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를 쓰다.
자발적 백수로 잘 지내다 아끼는 사람들이 취업하는 모습을 보며 자극을 받은 나는, 어디에가서 일해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일단 이력서 작성을 시작했다. 무언가 써놓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돌이켜보면 내가 이력서를 제대로 써본적이 없었다. 2017년 초에 외국회사 한번 지원해보겠다고 영문 이력서를 어떻게든 써놓기만 한거 외에는 이직해서 일만했지 제대로 써본 일이 없었다.
최근에 다른 사람의 이력서를 봐주면서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그 동안 발표한 내역이 좀 있으니까 이 발표를 잘 엮은 한장짜리 문서로도 충분히 이력서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였다. 많이 열심히 적는게 너무도 귀찮았다.
그렇게 첫 버전이 만들어지고 주위에 나를 알만한 사람들, 평소에 내가 어떻게 일했는지 보거나 이야기를 들어서 각자 자신의 판단으로 나를 알고 있을만한 몇 분들에게 보여주며 피드백을 받아보았다.
그 결과, 다들 이상 비슷한 이유로 좋지 않다는 피드백을 주었고 설명도 친절하게 해주었다. 다시 돌아본 내 이력서는 안일하고 오만함만이 남아 있었다.
작년에 썼던 영문 이력서를 기반으로 아에 다시 쓰기 시작했다. 내 아이디어가 어떠했든 그건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일 뿐이다. 이력서는 남에게 특히,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이 읽어야 하는 글인데 그 본분을 잃고 남이 나를 탐구해주길 바랬던거 같다. 그렇게 취업이 하기 싫었나 싶기도 하고 이력서를 쓰기 싫었던거 같기도 하다. 지적받은 이유가 타당하고 부끄러움도 많이 느껴 자극이 되었다.
다시 피드백을 받았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 중 두명 이상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면 분명 내가 잘못쓴거라 판단하고 즉각 의견을 반영해 고쳤다. 이렇게 고치다보니 계속 고치고 있고 이쯤되면 내가 왜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나 하는 생각이 들고 있긴하다.
반복적으로 놓치는 부분은 나는 어느정도 당연하다 여기고 생략하는 다른 사람에겐 궁금할 부분이였다. 내 상상으로 채우긴 어려웠기에 피드백이 소중했다.
퇴사 후 스트레스 장애라도 있는 것처럼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아직도 별로 안들지만, 이 이력서를 쓰는 것 자체가 놀기만 하는 내 잔잔한 머리속을 적당히 흔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