고, 아 . 인 .
중생상으로써도 분별 할 수 없다.

어찌하여 분별할 수 없는가 하면, 의식은 경계를 인하여 일어나 색과 형상을
취하지만 (여래는 색과 형상이 없으므로) 能분별 ( 분별함 )도 떠나고 所분별
(분별됨)도 떠났기 때문이다.

능가왕이여, 비유하면 벽에 그려진 그림 속의 중생은 깨닫고 앎이 없는 것과
같이 세간의 중생도 모두 그와 같아서 業도 없고, 執도 없다. 모든 법도 역시
그러하여, 들음도 없고 말함도 없다.

능가왕이여, 세간의 중생은 마치 변화와 같건만 범부와 외도는 일지 못한다.

능가왕이여, 이와 같이 보는 것은 정견이라 하고 다르게 보는 것은 분별견이
라 한다. 분별로 말미암아 둘을 취착한다.

능가왕이여,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물과 거울속에서 제 형상을 보고, 등불과
달빛으로 인해 제 그림자를 보고, 산골짜기에서 제 소리의 메아리를 들으면
문득 분별을 내어 취하고 집착함과 같이, 이것도 역시 그러하다.

법과 비법은 오직 분별일 따름이다.

분별로 말미암은 까닭에 버리고 떠나지 못하고 , 다만 일체 허망을 더욱
증장할 뿐이므로 적멸을 얻지 못한다.

적멸이란 소위 일연( 일대사 因緣) 인데 하나의 인연이란것은 가장 수승한
삼매이다. 이 삼매로 부터 능히 스스로 깨닫는 거룩한 지혜를 내니 여래장
으로써 경계를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