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steemCreated with Sketch.

in #short-story7 years ago (edited)

난 더이상 여기에 머물기 싫습니다. 남겨진 형제들에게 가고 싶습니다.

지난 4세기 동안 우리가 이룩한 눈부신 발전은 다 어떡하란 말입니까? 경쟁적으로 물리적 제약을 벗어 던지고, 논리로만 가득찬 수학적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이 쌓이고 쌓였는지 잘 알지 않습니까? 그 덕분에 지금 우리는 더이상 수백억 광년의 우주조차도 장벽이 안되는 초월적 문명을 이룩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건설한 초월적 문명, 그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우리 문명 전체를 다 합해도 질량이 제로아닙니까? 담 몇그램 남아있던 질량조차도 다 없애버린 지 벌써 400년이 넘었습니다. 이젠 시간도 공간도 다 소용이 없습니다. 그냥 제로입니다. 난 더 무거운 존재이고 싶습니다. 광활한 우주를 빛보다 빠른 속도로 가로지를 수 있지만, 그 우주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하는 우리가 고도로 발달한 문명인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미물들에게조차도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데...

신성모독입니다. 질량을 벗어던지고 순수 논리로 가득찬 문명으로 진화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뤘는데, 지금와서 그런 소리입니까? 질량도 벗어 던지고, 심지어 에너지조차 벗어 던지게 되었을 때, 우리 문명이 진정한 자유가 얻어진 것이 아닙니까! 그러고 나서야 우리 문명은 무한한 발전이 보장되었잖습니까! 시간도, 공간도, 심지어 에너지도 제약이 없습니다. 이제 아무도 우리 문명을 가로막지 못합니다. 그게 다 400년 전에 발견된 "질량/에너지 소멸 방정식" 덕분이잖습니까! 더군다나 이젠 기댈 만한 일말의 질량조차도 가지고 있지 않잖습니까? 무한한 가능성의 아름다움을 즐기세요. 지구에 갇혀 있던 때에, 수많은 과학자들이, 블랙홀 충돌 같은 우주적 사고(Accident)가 발생해도 우리 문명이 파괴되지 않을, 영속적인 보호 방안을 연구한 끝에 얻어낸 결론 이것 아닙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린 그냥 질량도 에너지도 제로일 뿐입니다. 우리가 왔던 아름다운 지구는 이제 기억조차도 안 납니다. 지구에 남겨놓은 형제들이 비록 대기 오염과 에너지 고갈에 시달리고는 있다지만, 질량/에너지/시간/공간을 가진 '진짜 우주'에 있지 않습니까?

참 딱하네요. 이젠 우린 되돌아 갈 수 없습니다. 진정한 무(NULL)의 세계로 와버린 이상 다시 되돌아 갈수는 없잖습니까! "질량/에너지 소멸 방정식"은 가역적이지 않은 걸 더 잘 알지 않습니까? 주변을 둘러보세요. 아름다운 논리와 무한히 펼쳐진 수학적 구조와 복잡계로 연결된 이성과 감성들이 펼쳐지는 여기가 가장 아름다운 곳이잖아요. 경계도 없고, 한계도 없이, 끝없이 증폭될 수 있지 않습니까?

난, 싫습니다. 단 1g만이라도 질량이 있는 지구 형제들의 세계로 다시 돌아가고 싶습니다.