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얼만큼 가난했나요?

in #sct5 years ago (edited)


ISBN : 9791186827567

무연탄을 주연료로 사용하기 시작한 1953년부터 28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일산화탄소(연탄가스)에 중독되어 중독된 국민은 무려 294만 명에 이르고 사망자 수는 6만여 명으로 추정되어 연탄가스에 대한 경각심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다
_경향신문 1982년 5월 4일자

이 책 <그때 사회면>은 제목 그대로 옛날 신문의 사회면 중에 그 시절을 잘 표현한 기사를 소개합니다. 1982년이면 바보같은 한국나이로 제가 5살이었군요. 아무것도 모르는 꼬꼬마였네요. 제가 이 책에서 고른 꼭지의 제목은 소리소문 없이 찾아온 저승사자입니다. 가난해서 무지해서 죽어야 했던 수많은 목숨들.

"방방이 군불을 때고, 풍로에 따로 숯불을 피워 반찬을 하던 주부들에게 부엌에서 온종일 물이 끓고, 필요할 때면 언제나 불을 쓸 수 있는 연탄아궁이는 나일론 못지않은 복음이었다."라고 작가 박완서는 연탄의 고마움에 대해 이렇게 썼습니다.

연탄은 추운 겨울 방을 데우는 없어선 안 될 서민의 도구였고 아파트에서도 연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연탄은 고마운 물건이지만, 연탄을 태울 때 나오는 여러가지 유해가스 가운데 특히 일산화탄소에 중독되면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물건이기도 합니다. 일산화탄소에 중독되면 헤모글로빈과 결합하여 산소 공급을 중단시키거든요. 두통과 근육경령이 일어나고 의식장애를 일으키다가 심하면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장판 틈이나 벽 틈, 문 틈으로 일산화탄소가 스며들어 자고 있던 사람을 조용히 저승으로 데리고 가는 참변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한겨울이면 추운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사용했던 연탄으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일가족이 전부 사망한 사례가 끊이질 않았다고 합니다. 같은 하숙집에 하숙하던 학생들이 모두 죽는 사고도 일어났다고 하니 정말 소리없는 저승사자네요. 부엌에서 밥을 먹던 아이나 부엌에서 목욕하던 어른도 죽었다고 하니 정말 너무 무서운 일산화탄소입니다.

저도 어린 시절이 생각납니다. 방문 바로 옆에 있던 연탄 아궁이. 뚜껑 잘 닫으라고 잔소리를 많이도 들었던 연탄 아궁이가 생각납니다. 거기서 가래떡도 구워먹고 어른들 몰래 설탕으로 달고나도 해먹던 추억이 생각납니다. 학교 앞에는, 추억의 불량식품인 쫀득이를 구워먹으라고 아예 연탄불을 가게 앞에 피워놓고 뚜껑을 열어 놓았으니, 얼마나 무지했던지요. 거기서 일산화탄소 나오는 건 모르고. ㅎㅎㅎ

이당시 연탄가스로 사망한 사람이 전염병으로 사람의 열 배나 됐다고 합니다. 1968년 한 해에만 350여 명이 숨졌고, 1973년엔 580명. 제가 태어나기 전 해인 1976년엔 1,013명이나 죽었다고 하니 고맙기도 하고 무섭기도 한 연탄이었습니다.

너무나 가난했던 그 시절. 사람의 목숨을 어이없이 앗아간 게 또 있습니다. 복어알입니다. 복어알에는 사람을 죽이는 독이 있어서 복어를 손질할 땐 알을 잘 제거해야 합니다.

S씨가 서울 서대문 중앙시장에서 주워 온 복어 알을 한 근가량의 복어 알을 죽으로 끓여 먹었다가 죽독되어 S씨의 부인 C씨는 15분 후에 사망하고 아들도 적십자병원에서 응급 치료 중 사망했으며 S씨와 딸은 중태에 빠졌다. S씨는 하루하루 지겟품을 팔아 굶다시피 끼니를 이어오다가 시장에 버린 알을 광어 알인 줄 알고 주워 왔다가 이런 참변을 당했다
_ 동아일보 1961년 1월 1일자

참으로 멍청한 손질입니다. 복어알은 따로 분리해서 버렸어야지. 이당시엔 버린 음식을 주워다가 재활용하는 사람이 매우 많았던 시절이라고 합니다. 배가 너무 고파 시장 바닥 쓰레기통에 버린 알을 확인도 않고 끓여 먹거나 구워 먹다가 죽은 무지의 소치였습니다. 아무데나 복어알을 버린 상인도 정말 나쁜놈입니다. 자꾸 사람이 죽어나가자 경찰은 복어알을 아무렇게나 버리면 처벌한다고 했지만 처벌받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고 하니... ㅠㅠ 죽은 사람만 불쌍합니다.

어린 시절,,, 가난해도 너무 가난했습니다. 김치와 장아찌 뿐인 반찬이 싫어서 밥을 깨작깨작 먹거나 안 먹었습니다. 그래서 늘 삐쩍 말라 있었고 키도 가장 작았습니다. 초1때 20몇키로였던 걸로 기억나는데요, 키도 작았지만 엄청난 몸무게였죠. 하긴,,, 뭐,,, 저 군대 갈 때 170에 46키로였습니다. 요즘의 저는 제 인생 몸무게 최고봉을 찍고 있죠. ㅡ.ㅡ^

저는 그래도 쌀밥은 상에 올라왔습니다. 반찬이 김치 뿐이라 제가 안 먹은 것이죠. 아마도 저보다 더 가난한 시절을 보낸 분이 많으실 것 같은데요, 혹은 저같은 어린시절을 보낸분도 많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요즘 애들 보면... ㅎㅎㅎㅎㅎ 자신이 얼마나 풍족한지 아마도 모를 겁니다. 겪어보질 못했으니.

어린시절 얼마나 가난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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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절은 추억으로 힘이 되죠~

말죽거리 잔혹사 논밭이었다는 겨울에 스케이트 타던 그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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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어렸을 땐 논밭에서 썰매타고 그랬어요. ㅎㅎㅎ

ㅋㅋ 그 시절 맘껏 밖에서 뛰어다니던 시절 그립습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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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엔 반에서 한두명정도 잘사는 아이가 있었고 나머지는 뭐 그냥 대부분 어려운 시절들을 보낸것 같아요
그러고 보면 요즘 아이들은 좀 괜찮은 환경에서 자라는것 같습니다

요즘 애들은 정말 저 어렸을 때와 비교하면 부자들이죠. ㅎㅎㅎ

응답하라 1988에서 덕선이네 집이 반지하였는데, 저도 중학교 때까지 반지하에 살아서 그 이야기가 공감이 많이 되었지요. 정말 가난했던 시절입니다. 그래도 그 시절이 있어서 좋아던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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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모두 다같이 가난했던 시절인 것 같아요. ㅠㅠ

중1때까지 연탄보일러를 쓰다가 추석무렵 연탄가스 마시고 자식들이 모두 죽을뻔한 경험을 하시고 아버지께선 기름보일러로 바로 바꾸셨죠. (저희 할머니께서 연탄가스 마시고 돌아가셨거든요..ㅠ)

헙... ㅠㅠ

전 시골에서 자라 저 시기엔 연탄도 사용 못했는데... 산에가서 죽은 나무 베어 오고 했었던 기억이...ㅎㅎ

엇,,, 연탄도 아니고 나무라니... ^^

연탄 가스 중독의 경험자입니다. 다섯살때 고압 산소통(?)에 들어갔었다고 하더군요 ㅎㅎ

헙... ㅠㅠ 천만 다행이네요. ㅠㅠ

연탄이라니 옛날생각이나네요 ㅎㅎ

저도 옛날 생각이 ㅎㅎㅎ

정말 가난하게 살때는 방이 다 일자로 되어 있었습니다. 방으로 갈려면 부엌을 통해야 되고 방에서 방으로도 방을 통해야 했었습니다. 화장실은 안에 없었고, 밖에 공용으로 있었는데, 푸세식이었고요.

그때 화장실 가는게 무서워서 형이랑 같이 가기도 했죠.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정말 잘 살고 있습니다.

화장실도 안에 있고, 그것도 2개씩이나 있으니...^^

그런데 이놈의 욕심이 끝이 없네요.하하

화장실 가려면 겨울엔 춥고 밤엔 무섭고 그랬죠. ㅎㅎㅎㅎㅎ 빨간 휴지 줄까,,, 손도 나오고. ^^

csbcast님이 naha님의 이 포스팅에 따봉(5 SCT)을 하였습니다.

고맙습니다. ㅎㅎㅎ

빨간휴지줄까~ 파란휴지줄까~ 저희집도 밖으로나가야하는 화장실...
무서웠지요 ㅎㅎ
남편 잘만나 결혼하고 신분상승했네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