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을 움직이는 힘, Mechanism Design
아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우리 모두가 아는 유명한 경제학 이론이다. '보이지 않는 손' 이론은 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다시 균형있게 만드는 원동력이 바로 '인간의 이기심'에 있다고 생각한다. 즉, 시장에 참여하는 참여자들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싶어하며, 그 행동이 역설적이게도 시장의 균형을 유지 한다는 것이다.
이 오래되고 진부한 이론을 오늘 꺼낸 이유는, 경제 뿐만 아니라 블록체인에도 블록체인을 유지/발전 시키기 위해 사람의 이기심을 이용하는 기작(Mechnism)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메커니즘 디자인(Mechanism Design)이다.
메커니즘 디자인이란?
메커니즘 디자인은 사실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용어이다. 어디선가 들어보았을 것 같지도 않으며 단어만 보고서는 의미를 유추하기도 매우 힘들다. 그렇지만, 나는 몰랐지만, 메커니즘 디자인 이론의 기초를 수립한 3명의 교수는 이 공적을 인정받아 2007년 노벨경제학상을 탔다.
메커니즘 디자인은 어떤 시장의 룰을 만드는 룰 메이커(Rule Maker)가 규칙을 만들고 실행할 때, 그 의도가 아무리 좋더라도 시장의 참여자들이 개인의 이익을 가장 우선시함에 따라 의도했던 대로 정책 효과가 달성되지 않을 수 있다는 가정을 전제로 하고 있다.
메커니즘 디자인이 전제로 하고 있는 가정의 대표적인 예는 죄수의 딜레마가 있다. 두 죄수가 모두 침묵했다면 징역을 살지 않아도 됐으나,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 하기 위한 선택인 자백을 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두 사람 모두 징역살이에 처하게 됐기 때문이다.
메커니즘 디자인은 이런 가정 속에서, 룰 메이커들이 어떻게 제도를 만들면 개인들이 자신들의 이기심을 마음껏 발휘하더라도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메커니즘 디자인의 예
메커니즘 디자인을 사용하여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사례를 한 가지 살펴보자. 우리가 케이크 한 개를 가지고 있다고 해 보자. 이를 두 사람에게 공평하게 나눠주고자 한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이 때 메커니즘 디자인을 활용하면 쉽게 해결할 수 있다. 바로 먼저 자른 사람이 나중에 가져가게 규칙을 세우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먼저 자른 사람은 최대한 절반에 딱 맞춰서 자르려고 할 것이고, 다른 한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보다 큰 것을 선택할 것이다. 이에 따라 자른 사람은 본인이 자른 것이니 불평이 없을 것이고, 선택한 사람도 자기가 더 큰것을 선택한 것이니 불만이 없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자기 케이크를 더 많이 가져가려고 했던 행동이 '공평하게 나눈다'라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블록체인 속 메커니즘 디자인
메커니즘 디자인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룰 메이커가 직접 설계를 해야 한다. 사토시 나가모토도 비트코인(Bitcoin)을 처음 만들 때, 이 메커니즘 디자인의 개념을 활용해 설계를 진행했다.
사토시 나가모토가 비트코인을 만들면서 당면했던 문제점은 바로 비트코인을 유지, 관리 및 확장시킬 중앙 기관이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탈 중앙화를 목표로 만들었지만, 유지가 되지 않는다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비트코인을 유지할 누군가가 필요했다.
사토시 나가모토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보상(Reward)'체계를 도입했다. 블록을 생성하고, 거래 전송을 검증, 처리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비트코인과 전송 수수료를 보상으로 주어 그들이 블록체인을 유지, 관리하도록 만들었다. 실제로 현재 비트코인 블록을 생성하는데 참여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비트코인을 얻기 위해, 즉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비트코인 세계에 뛰어 들었고 돈을 벌고 있다.
분명 그들의 행동은 자기 효용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지만, 이들이 비트코인에 참여함으로써 비트코인 블록체인은 더 많은 컴퓨팅 파워(Computing Power)를 만들어내어 외부 해킹으로부터 보다 안전해졌고 비트코인이 현재까지도 유지/확대 되고 있다.
이는 비트코인 뿐만 아니라 다른 암호화폐에도 유사한 모습으로 적용된다. 비트코인과 같이 PoW를 사용하는 코인들 뿐만 아니라 PoS를 사용하는 코인들도 코인 보유자가 더 많은 코인/이자/배당을 얻기 위해 네트워크를 유지시킨다.
이처럼 자신의 개인적인 효용을 극대화하는 행동이 우리가 속한 세계에 더 큰 이익을 가져다 주는 형태로 룰을 만드는 메커니즘 디자인은 중앙기관 없이 블록체인을 유지/확대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ICO를 분석하는 도구
메커니즘 디자인이 중요한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ICO 분석의 도구로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코인을 발행하는 ICO는 기본적으로 탈중앙화를 지향한다. 즉 최대한 중앙기관의 통제를 벗어나 가급적 시장 참여자들 중심으로 가급적 사업을 하고자 한다. 하지만 사람-사람의 일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 때 이를 얼마나 중앙기관의 통제 없이 해결할지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블록체인 상의 베팅(Betting) dApp이 있다고 해보자. 한국과 일본 축구경기에 대한 베팅이 열렸고, 결과적으로 한국이 이겼다고 하자. 일반적인 베팅 사이트라면, 중앙기관이 한국이 이겼다는 것을 입력하여 한국에 건 사람들에게 수익을 준다.
하지만 중앙기관 개입을 최소화 하는 dApp의 경우, 한 가지 문제가 생긴다. 일본에 건 사람들이 자기들이 이겼다는 Input을 계속 입력한다면 어떻게 될까. 실제 경기는 한국이 이겼지만, 베팅 수익은 일본 쪽에 건 사람이 가져가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 때 중앙기관이 개입해야 할까? 아니다. 잘 설계된 dApp이라면 중앙기관 개입 최소화를 위해 이렇게 해결할 것이다.
"일본에 베팅한 사람 중, 한국이 이겼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에게 선착순으로 베팅 금액의 일부를 돌려준다. 늦게 선언할 수록 받는 베팅금액이 줄어들게 된다"
조금이라도 베팅 금액을 되찾고자 하는 개인의 이익 극대화 마음을 이용, 위와 같은 형태의 메커니즘 디자인을 만든다면, 일본에 베팅한 사람은 너도나도 먼저 한국이 이겼다고 선언할 것이고, 위에 제기했던 문제는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룰을 설정하는 기업은, 더 적은 수수료, 더 적은 운영비로도 사업이 가능하며 소비자의 신뢰도 높아지기 때문에 보다 나은 수익률을 얻을 수 있다.
이처럼 ICO 기업들이 자신들의 사업 모델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을 살펴보는 관점으로, 메커니즘 디자인을 활용하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지금까지 블록체인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인 메커니즘 디자인의 개념 등에 대해 소개했다. 메커니즘 디자인은 암호화폐와 멀 것처럼 느껴지는 이론이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암호화폐를 분석할 때 사용이 가능한 유용한 도구이다.
최근 언론에서는 암호화폐 투자를 '투기'로 규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와 같은 경향이 생긴 이유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가격 변동성이 높은 것만 보고 투자 근거 없이 자금을 암호화폐 시장으로 유입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시장에는 메커니즘 디자인 말고도 다양한 암호화폐 분석 방법들이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암호화폐를 '투기'의 대상으로 만들지 않도록 하나씩 공부해 나가며 투자해 보자.
모르던 것을 또 알게되었습니다. 제가 해야할 걱정은 아닌 줄 알지만 더 많은 분들이 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뒤늦게 봐서 제 블로그에 올려놓을 수는 없지만... 한번씩 와서 보고 가면 되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