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함도> - 왜 군함도여야 했나요

in #movie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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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게 욕을 먹은 감은 있다. 망작이라고 하기엔 일단 말이 된다. 영화의 시작인 탄광씬의 미장센은 관객을 압도하고, 그 안에서 고통받는 인부들의 삶은 확실히 뇌리에 남는다. 열악한 상황과 비극으로 끝난 탈출기는 앞으로의 이야기가 험난할 것임을 제대로 암시한다. 이후 지옥도로 왜 이들이 모여들게 된건지, 왜 이들이 탈출을 꿈꾸는지가 일리있게 설명된다. 고난을 극복하고 희망을 찾는 ‘전형적인‘ 휴먼드라마의 판이 제대로 깔렸다.

그런데 영화는 초반부 묘사와 달리 꽤나 쿨하다. 예고편 끝을 장식하며 ‘국뽕’을 의심케했던 일장기 절단씬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고, 독립 투사일 줄 알았던 황정민은 입 끝마다 조선놈을 달고 산다. 일제의 악행을 그리는 영화치고는 신선한 맛이 있다. 볼거리도 가득하다. 군함도의 미장센은 기묘한 맛이 있고 탄광 폭발씬의 박력은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군함도라는 비극적 공간에 다양한 인간군상들이 어우러지며 색다른 군상극이 나올 수도 있다는 기대감도 들었다. 2시간 후 기대는 실망으로 끝났고, 영화는 어중간한 잡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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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큰 문제는 영화와 실제 사건과의 괴리다. 군함도의 후반부 핵심스토리는 명백한 허구다. 독립투사의 변절과 처단, 대탈출과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실제 군함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 가공된 이야기가 실존했던 비극과 어우러지지 못한다. 오히려 과한 극화가 비극적 현실을 가려버린다. 군함도의 열악한 상황은 초반의 탄광씬과 탄광서 일하는 최칠성의 모습을 제외하면 영화 내내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다. 그저 위안부였던 오말년을 통해 성의없이 일본의 만행을 흝어낼 뿐이다. 그러다보니 그들이 처한 현실이 세게 와닿지않는다. 과한 비극성은 감성팔이가 되지만, 과한 쿨함은 영화의 정체성을 흔든다. 군함도처럼 잘 알려진 비극적 공간이 주인공이 되었을 때는 더더욱 그렇다.

군함도에선 없었지만, 영화 속 이야기들은 강점기 시절 대부분 실존했던 이야기들이다. 일제의 개가 된 독립운동가, 일제에 빌붙어 영화를 누렸던 조선인, 일제와 저항한 민중들의 이야기는 일제 강점기 속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류승완 감독은 이를 하나의 이야기로 무리없이 묶어냈다. 가상의 공간을 설정해 이야기를 녹여냈다면 영화과 현실의 괴리감도 없었을거고, 후반부 액션도 찝찝함없이 즐길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군함도’라는 잘 알려진 비극적 공간, 그것도 과거사 청산이 완벽하게 실패한 공간을 주제로 이런 쿨한 연출이 적합했던 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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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나 시나리오가 매력적이었다면 이 괴리감은 충분히 커버됐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군함도>의 그것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진부함의 극을 달린다. 무엇보다도 입체적인 캐릭터가 없다. 선악구별은 명료하고, 이들이 어떠한 행동을 할지도 다 예측이 된다. 반전이 있다곤 하나, 그 반전의 주인공에 대한 설명이 너무 없었기에 감탄보다는 의아함이 더 크다. 주조연급만 10명 가량 배치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끌고 가는데도 눈을 사로잡는 에피소드가 없다. 오락영화에 기가 막히게 사회비판을 녹여내던 류승완 감독의 센스도 보이지 않는다.

특히 오말년(이정현)과 최칠성(소지섭) 캐릭터는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뻔하고 기능적이다. 전혀 다른 환경의 두 사람이 애정을 느끼는 과정이 허술하게 그려지는데, 그 과정마저 너무나 전형적이라 큰 인상을 주지 못한다. 비중은 꽤 많은데, 정작 메인 스토리와는 잘 어우러지지 못한다. 두 배우들의 열연만 아깝게 되었다. 캐릭터만 진부한게 아니다. 황정민, 이경영, 송중기 등 주연 배우 대부분의 연기는 준수하나, 어디서 본듯한 연기의 반복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오직 김수안만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며 눈을 사로잡는다.

입체적인 해석을 할 여지는 충분했다. 군함도에는 배신한 독립운동가도, 일제의 앞잡이가 되어 사람들을 착취하는 반장도 있었다. 특수한 시대와 장소가 주어졌는데, 감독은 이를 활용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얘가 악역이야’하고 턱 지명해서 안겨주니, 캐릭터에 몰입할 수도 없다. 뻔한 스토리가 뚜렷하게 선악으로 갈리며 더 지루해졌다. 시나리오는 허술하고 전개 대부분은 진부한데, 신선한 시각은 없고 의아한 설정들은 눈에 훤히 보인다. 거대한 스케일의 액션덕에 시간은 잘 가지만, 곱씹어 볼수록 아쉬운 점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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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의 작품 중 가장 실망스러운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매력없는 캐릭터와 뻔한 스토리 안에서 그의 재기발랄한 연출은 실종되었고, 시나리오가 그러니 배우들의 열연도 빛이 바랬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허구와 실존이 어우러지지 않는다. 액션에 집중하려니 군함도라는 역사적 배경이 눈에 밟히고, 역사적 배경을 신경쓰니 영화 속 활극이 너무나도 무례하게 느껴진다. 비극적 역사의 공간을 단순 액션으로 소모하기에는 남은 슬픔이 너무 크다. 캐릭터의 설정이든, 공간의 활용이든 어떤 방식으로라든 스토리와 군함도의 연계성을 만들었어야 했다.

영화 속에는 ‘왜 군함도여야 했는가’에 대한 답이 없다. 아니 군함도만의 특수한 상황을 활용하려는 노력조차도 안보인다. 불규칙하고 기괴한 군함도의 미장센은 충분한 임팩트를 줬지만, 그 임팩트만을 위해 군함도를 활용했다면 너무 안일한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적어도 군함도가 무대라면, 이 영화의 중심은 액션이 아닌 비극적 드라마에 위치해야 했다. 디테일한 묘사로 캐릭터들을 돋보이게 만들고, 그들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영화를 전개해야 했다. 그러나 영화는 액션 블록버스터의 길을 택했고, 군함도는 단순한 장소로 격하되어버렸다. 다양한 캐릭터들도 의미없이 소모된다. 약하게 말해서 안일했고, 세게 말하면 생각이 없었다. 류승완 감독을 만난다면 제일 먼저 물어보고 싶다. “왜 군함도여야 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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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까진 바라지도 않을테니, 내 딸 소희만이라도 여기서 나가게 해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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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너무 잘 읽고 갑니다. 아직 보지 못했지만 꼭 보고 확인하고 싶은 영화입니다.

제가 류승완감독을 좋아해서 좀 박하게 평한면이 있을수도 있긴합니다ㅜㅜ 아쉬움이 큰 작품이죠

영화는 봤지만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는 분석이네요^^

좋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